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을 하던 13세 소년이 있었다.
그는 신문배달로 번 25달러로 중고 핀볼 게임기를 사서 이발소에 설치했다.
게임기는 곧 7대로 늘어났고 그는 일주일에 50달러를 벌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재에 밝았던 이 소년은 지금 75세의 노인으로 세계 2위의 갑부가 됐다.
세계 증권가에서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워런 버핏이 바로 이 소년이었다.
워런 버핏의 자산은 지난해 기준으로 45조원(약 440억달러)이다.
세계 1위 부자인 빌 게이츠의 재산은 47조원이라고 한다.
재산 규모는 엇비슷하지만 두 사람의 재산 형성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벤처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부를 축적했다.
반면 워런 버핏은 오직 주식 투자만으로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뉴욕에서 2000km나 떨어진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 살면서도 월가(Wall Street)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며 그를 '오마하의 현인'(Oracle of Omaha)이라고 부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에드워드 버핏(Warren Edward Buffet)은 1930년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고,아버지는 주식 중개인이었다.
소년 버핏은 숫자에 흥미를 느꼈고 복잡한 계산에 재능을 보였다.
그는 8살 때부터 주식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일찍부터 사업가적인 자질을 보였다.
친구들과 돈을 모아 구형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350달러에 구입한 후 차를 임대해 하루 35달러의 수입을 벌기도 했다.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자 아예 대학을 가지 않고 곧바로 사업을 하겠다고 아버지를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버핏은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지 2년 후인 56년 주식회사 형태의 조그만 투자펀드를 시작했다.
10만5000달러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이 펀드는 이후 13년동안 평균 29.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13년 중 5년은 다우존스지수가 계속 하락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버핏은 69년 펀드 운영 수익으로 벅셔 해서웨이라는 조그만 섬유회사의 지분을 사들였다.
이후 35년 동안 이 회사의 주당 가치는 19달러에서 3만7000달러로 급등했다.
현재 벅셔 해서웨이는 보험회사를 비롯 신문사,출판사,구두,의류회사 등을 거느린 투자 전문 그룹이 됐다.
○독특한 투자철학
버핏은 성공신화 못지않게 투자에 대한 철학으로 유명하다.
흔히 주식 투자의 방법에는 시장의 수급을 중요시하는 기술적 투자와 기업의 내재가치 평가를 기반으로 하는 가치투자가 있다고 한다.
버핏은 가치투자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투자 방법은 내재 가치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사서 장기간 보유한다는 것이다.
버핏은 기업의 내재 가치를 알기 위해 회사의 사업 특징과 재무 건전성을 철저히 분석했다.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은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는 것과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투자해야 하고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세히,정확히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버핏은 또 최고경영자(CEO)를 중요시했다.
그는 "탁월한 경영자와 괜찮은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그리고 괜찮은 경영자와 탁월한 사업 모델을 가진 기업이 있다면 항상 전자를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CEO의 자질은 합리성과 솔직성,그리고 관행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였다.
버핏은 또 저평가된 회사를 '장기 보유'한다는 원칙을 유지했다.
모든 분석을 통해 기업가치가 확실하다면 가급적 많은 양의 주식을 사라고 조언했다.
여러 회사에 분산 투자해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포트폴리오 이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그는 62년 운영하던 총 자산의 40%인 1300만달러를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에 투자한 적이 있다.
당시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고객과 연루된 비리 의혹으로 주가가 하룻밤 사이에 65달러에서 35달러로 추락했다.
버핏은 "우량한 주식이 내재가치 이하로 떨어지면 과감하게 사라"는 원칙을 바로 실천으로 옮겼다.
결국 2년 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주가는 3배나 뛰었고 펀드의 주주들은 2000만달러의 수익을 얻었다.
최근 버핏은 면도기 업체인 질레트 주식으로 46억달러(4조7000억원)의 차익을 챙기게 됐다.
그는 15년 전에 6억달러를 투자해 질레트 주식 9600만주를 사들였는데 생활용품업체 P&G가 질레트를 인수하면서 주가가 크게 뛴 것이다.
46억달러의 차익도 놀랍지만 '전문 투자자'가 15년 동안이나 한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다.
○존경받는 삶
워런 버핏은 지난해 7월 그의 아내 수전 버핏이 사망하자 유산 25억달러를 전액 사회에 기부했다.
평소 "내가 죽으면 재산 중 1%를 아내에게 물려주고 나머지는 내 이름을 딴 재단에 기부하며 세 자녀에게는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억만장자인 그는 1958년 고향에서 3만1500달러(3500만원 상당)를 주고 산 집에서 계속 살고 있으며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더 즐긴다고 한다.
오래된 중고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니고,동네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버핏은 일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여전히 회사 일에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의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벅셔 해서웨이를 경영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천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CEO가 즐비하지만 그가 받는 연봉은 수년째 10만달러에 머물고 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