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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41호 2019년 7월 15일

다시 읽는 명저

[다시 읽는 명저] 다채로운 비유와 풍자로 영국의 18세기 정치 현실 꼬집어…"풍자는 자유정신의 표현"…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도 담아

“발니바르비 왕국의 정치 연구기관은 특이한 아이디어를 냈다. 각 정당에서 100명의 지도자를 뽑은 뒤 2명의 훌륭한 의사로 하여금 이들의 머리를 반으로 잘라 각기 반대편 정당 지도자의 머리에 붙이자는 제안을 했다. 하나의 두개골 속에서 논쟁을 하면 서로 잘 이해하고 조화와 중용을 찾게 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다.”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가 쓴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약 300년 전 영국 토리당과 휘그당이 민생은 외면한 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로 사사건건 부딪치던 상황을 비꼰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에서 상대방과 소통해 꽉 막힌 정국을 풀어가라는 뜻을 담았다.

《걸리버 여행기》는 풍자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1726년 첫 출간 땐 출판업자가 원작의 거친 표현에 부담을 느껴 민감한 부분들을 대거 삭제하고 책을 냈다. 이 때문에 이 책은 단순한 아동용 동화로 분류됐다. 1735년 무삭제 원본이 나오면서 풍자문학으로 널리 읽혔다. 스위프트는 다채로운 비유와 신랄한 풍자를 통해 당시 영국의 정치 풍토를 고발했다.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네 가지 다른 각도에서 인간의 모습을 조명했다. 제1부는 소인국 얘기다. 모험심 넘치는 걸리버가 항해하다 난파당해 ‘릴리퍼트’라는 소인국에 도착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소인국 얘기는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그렸다. 거인의 눈으로 인간의 우둔함을 본 것이다. 릴리퍼트 황제는 자신이 소인국의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키가 크다고 기뻐하지만, 12배나 큰 걸리버 입장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소한 일로 정쟁 일삼는 정치 고발

정치권은 가관이다. 왕 앞에서 누가 더 줄타기 묘기를 잘하는가에 따라 관직이 결정된다. 각 정파는 국가발전, 국민 복리증진과 아무 상관없는 아주 사소한 일로 70년간 정치싸움을 하고 있다. 구두 뒤축 높이에 따라 당파가 갈라져 사생결단식 정쟁을 벌인다.

달걀을 먹을 때 뾰족한 끝 작은 모서리부터 깨느냐, 중간 큰 모서리부터 깨느냐에 따라 ‘작은 모서리파’와 ‘큰 모서리파’로 나뉘어 싸운다. 왕의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큰 모서리로 달걀을 깨다가 손가락을 다치자 그 아버지가 모든 국민에게 “작은 모서리로 달걀을 깨라”는 칙령을 내린 뒤부터다. ‘큰 모서리파’가 이 칙령에 분개해 여섯 번의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영국 의회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일로 다투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걸리버가 표류해 한국에 온다면 쓸거리가 많을 것 같다.

2부는 걸리버가 자신보다 12배나 큰 거인국(브롭딩낵)을 여행하며 거대하게 확대된 인간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내용을 담았다. 소인의 눈으로 봤을 때 인간이 얼마나 조야(粗野)한 존재인지를 그렸다. 거인국에선 아름답다고 하는 여성도 걸리버 눈에는 혐오스럽게 보인다. “한 여자의 가슴에 난 거대한 크기의 종양에는 수많은 구멍이 나 있었고, 내가 기어들어 갈 수 있을 만큼 컸다.”

세심하게 살펴보면 인간의 추함과 결점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정작 인간들은 그런 것들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걸리버는 “소인국에서의 내 모습도 흉측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3부는 지식과 학문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라푸타’라는 나라엔 수학과 음악, 사색을 즐기는 왕과 귀족들이 살고 있다. 악기로 장식한 옷을 입고 등변삼각형 같은 음식을 즐겨 먹는다. 수학과 음악을 모르면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 그러나 재단사가 만든 걸리버의 옷은 신체 치수를 잘못 계산해 몸에 맞지 않는 촌극이 벌어진다.

“풍자는 자유정신의 또 다른 표현”

과학자들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연구에 몰두한다. 대변 조사를 통해 반역자를 가려낼 수 있다는 논문도 있다.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있을 때 가장 크게 정신 집중을 하기 때문에 반역을 꿈꾸면 변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운다. 귀족들은 사색에만 빠져 있고, 과학자들은 몽상적 연구에 매달리는 바람에 백성들은 점점 살기 어려워진다.

4부에선 탐욕에 휘둘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말(馬)들의 나라인 ‘흐이늠’에서 인간은 ‘야후’라는 저열한 동물로 묘사된다. 야후는 무엇이든 독점하려는 타락한 인간의 속성을 지닌 비천한 동물로, 들판의 도둑떼로 살아간다. 이들은 배가 부른데도 음식을 놓고 다투며, 쓸모없는 돌을 갖겠다고 서로 싸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야후’ 이름은 여기에서 따왔다. 야후 창업자 제리 양과 데이비드 필로는 “인간은 이성만이 아니라 때론 한눈 팔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존재”라며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흐이늠에서 법관과 변호사들은 돈 때문에 흰 것을 검다고 하고, 검은 것을 희다고 주장하기 위해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로 그려진다. 스위프트는 생전에 “분노와 풍자는 자유정신의 표현”이라고 줄곧 강조했다. 묘비명 문구는 이렇다. “나그네여,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운 이 사람을 본받아다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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