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경제학] 산유국되면 경제 더 나빠질 수도 ‥ ^^;

우리나라에서 갑자기 석유가 펑펑 쏟아져 수출까지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제현실은 워낙 복잡하게 얽혀 있어 썩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기 어렵다.


에너지 부문의 천연자원을 집중적으로 수출할 경우 국내 금리 변동과 이에 따른 환율 변동으로 오히려 제조업 부문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무역수지의 개선도 생각과는 달리 수월치 않다.


이것이 이른바 화란병(Dutch disease)이다.


화란병은 본래 네덜란드의 천연가스 수출이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그 전형적인 사례로는 영국의 북해유전 개발과정을 꼽는다.


영국은 북해유전을 개발,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집중적으로 원유를 생산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원유의 증산 및 수출이 국민소득을 증대시키고 무역수지를 개선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원유를 증산함으로써 처음에는 국민소득이 증대되었으나 이는 곧 화폐수요 증대로 이어졌다.


화폐에 대한 수요는 보통 세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첫째는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수요다.


이는 물건을 거래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생산이 증대돼 국민소득이 늘어난다는 것은 거래할 물건이나 서비스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국민소득의 증대는 화폐에 대한 수요를 늘어나게 만든다.


바로 위에서 말한 국민소득의 증대가 화폐수요를 늘어나게 만든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예비적 동기에 의한 화폐수요다.


이는 말 그대로 혹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 화폐를 가지고 있는 경우다.


셋째는 투기적 동기에 의한 화폐수요다.


이는 사람들이 돈을 은행 등에 맡기면 이자를 주기 때문에 이자율을 따져서 돈을 돈으로 가지고 있을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즉 이자율이 높아지면 화폐에 대한 수요를 줄이고 은행에 돈을 맡기게 된다.


이 때문에 투기적 동기에 따른 화폐수요는 이자율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소득의 증대와 이에 따른 화폐수요의 증대에도 불구하고,화폐공급이 적절히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영국 국내 금리에 대한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화폐의 공급은 중앙은행이 정책적으로 그 양을 결정하게 돼 있다.


통화의 공급을 어느 선에서 증대시킬 것인가는 금융정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고,따라서 정부는 늘 통화량의 증대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즉 통화량이 증대되면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쉽게 통화 증대 정책을 취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화폐에 대한 수요 증대에도 불구하고 통화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함으로써 영국 내 금리가 높아지자 외국의 자본들이 대거 영국으로 몰려들었고 파운드의 가치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외국자본이 영국에 투자하려면 투자자금을 파운드화로 바꾸어야 하고 이는 외환시장에서 파운드화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파운드화의 가치 상승을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국 통화가치의 상승,즉 환율의 하락은 제조업 부문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되었고 특히 수입대체산업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원유 수출에 의한 무역수지 개선효과를 삭감시키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영국의 국내총생산에서 북해의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6년 1% 미만에서 82년 5% 수준까지 급상승한 반면,제조업 비중은 28% 선에서 24%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파운드화 환율은 77년 이후 급격히 하락했고 그 결과 영국의 국제경쟁력지수(85년=100)는 77년 125에서 81년 80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영국은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걸쳐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물론 이 같은 역설적 현상이 원유 수출 그 자체에 원인이 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화폐공급이 수요의 증대를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므로 경직된 통화관리 역시 이 같은 결과에 한몫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서는 화란병이라도 좋으니 석유가 펑펑 쏟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