[재미있는 통계] 9. 노벨상 수상자를 이긴 부인의 판단

사람들은 꽤 오래 전부터 확률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었던 것 같다.


문헌상으로 보면 기원전 약 300년께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성이 높은 일은 항상 일어난다.


그리고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가끔씩 일어난다"라고 말했다.


기원전 약 60년께에 키케로는 확률을 '생활의 길잡이(guide of life)'로 표현하기도 했다.


3세기께의 고대 로마에는 이미 보험이란 것이 있었고 울피아누스는 평균수명표를 작성했다.


이런 사실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확률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수많은 숫자정보 중에서 확률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기예보,어떤 특정한 병에 걸릴 확률,각종 사고(번개 자동차사고 다리붕괴 등)를 당할 확률 등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보들이다.


보험이나 복권,카지노사업 등은 확률에 바탕을 두고 번성하고 있다.


친구나 가족들과 고스톱을 칠 때 어떤 패를 먹어야 할 것인지,어떤 패를 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있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만의 확률적인 판단을 근거로 어떤 특정한 패를 내야 된다고 우기는 것이다.


확률로 표시되는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확률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확률은 0에서 1까지의 값을 갖는데 그 값이 커질수록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확률이 0이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사람이 헤엄을 쳐서 지구를 한바퀴 돌 확률은 0이다.


확률이 1이라는 것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의미로서 사람이 죽을 확률은 1이다.


그러나 "확률이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확률을 명확히 정의하기 위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정의를 아직까지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확률의 개념은 확률을 이용하는 상황이나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동전 던지기를 생각해 보자.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은 얼마일까. 계산을 하지 않아도 1/2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육면체의 주사위를 던질 때 3이라는 숫자가 나올 확률은 계산해보지 않아도 1/6이다.


이와 같이 미리 경험하기 전에 알 수 있는 확률을 선험적(先驗的)확률개념(혹은 고전적 확률개념)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전적 확률개념을 적용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느 공장에 앞으로 1년 동안에 화재가 발생할 확률,어떤 지역의 소비자가 현대자동차를 구입할 확률,20대 여성운전자가 자동차 사고를 낼 확률 등은 논리적 사고를 통해서 계산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경험적 확률개념을 적용하게 된다.


경험적 확률개념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동일한 상황이나 조건 하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상대적인 비율로서 확률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상대빈도개념으로서의 확률'이라고도 한다.


조사한 자료(혹은 실험)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경험적 확률은 그 신뢰성이 높아지게 된다.


경험적 확률의 예를 들어 보자.일기에 관한 속담 중에는 '햇무리나 달무리는 비 올 징조'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늘을 보고 구름이나 바람,빛을 관찰하여 날씨를 예측해 왔다.


이 속담은 그런 오랜 경험 속에서 얻어진 것으로 햇무리나 달무리가 지면 비가 올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상학적으로도 햇무리와 달무리는 햇빛이나 달빛이 얼음결정으로 된 엷은 구름에 의해 반사되는 현상으로 이는 저기압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해 준다고 한다.


실제로 햇무리나 달무리가 졌을 때 70% 정도는 비가 온다고 한다.


관련된 자료가 없거나 부족할 경우에는 주관적인 확률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주관적 확률이란 한 개인이 어떤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정도가 곧 그 사건의 확률이라는 견해이다.


라플라스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대부분 확률적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는데,여기서의 확률은 주관적인 확률이 대부분이다.


주관적인 확률을 결정할 때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 태도 가치관 성격 등이 다르므로 동일한 사건이라도 개인별로 그 확률이 다르게 된다.


이 개념에 의해서 정의된 확률은 대상이 넓고 그 크기가 다양하므로 그 확률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그 결정으로 말미암아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결과에 대해 주관적인 판단을 가미하게 된다.


따라서 주관적 확률의 객관성,정확성이 의사결정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주관적 확률과 관계된 재미있는 실제의 예를 하나 들어 보자.


1995년도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자로 '합리적 기대'이론을 주창한 미국 시카고 대학의 루카스(Robert E Lucas)교수가 선정됐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루카스 교수의 전(前)부인인 리타(Rita Lucas)가 더 좋아했다고 한다.


왜냐 하면 노벨상 상금 100만달러 중에서 그 절반인 50만달러(약 5억원)를 그녀가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 88년에 합의이혼했다.


이 때 리타는 "부인은 루카스 교수가 노벨상을 타는 경우 그 상금의 50%를 차지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이혼합의서에 삽입했다.


리타는 루카스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할 가능성(주관적 확률)을 높게 판단하여 이 조항을 넣은 것이다.


수상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서인지 아니면 빨리 이혼하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그 당시 같은 경제학 전공의 여교수와 열애 중이었다고 함) 하여튼 루카스 교수도 이 조항에 반대하지 않았다.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노벨상의 수상가능성에 대한 당대의 석학과 그 부인이 주관적 확률로 대결을 한판 벌인 것이다.


그 후 7년이 지난 95년에 드디어 루카스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리타의 '합리적 기대'에 바탕을 둔 주관적 확률이 루카스 교수의 것보다 더 정확했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남편은 '합리적 기대'이론으로 노벨상을 받게 되었고, 부인은 '합리적 기대'이론을 주관적 확률계산에 적용하여 상금의 반을 차지하게 되었으니 역시 그 남편에 그 마누라였다.


이 실제 이야기는 헤피 엔딩으로 끝났다.


루카스 교수가 신사답게 약속대로 상금을 전 부인과 나누었기 때문이다.


루카스 교수가 지기는 했으나 법(이혼계약)에 따른 전 부인의 합리적 기대를 어겼다면 그의 합리적 기대이론에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