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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56호 2019년 12월 9일

다시 읽는 명저

[다시 읽는 명저] "자기 책임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가 진정한 정의 실현"...공권력 남용 차단된 최소국가를 ''현실적 유토피아''로 정의

“최소국가는 우리를 불가침의 개인들로 취급한다. 우리는 이 국가 안에서 타인에 의해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최소국가에서 우리는 존엄성을 가진 개인이자, 인격을 보호받는 권리자다.”

로버트 노직(1938~2002)은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철학자다. 25세에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30세에 하버드대 철학과 정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인간 존엄론을 주창한 이마누엘 칸트와 천부권(天賦權)으로서의 재산권을 강조한 존 로크의 철학적 전통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사상은 1974년 발간된 첫 저서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Anarchy, State and Utopia)》에 자세히 담겨 있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출발점은 사회주의였다. 그는 컬럼비아대 재학 시절 산업민주주의 학생연맹 지부를 창설할 정도로 열성 사회주의자였다. 자유주의자로 전향한 계기는 친구와의 논쟁이었다. 논쟁할 때마다 친구가 자유주의 사상가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거명했다. 노직은 “그들의 책을 탐독하면서 사회주의 허구성과 자유주의 우월성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했다.

노직은 세계 각국 정부가 사회 정의와 경제 활성화 등의 명분으로 무차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비판했다. ‘최소국가론’을 제시해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인해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는 개인 권리를 수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최소국가’란 외적과 폭력, 사기 등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을 수행하는 일종의 ‘야경국가(夜警國家)’를 뜻한다. 그는 공권력 남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최소국가를 ‘현실적인 유토피아’라고 봤다.

공권력 남용 차단하는 ‘최소국가’

“국가의 위협에 따른 공포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인 무정부 상태의 공포보다는 작다. 무정부 상태보다는 국가가 좀 더 나은 대안이다. 치과 치료에 두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치료받지 않았을 때 발생할 고통을 생각하면 치료가 더 합리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소유권과 개인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는 최소국가는 국가 위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그는 철학자로서 근원적인 원리에 집중했다. 최소국가가 소중한 것은 그것이 자유 재산 생명 등 개인 권리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를 존중하는 최소국가는, 각자가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목표와 이상적 인간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 책임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의를 실현시킨다.”

노직은 국가가 세금을 급격히 늘리는 것에 반대했다. 소비 감소 등으로 인한 경기 위축과 같은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세금은 국가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억지로 부리는 일종의 강제노동과 같다”고 봤다. 소득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일한 시간 가운데 20%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국가의 목적을 위해 강제로 일한 것이 된다는 논리다.

“정의로운 분배의 충분조건은 그 분배 아래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에 적절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사유재산권 보장과 자발적 기부 존중이라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적 정의를 내세운 그 어떠한 분배도 정의로울 수 없다.”

“자유주의는 역사 진보 이끄는 철학”

그렇다고 노직이 빈곤, 실업, 인종차별, 성매매, 환경오염 등 사회·윤리적인 문제들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국가는 이런 문제들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시장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자발적인 질서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개입은 관료사회의 고질적인 비효율로 인해 투입 비용에 비해 결과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자선단체 활용, 민간 아웃소싱, 시민의식 고양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의 정부들은 교육 복지 주거 등 국민생활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간섭한다.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정부일수록 비효율적이며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더 많이 침해한다. 이런 정책들은 종국적으로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이어져 개인과 사회의 활력을 위축시킨다.”

노직은 하버드대 동료 교수였던 존 롤스(1921~2002)와의 세기적 논쟁으로도 유명하다. 《정의론》의 저자인 롤스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띠면서도 평등을 강조한 사회민주주의 철학자다. 그는 사회적 정의와 분배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 복지국가 모델의 이론을 제공했다.

이에 반해 노직은 자유와 자기책임주의를 존중하는 조직과 국가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반박했다.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의 출간 목적도 롤스의 《정의론》을 논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직은 사회 정의를 소유와 분배 문제로 접근한 롤스식 복지국가는 개인과 국가의 활력과 발전을 저해한다고 강조했다. “사유재산권과 자유시장경제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준다. 자유주의야말로 역사적 진보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철학이다.”

김태철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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