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무랑마 두나이 싼크뜨빼째르부르그 마쟈르 웽그리아 단마르크 스웨리예 뽈스까.'

마치 무슨 암호문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암호가 아니라 북한에서 쓰는 지명들이다.

가만히 보면 어딘지 알 듯하기도 하다. 이들을 우리 식으로 풀면 각각 에베레스트,다뉴브,상트페테르부르크,헝가리(마쟈르 웽그리아),덴마크,스웨덴,폴란드다.

그럼 왜 이렇게 낯설까.

답은 남북이 쓰고 있는 외래어 표기방식의 차이에 있다.

남쪽은 1986년 문교부(지금의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고시한 '외래어표기법'을,북쪽은 1982년 수정 증보한 '외국말적기법'을 따른다.

외래어를 한글로 적을 때는 어원을 따져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는 게 원칙이다. 다만 남쪽에선 영어식 이름을 기준으로 외래어 표기를 하는 데 비해 북쪽에서는 어원을 밝혀 읽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남북한 간에 쓰는 외래 지명이 많이 다른 까닭은 이런 데서 연유한다.

거기에 남에선 된소리 표기를 잘 쓰지 않는 반면 북에선 허용하기 때문에 더 멀게 느껴진다.

북한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봉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다. 교과서에서건 사전에서건 그들에게는 '주무랑마봉(峯)'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한 달여 전 산악인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잔잔한 감동을 준 적이 있다. 그때 등반대 이름이 '초모랑마 휴먼원정대'다.

'초모랑마'는 바로 에베레스트의 현지 이름,즉 티베트명이다. 이를 중국에선 '珠穆朗瑪'로 적고 '주무랑마'라고 읽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베레스트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영국인의 이름을 따 붙인 영어명이다. 북쪽에는 현지어 '초모랑마'가 중국을 거쳐 들어갔고 남쪽에는 영어명이 곧 바로 수입됐다.

우리에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으로 잘 알려진 곳은 북한에서 두나이강으로 불린다. 이는 체코어로 읽은 것. 남한에선 영어명인 다뉴브강으로 배운다. 도나우는 독일어 이름.

'싼크뜨빼째르부르그'는 발트해 연안의 유서 깊은 러시아 제2의 도시다.

우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 부른다.

1991년 지금의 이름을 되찾기 전에는 '레닌그라드'로 알려진 곳이다.

'마쟈르'는 헝가리의 중심을 이루는 민족 마자르족(族)을 나라 이름에 사용한 것이다.

북한에선 이를 '웽그리아'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남한 '헝가리'에 대비되는 북한말이다.

단마르크(Danmark),스웨리에(Sverige),뽈스카(Polska) 역시 각각 현지어인 덴마크어,스웨덴어,슬라브어로 읽은 것이다.

외래 지명을 적는 데에도 체제에 따라 남쪽은 영어권,북쪽은 러시아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분단의 현주소를 뚜렷이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런 차이를 점차 좁혀 가는 과정이 남북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교열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