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표준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흔히 쓰는 컴퓨터나 휴대폰은 물론 대부분의 물건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방송국에서 TV 영상을 만들어 보낼 수도 없다.

표준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준이자 제도다.

◆표준은 우리 삶의 '공기'

현대 사회에서 표준이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다.

정확한 표준을 바탕으로 한 측정 기술이 있어야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기초 소재로 쓰이는 실리콘 웨이퍼 생산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회로 설계 등의 제조 공정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측정기술은 필수적이다.

이런 측정기술이 없다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이나 각종 장치들은 하나도 만들 수 없다.

당뇨병 환자들은 항상 혈당측정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조금만 몸이 이상해져도 자신의 혈당량을 측정,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가정용 혈당측정기의 정확도가 떨어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아마 부정확한 혈당측정기를 믿고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을 과다 복용하거나 아니면 복용하지 않아 목숨까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수만개의 부품들을 정밀하게 만드는 기술 역시 측정 표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마패보다 중요한 자(scale)

도량형은 길이를 의미하는 도(度),부피를 재는 량(量),무게를 다는 형(衡)을 합친 단어로 측정 제도를 일컫는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이 도량형 제도를 공포하고 이 제도의 표준이 되는 자와 저울을 대량으로 생산,백성들에게 나눠 준 일이다.

도량형의 통일은 그만큼 중요했다.

세금으로 납부되는 비단이나 모시를 정확히 측정함으로써 탐관오리에 의한 착취를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진시황이 남긴 진정한 업적은 달나라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표준의 의미를 깨우쳐준 도량형의 통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말을 이용할 수 있는 마패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녔는데,그것은 바로 '유척'이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로 조선시대 도량형 제도에서 길이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도구였다.

임금이 유척을 암행어사에게 내린 것은 지방 수령이 세금 징수 등에서 백성을 속이는지를 철저히 감시하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만큼 표준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에 늦었던 우리나라는 국가 표준체계를 만드는 데에도 다른 나라에 뒤져 1975년에 가서야 표준연구소를 설립했다.

◆존슨 대통령의 선물

1966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미국 존슨 대통령의 손에는 킬로그램 표준원기와 5미터 기준자가 들려 있었다.

그 1년 전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미 과학기술협정을 맺은 데 대한 선물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국가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을 때였는데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국가표준체계를 확립하는 것임을 존슨 대통령은 표준원기 선물을 통해 강조했던 것이다.

10년 뒤 한국표준연구소가 설립되고 1996년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국제도량형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측정표준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