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잎' 골라내 장기투자 .. 성장주 투자아버지 '필립 피셔'

증권시장에는 수많은 기업의 주식들이 거래된다.


우리나라 증권선물거래소에도 유가증권시장에 679개사,코스닥시장에 878개사 등 1500여개 회사가 상장돼 있다.


이렇게 많은 주식 중 어떤 주식을 사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모든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하나였다.


바로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때까지 갖고 있는 것이다.


현대 투자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은 주식투자 이론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증권분석'(Security Analysis,1934)에서 내재가치 이하로 거래되는 '가치주'에 분산투자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필립 피셔(Philip Fisher)가 등장하면서 이런 전통적인 견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레이엄이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했다면 피셔는 사람과 조직을 연구했다.


그는 기업의 장부가치보다는 질적 분석을 더 중요시했다.



피셔는 기업의 경영진과 잠재적인 성장 가능성,연구개발 능력 등을 기업가치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제시했고 소위 가치주에 대비되는 성장주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그래서 그는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피셔의 투자방법


필립 피셔는 1958년 출간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는 책에서 성장주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당시에는 전문가들조차도 생소한 이 개념은 당시 투자관행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왔다.


성장주는 가치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지금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큰 수익을 낼 잠재력을 갖고 있는 기업의 주식을 말한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의 투자자들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투자의 교과서는 '가치투자'였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이익률,부채비율,PER(주가수익비율) 등을 계산한 뒤 내재가치를 정하고 이보다 낮게 평가된 주식을 구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셔는 수량적 분석이 아닌 질적 분석에 주목했다.


피셔의 투자방법을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가 모토로라다.


그는 이 회사에 투자하기 전에 회사를 방문해 창업자인 폴 갤빈과 그의 아들이며 사장인 밥 갤빈을 비롯한 임원들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피셔는 특히 밥 갤빈의 잠재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1956년부터 모토로라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다.


그러나 월가의 증권분석사들은 창업주의 아들이 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비난하면서 모토로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피셔는 밥 갤빈의 능력에 큰 신뢰를 갖고 있었기에 주식을 팔지 않았다.


당시 피셔가 산 모토로라 주식가격은 주당 42~43달러였다.


1997년에 이 주식의 가치는 주식분할에 따른 조정을 감안하면 주당 1만달러가 넘었다.


피셔는 또 초장기투자자로 유명하다.


그가 모토로라의 주식을 판 것은 2000년 이후였다.


역시 1950년대에 산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주식도 1980년대에야 현금화했다.


그는 주식투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손해는 훌륭한 회사를 너무 일찍 파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오래 보유했다면 수백,수천%의 경이적인 수익을 안겨줄 회사를 수십% 정도 올랐을 때 팔아버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큰 손실이라는 것이다.


◆그의 생애


피셔는 1907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의사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을 정도로 돈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 사정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피셔는 이미 12∼13세 때 주식에 대해 배웠을 정도로 일찍부터 주식시장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15세 때 대학에 진학했으며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의 첫 직장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은행이었다.


당시에는 은행에서도 주식을 팔았는데 피셔는 증권 조사분석 업무를 맡았다.


통계분석 업무에 흥미를 잃은 피셔는 1년 만에 증권회사로 옮겼으나 대공황의 여파로 회사는 파산했다.


1931년에 피셔는 24세의 젊은 나이로 투자자문회사인 피셔앤드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피셔는 창업 2년 동안 거의 돈을 벌지 못했다.


그 당시 주식시장은 최악이었다.


다우지수는 1929년부터 32년 사이에 무려 89%나 폭락했다.


이때 피셔의 인생을 바꿔놓을 기회가 왔다.


그가 대학원에 다닐 때 방문했던 푸드 머시너리(현재는 FMC라는 기업)라는 회사의 주식이 한때 50달러에서 폭락을 거듭해 4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피셔는 이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으며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은 물론 고객들에게도 이 회사 주식의 매입을 권했다.


결국 피셔와 투자자들은 50배라는 엄청난 차익을 남기고 이 주식을 처분할 수 있었다.


이후 피셔의 사업은 급성장했고 그는 펀드매니저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피셔는 90세가 넘어 알츠하이머병에 시달리면서도 고객들의 돈을 맡아 운용했다.


그의 고객은 언제나 소수였지만 신뢰 만큼은 대단했다.


그는 지난해 96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의 아들인 켄 피셔는 피셔 인베스트먼트를 창업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켄 피셔는 포브스지에 포트폴리오 전략이라는 칼럼을 장기간 연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태완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