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경제학을 보는 시각은 매우 이중적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과 같은 처지다.
학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복잡한 경제학 그래프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주변을 둘러보거나 일상생활을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경제학적 질문과 관련돼 있지만 정작 경제나 경제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경제현상은 사람들의 생각과 그 생각에 바탕을 둔 행위에 의해서 발생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경제행위를 하기 때문에 경제현상을 단순화시켜서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
경제학자들은 그래서 자꾸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하려고 노력하고,또 그러다 보니 경제학은 점차 딱딱하고 재미 없고 어려운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경제학은 실은 우리들의 일상 생활 도처에서 발견되고 검증된다.
그러니 바로 나의 주변을 잘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경제 공부는 정말 쏠쏠한 재미를 주는 것이다.
경제학에 숨어 있는 역설을 찾아보는 것도 이런 재미 가운데 하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럴 것 같은데 원리를 찬찬히 따지고 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우리도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를 외칠 수 있다.
이제 경제문제와 경제학을 좀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경제학의 역설'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그 시작은 역시 경제학의 출발점인 '가치의 역설'이 좋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용례에서 보듯이 가치는 대체로 중요한 것,좋은 것,유용한 것 정도의 뜻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가치는 경제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가치가 단순히 중요하거나 유용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의 유용성도,중요성도 그다지 크지 않지만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경우가 있다.
학생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경제학에 있어서의 가치문제를 물과 다이아몬드에 비유해서 갈파한 바 있다.
즉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면서도 값은 거의 없다시피한 반면,다이아몬드는 극히 제한적으로 쓰이는 데 비해 그 값이 아주 비싸다.
이것이 이른바 물과 다이아몬드의 역설,또는 가치의 역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설은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가?
스미스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두 개의 가치개념을 구분하고,교환가치가 반드시 사용가치를 전제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사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설명은 스미스 이전의 몇몇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미 시도되었다.
그들은 가치의 역전현상이 상대적 희소성으로부터 생겨난다고 보았다.
즉 물은 유용하지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충분하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실제로 존재하는 양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양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좀 더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공급에 비해 수요가 훨씬 더 많은 초과수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 상품에 내재돼 있는 유용성보다는 그 물건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가 하는 점이 경제적 가치,즉 가격을 결정한다는 설명이다.
경제학 연구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무한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른바 희소성의 원칙"(이 말을 몇 번 소리 내어 읽어보자)에서 시작된다고 한다면 경제학은 어쩌면 역설로부터 출발하는 셈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경제발전의 결과로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마실 물에 대한 초과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는 반면,육안으로 실제와 인공으로 만들어진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다이아몬드가 생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물값은 비싸지고 다이아몬드는 값이 떨어져서 물과 다이아몬드 사이에 더 이상 가치의 역설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다시 흐르게 된 청계천의 물값은 얼마나 될까.
노택선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