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경제학] 경기부양 했더니 형편이 더 어려워져?

우리는 지난 몇 차례의 설명을 통해 '국제관계를 고려하면 어떤 경제적 변화가 반드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왔다. 근린궁핍화 역시 오늘날 한 국가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운영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역통합,환율변동,무역전쟁과 같은 말들은 더 이상 경제학 교과서의 한 구석에 가려 있는 용어가 아니다.


컴퓨터의 발달에 의한 세계적 통신망의 구축은 국가 간의 경제적 작용과 반작용을 즉각적인 것으로 만들어 경제에 있어서 국제관계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호황이나 불황에 대응하여 정부가 취하는 경기정책의 효과 역시 이러한 국제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 국가가 고립적인 경기 확대 정책을 선택할 경우 그 효과가 국제적으로 전파되어 오히려 자국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경기 정책의 목표는 기본적으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인데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목표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기 확대를 위해 통화팽창정책을 취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일반적으로 경기변동은 총수요의 변동에 의해 발생한다.


이를 수요충격이라고 하는데 총수요가 증대돼 총수요 곡선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물가상승,생산량 증대,실업감소 등이 발생하며 이는 곧 경기가 호황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총수요가 감소해 왼쪽으로 움직이면 생산이 감소하면서 경기침체가 발생한다.


이제 어떤 요인에서든 총수요의 감소가 발생해 경기가 침체되어 있다고 가정하자.정부는 통화정책을 통해 이러한 불황 국면을 타개하려고 할 것이다.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통화팽창정책을 쓰게 되는데 통화량이 늘어나면 시중에 자금이 풍부해지므로 '돈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가 하락한다.


이자율이 떨어지면 민간투자가 활발해지고 따라서 국민소득이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자본이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는 완전자본이동과 자유변동환율제를 가정하면 이러한 정책은 국제관계 속에서 일종의 뒤틀림 현상이 발생한다.


국내 금리가 하락하면 국내자본이든,외국자본이든 수익률이 더 높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고 외환에 대한 수요는 늘어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통화 수요가 줄어들고 원화 가치가 떨어진다.


원화환율의 상승(원화가치의 하락)은 우리나라 물건의 값을 상대적으로 더 싸게 만들어 줌으로써 수출이 촉진되는 반면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억제시킨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국제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입 감소는 외국의 시각에서 보면 그 나라의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이는 그 나라의 국민소득을 감소시킴으로써 외국으로부터의 수입(우리나라의 수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결과가 환율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에 외국 입장에서도 자국 통화의 절하를 유도하게 되고,이는 환율 인상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국내 경기의 진작을 위해 취한 정부 정책이 외국의 경기 후퇴를 초래함으로써 역효과를 가져오는 경우 이를 근린궁핍화(beggar-thy neighbor) 정책이라고 한다.


근린궁핍화의 논리는 경제학자들 사이에 정책적 차원에서의 국제 간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쳐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협력과 공조를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한 나라가 필요에 따른 적절한 거시경제정책을 독립적으로 시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어려움이 따른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원화의 환율이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무역 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도 최근 철옹성 같았던 위안화의 가치를 높이는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압력 때문인데 미국을 상대로 수출일변도의 정책이 가져온 역풍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