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 간의 관계에 관한 제시문의 논지를 활용하여 국가들 간의 관계를 국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당한가에 대하여 구체적 사안을 들어 논술하라. (1300~16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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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각 개인이 자신의 생산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자본을 투자·운용하는 데 최대한 노력하고,그리하여 제품이 최대 가치를 확보하도록 생산활동을 운영한다면 각 개인은 결국 사회 전체의 연간 소득을 늘리는 데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도 아니고,또한 얼마나 공익 증대에 기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산활동에 노력을 기울여 삶의 안정만을 보장하려 하고,자신의 제품이 최대 가치를 확보하도록 생산활동을 벌임으로써 오직 자신의 이윤만을 높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경우에도 다른 수많은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공익 증진의 결과를 낳는다.

공익 증진이 그의 생산활동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 전체에 언제나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공익의 증진을 의도적으로 목표로 삼을 때보다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할 때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한다.

자신의 자본을 투자할 만한 생산활동이 무엇이며,또 그러한 생산활동이 어떻게 최상의 가치를 가지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들에 관해서는 당사자인 개인이 다른 어느 정치인이나 국회의원보다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자본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문제에서 정치인이 시민 개개인을 조정하고 감독하려 한다는 것은 정치인 스스로가 전혀 불필요한 일을 해 사서 고생하려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어느 개인에게나 어느 국가 기구에도 안전하게 맡길 수 없는 '권위'를 정치인 자신이 가로채려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한 권위를 행사할 만한 능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감히 착각할 만큼 우둔하고 자만에 찬 사람의 손에 권위를 쥐어주는 것보다 위험한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자본을 투자하고 운용하는 일에서 국가가 지시하고 감독하는 것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전혀 쓸모 없거나 오히려 해로운 '규제'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국산품을 외제품만큼 저렴한 값에 공급할 수 있다면 이러한 규제는 불필요하며,그 반대의 경우라면 이러한 규제는 해로운 것이 되고 만다.

'생산비용이 구매비용보다 더 높을 때는 스스로 생산하지 말라'는 것이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현명한 가장이 받들어야 할 금언이라 하겠다.

<출처:Adam Smith,The Wealth of 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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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인간의 본성에는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세 가지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쟁심이고,두 번째는 소심함이며,세 번째는 명예욕이다.

경쟁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득을 보기 위해,소심함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명예욕은 좋은 평판을 듣기 위해 남을 해치도록 유도한다.

경쟁심은 타인과 그 처자식과 가축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소심함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명예욕은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거나 아니면 가족,동료,민족,직업 또는 이름에 간접적으로 먹칠을 하는 말,비웃음,상이한 견해뿐만 아니라 경멸의 몸짓 등과 같은 하찮은 일에도 인간으로 하여금 폭력을 사용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강력한 국가가 모든 이에게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살아갈 때 인간은 '전쟁'이라고 불리는 상태에 놓일 것이 분명하다.

이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노동의 결실을 누릴 수 없는 불확실성이 삶을 지배하기 때문에 노동할 이유가 없다.

그 결과 토지의 경작도,항해의 필요성도,해외로부터 수입하는 물건의 가치도,널찍한 건물도,물건을 이동시키고 옮겨 주는 운송의 수단도,지구가 어떠한 모습인가에 대한 지식도,시간에 대한 계산도,예술이나 문학,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그 무엇보다 나쁜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감이고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위험성이다.

전쟁 상태에서 인간은 고립되고 비참하고 험악하며 단명하고 짐승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국가가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동시에 타인을 지배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국가의 구속 아래 살아가고 자기 자신에게 제약과 통제를 가하는 것에 동의하는 궁극적 원인이나 목적 및 동기는 생명을 보존하고,그 결과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려는 인간 자신의 통찰력에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 위에 무서운 존재로 군림하고 그들에게 처벌에 대한 공포감을 불어넣어 옭아매는 가시적 권력이 없을 때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열망에 의하여 빚어질 수밖에 없는 처참한 전쟁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가에 의한 구속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만인으로 하여금 그들 모두의 권력과 힘을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양도하고 모두의 의지를 다수결에 따라 그 사람이나 집단의 의지로 축소,대체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개의 인간이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을 지명해 자신의 모든 권리를 송두리째 양도하고 만인의 공동 평화와 안전에 관련되는 사안에서 그 사람이나 집단이 취하거나 취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 바로 개개인 자신의 행동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전쟁 상태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결국 만인은 그들 자신을 그의 의지에 복종시키고 그의 판단에 맡기는 셈이다.

이러한 행위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단일한 권력체인 국가 안으로 만인을 끌어넣는 것으로 만인의 진정한 통일을 의미한다.

마치 만인이 만인에게 "당신이 그 권력체에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그 모든 행동과 조치를 승인한다는 조건 하에서 역시 내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그 권력체에 포기하고 행동과 조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식의 선언을 동시에 하는 것과 같다.

이는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보다 경건한 자세에서 말한다면 '인간적 신'인 국가가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인은 불멸하는 유일신과 가호 아래 자신들의 평화와 보호를 인간적 신인 국가에 의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손에 무한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의 욕망과 격정에 이리저리 시달릴 신민의 상태는 대단히 비참할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에 대해 불평하는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불편함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상황이라는 점,국가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그 안에서 인민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해악은 내전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비참함과 가공할 재난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는 점,그리고 약탈과 복수를 못 하도록 만인의 손을 묶어두는 법과 강제력에서 벗어날 때,그 상전 없는 인간이 처하게 되는 상태란 혼란뿐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출처:Thomas Hobbes,Levi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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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제는 경제적인 문제를 묻는 게 아니다.

'국부론'을 홉스의 '리바이어던'(제시문 나)의 한 구절과 같이 놓음으로써 자율적 경쟁과 공익,규제의 필요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묻는 논제가 되는 것이다.


1. 먼저 간단한 요약을 해보라.

(가)의 핵심은 국가가 개입하지 말고 개인들의 자율적인 경쟁에 맡겨 두라는 것이고 (나)의 핵심은 국가가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각각 다르다.

(가)에서 개인이 각자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공익은 저절로 증진되고 국가는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존재다.

그러나 (나)에서 개인들을 마음대로 놔두면 투쟁과 갈등의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는 개인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존재다.

인간(구성원으로서의 개체)의 본성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상위 조정자)의 본질과 기능,역할에 대한 관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자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후자는 정치(안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2. 요약을 한 다음에는 논리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제시문들이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루는 것에 비해 논제는 국가와 초국가적 규제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와 유사한가'라는 논리적 전제가 생략돼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에 대해 동의한다면 자연스럽게 제시문들의 논리를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생각이 다르다면 제시문의 논의를 정리한 뒤 왜 제시문의 논의를 국제 관계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는지를 간략히 써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 국가와 국제관계의 특성에 대해 정리해야지만 논제가 요구하는 내용의 답을 할 수 있다.

1300자 정도를 쓰는 글의 분량상 대부분은 이 단계를 건너뛰겠지만 2500자 이상의 글을 쓴다면 이러한 검토는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3. 논제의 요구 사항이 '구체적인 사안'을 들어 논하라고 했으니 자신이 아는 것을 떠올려 봐야 한다.

사례를 들어 논할 경우 핵심적인 것은 독창성이다.

(1)가능하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례를 든다.

(2)같은 사례를 들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본다.

(3)비슷한 얘기밖에 할 수 없다면 최대한 날카롭게 핵심을 파고들어라.결론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초국가적 규제가 불필요하다고 보든지 아니면 필요하다고 주장하든지.

하지만 사례와 관점에 따라 중간 과정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결론까지 나가는 과정의 설득력과 논리정연한 전개가 핵심이다.


4.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주는 제시문들을 참고로 글을 쓸 때는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내보이는 것이 아니라 'yes―but' 논법을 써줄 필요가 있다.

"당신의 의견은 그런 점에서는 옳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에서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는 (그 대안으로) 이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애덤 스미스의 논리는 세계 시장에서 어떻게 우리가 훨씬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사게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스미스는 그러한 논리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홉스의 논의가 설득력을 얻는 곳은 바로 정치적 규제가 필요한 바로 그 지점이다.

이런 식으로 글을 써야 균형 잡힌 검토를 할 수 있다.

김원기 초암논술아카데미 선임연구원 close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