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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31호 2019년 5월 6일

다시 읽는 명저

[다시 읽는 명저] "시장의 힘은 유연한 자기조절능력에 있다"…소유권은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이란 점도 강조

“시장은 불완전하지만 최상의 시스템으로, 악한 자들이 끼치는 해악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장과 정부는 서로 불편한 관계다. 시장은 중앙집중화한 그 어떤 대안보다 경제를 더 잘 조절한다. 정부는 시장을 왜곡하다 못해 심지어 파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그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존 맥밀런(1951~2007)이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할 때 쓴 《시장의 탄생(Reinventing the Bazaar)》(2003)은 시장을 통한 경제 운용이 왜 효율적인지를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밝히고 있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실패 사례도 추적해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를 분석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 교수는 이 책에 대해 “시장이 왜 성공 또는 실패하거나 남용되는지 그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고 했다.

소유권은 혁신의 원동력

“1990년대 초 베트남의 거의 모든 트럭이 멈춰 섰다. 옛 소련에서 수입했거나 소련 기술로 제조된 트럭들이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필요한 부품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 전체에 운송 대란이 일어났고, 다급해진 베트남 정부는 운전기사들에게 트럭 소유권을 부여했다. 그러자 트럭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시장의 탄생》 중 ‘소유권은 기적도 만들어낸다’는 장(章)에 나오는 내용이다. 맥밀런은 베트남 사례를 통해 시장이 움직이는 데 소유권이 왜 중요한지를 파헤쳤다. 원래 국가 소유였던 트럭이 자기 재산이 되자 운전사들은 폐품 속에서 필요한 부품을 찾아냈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트럭을 고친 덕분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다. 또 소유권이 보장되자 부품 및 트럭 거래 시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유권이 보장되는 곳에서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맥밀런에 따르면 소유권은 두 가지 권리에 대한 보장을 뜻한다. 기계, 토지 같은 특정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그로부터 창출되는 ‘잔여수익’, 즉 비용을 제외한 모든 여분의 수익을 가질 수 있고 △그 자산에 대한 어떤 결정도 마음대로 내릴 수 있는 ‘잔여지배권’도 갖는다. 그래서 소유주는 자산을 가능한 한 생산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소유권은 창조와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맥밀런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막 성장하기 시작했을 때, IBM 같은 기업에 인수됐다면 지금과 같은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거대기업 IBM은 MS를 하나의 작은 부서로 편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빌 게이츠가 작은 회사 사장이 아니라 거대 기업의 부서장이었다면 놀라운 혁신을 지속적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맥밀런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은 유연한 자기조절능력에 있다”고 했다. 또 “정부는 시장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규제를 통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부가 시장을 제대로 설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서 분산된 정보를 이용하고 경제를 조율하며 거래로부터 이윤을 창출하도록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과 정부는 불편한 관계"

맥밀런이 꼽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사유재산권 보호 △정보의 원활한 유통 △약속에 대한 신뢰기반 △경쟁 장려 △시장거래로 인한 제3자 피해 최소화 등 다섯 가지다. 정부 역할은 여기서 소유권과 재산권을 명확히 확립하고, 시장에서의 결정이 의사결정권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를 방지하는 등 기본적인 규범을 만드는 데 있다.

맥밀런이 말하는 ‘시장에 대한 정부 역할’은 무차별적인 간섭이나 개입이 아니다. 1994년 미국 통신업자 대상의 주파수 경매를 정교한 시장설계를 통해 얻은 성공 사례로 꼽은 데서도 알 수 있다. 그 이전까지 미국은 주파수를 원하는 업체들에 추첨으로 할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첨제는 주파수 가치나 사업자별 주파수 활용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미국 정부는 경제학자들이 설계한 경매제를 새로 도입했고, 그 결과 엄청난 재정 수입을 얻었다. 비싼 값에 주파수를 할당받은 업체들이 수익 창출을 위해 경쟁적으로 해당 주파수를 활용한 새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사회적 이득도 커졌다. 그렇게 효용이 검증된 주파수 경매는 지금 미국 이외의 많은 국가에도 도입됐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맥밀런은 책을 출간한 지 4년 뒤인 2007년 56세를 일기로 아쉽게도 타계했다. 2007년 출간된 한글 번역본은 현재 절판된 상태다.

김수언 한국경제신문 부국장(전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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