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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65호 2020년 5월 25일

다시 읽는 명저

[다시 읽는 명저] 아Q는 이념·주관없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인간 상징…얻어터지면서도 ''정신승리'' 우기는 중국인들 풍자

“폭군치하의 신민이 대개 폭군보다 더 난폭한 것처럼, 다수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가를 보여준다.”(루쉰의 소설 장면 설명)

“약자에 강하고 강자엔 상대도 못하는 중국인들을 묘사하지만 그게 중국인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

“아Q는 건달에게 두들겨 맞고는 잠시 서서 생각한다. ‘아들놈한테 두들겨 맞은 걸로 치지 뭐. 요즘 세상은 돼먹지가 않았어’. 그리고는 자기만의 ‘정신승리법’을 동원해 이내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킨 뒤 마치 남을 때린 것처럼 흡족해하며 승리의 발걸음을 옮겼다.”

중국 현대문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루쉰(1881~1936)이 《아Q정전(阿Q正傳)》에서 주인공 아Q를 묘사한 대목이다. 《아Q정전》은 1921년 문예운동 잡지 ‘신청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중국 신해혁명(1911년) 전후 작은 가상의 농촌이 배경이다.

아Q는 이름과 본적뿐 아니라 이전 행적도 분명치 않은 무지렁이다. 아Q의 아(阿)는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 친근함을 나타내고, Q는 변발한 머리 모양을 상징한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 변화를 직시하지 못하고, 어설픈 자기만족에 젖어 있던 청나라 정부와 무지몽매한 중국인에 대한 비판이 아Q라는 명칭에 담겨 있다. 작가 루쉰도 “중국인들의 우매한 근성을 지적하고, 국민성을 각성시키기 위해 《아Q정전》을 썼다”고 술회했다. 이 소설은 아Q의 20대 후반부터 도둑 누명을 쓰고 처형되는 30대 초반까지 삶과 죽음을 다뤘다.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단어가 ‘정신승리법’이다.

열강 침탈에도 大國의식에 빠져

아Q는 마을 허드렛일을 하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에서 혼자 산다. 문맹에다 볼품없고 자기 나이도 잘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농사일을 시키거나 놀림 대상으로만 삼을 뿐이다. 아Q는 수모를 당해도 한마디 못하고 금방 잊어버린다. 실제로는 얻어터지면서도 나약함과 비겁함을 감추고 “정신적으로는 내가 이겼다”며 자기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다.

루쉰은 이런 아Q를 내세워 당시 흔하디 흔한 중국인상(像)을 그렸다. 서구 열강의 막강한 국력과 과학기술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정신적·문화적으로는 중국이 한 수 위라는 위안을 삼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현실 모순에 당당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영광에 젖어 무기력하기 짝이 없던 데 대한 힐책이었다. 중국 대륙이 열강에 뜯어먹히는 신세인데도 대국(大國)이란 허위의식에 빠져 있던 지배계급의 위선을 고발한 것이기도 하다.

아Q는 강자에게 약하면서 약자에게는 모질게 군다. 처지가 비슷한 날품팔이꾼과 사투를 벌이고, 약해 보이는 젊은 비구니를 희롱한다. 자신이 받은 차별과 억압을 자신보다 열등한 인물에게 전가하는 속물 근성을 가진 중국인의 국민성을 작가는 아Q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반전도 일어난다. 신해혁명 소식이 들리고 아Q가 혁명당원이라는 잘못된 소문이 퍼진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Q를 괄시하던 이웃들이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아Q에게 갑자기 높임말을 쓴다. 주위 사람들의 대접이 달라지자 아Q는 평소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복수의 마음을 품는다. “혁명도 좋구나. 가증스러운 놈들, 모조리 엎어버려야 한다.” 아Q는 강도들이 약탈하는 것을 혁명사업으로 잘못 알고 그 근처에서 얼쩡거린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강도들의 공범으로 체포된다. 그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혁명이 잘못돼 그런 것으로 착각한다. 이때의 아Q는 뚜렷한 이념과 철학, 주관도 없이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인간 유형을 상징한다.

"공개처형 구경꾼에 불과한 중국인"

이 소설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노려보기’다. 아Q는 사형장으로 끌려가며 조리돌림을 당하는 자신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빛에서 산기슭에서 만난 적 있는 굶주린 이리의 눈을 떠올린다. “이리보다 더 무서운, 영혼마저 물어뜯을 것 같은 눈빛”이라고 했다. 루쉰은 “폭군치하의 신민이 대개 폭군보다 더 난폭한 것처럼, 다수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루쉰은 또 다른 저작 《광인일기》에서 이런 중국을 ‘식인사회’라고 했다. 광인(狂人)의 눈을 통해 본 중국사회가 헤어날 길 없는 구조적 병폐에 갇힌 암흑세계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루쉰이 《아Q정전》을 쓰게 된 계기는 일본 센다이의학전문학교 유학 시절에 본 기록영화의 충격 때문이었다. “러시아 첩자 노릇을 한 중국인이 일본군에게 잡혀 처형당하는 장면이었다. 주위에 서 있는 건장한 체격의 수많은 중국인은 멍청하게 보였고,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국민이 우매하면 아무리 체격이 우람해도 공개 처형의 무의미한 관중 노릇밖에는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해야 할 급선무는 그들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아Q가 바로 공개 처형의 관중 노릇밖에 못하는 중국인인 것이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가련한 아Q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났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는 상대도 못하는 중국인들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디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아Q는 수많은 현대인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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