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의 한국경제史 3000년 (1) 선사시대의 한반도 (상)

경기·충청 자리 잡은 가락동유형
1인당 5㎡ 공간서 집단 거주
도끼보다 화살촉이 훨씬 많아
농경보단 수렵·채취에 집중한 듯
한반도 정착 농경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당시 반지하 움집엔 저장·난방 시설 있었죠
한반도에서 정착 농경의 성립은 기원전 13세기에서 4세기까지 청동기 시대의 일이다. 맨 처음 청동기 문화가 꽃핀 곳은 서북의 압록강과 청천강 유역이었다. 그것이 점차 남하해 기원전 12~10세기에 경기와 충청 일대에 가락동유형과 역삼동유형이란 두 문화를 성립시켰다.

정주취락의 전개

가락동유형의 주거지는 대개 장방형으로 단축 5m, 장축 10m, 면적 50㎡의 반지하 움집이다. 역삼동유형의 주거지는 단축 3m, 장축 10m로 가락동유형보다 규모가 작으며 가늘고 길다. 지금까지 발굴된 주거지는 가락동유형이 34기, 역삼동유형이 136기다. 이들 주거지의 내부 시설, 상호배치, 주변 환경으로부터 청동기 시대의 경제생활이 어땠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한반도 정착 농경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당시 반지하 움집엔 저장·난방 시설 있었죠
반지하 움집에서 1인당 주거 면적은 대개 4∼5㎡다. 이에 가락동유형의 주거지에서 함께 산 인간(사람)은 10~12명으로 소규모 가족 2~3개의 결합에 해당한다. 주거지의 내부 시설로는 식료를 보관한 저장공(貯藏孔)과 불을 지핀 노지(爐址)가 있다. 주거지당 노지 수도 대개 2~3개다. 추정되는 소규모 가족 수와 노지 수가 일치한다는 사실에서 남녀의 성적 결합으로 자녀를 출산, 양육하는 단위인 소규모 가족은 일찍부터 성립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주거지를 복수 공간으로 구분하는 토벽과 같은 시설은 없었다. 이로부터 소규모 가족이 독자적인 생활단위로까지 성립했다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가락동·역삼동유형에서 개별 주거지는 소규모 가족의 복합체였다고 할 수 있다.

가락동·역삼동유형에서 취락(聚落)은 주거지가 5기를 넘기 힘들었다. 취락 주변에는 소수의 예외가 있긴 하지만 분묘지나 농경지 같은 문화공간은 조성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사람들이 집단으로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취락의 정주(定住)가 안정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정주농업이 성립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주거지에서 발굴되는 석기 중에는 수렵에 쓰이는 화살촉이 농경에 쓰이는 칼이나 도끼보다 훨씬 많다. 여전히 수렵과 채취가 농경보다 큰 비중의 생산활동이었으며, 그 점에서 이전의 신석기 시대와 큰 차이가 없었다. 취락을 통합한 권위나 권력의 성립도 명확하지 않은 시대였다.

복합사회의 대두

기원전 9세기 이후 중서부의 금강 하류와 해안에서 또 하나의 청동기 문화가 등장해 북으로는 경기 남부까지, 남으로는 전남과 경남 일원까지 널리 확산했다. 고고학자들은 충남 부여군 송국리에서 처음 발굴됐다고 해서 이 청동기문화를 송국리유형이라 부른다. 이 유형 문화는 여러 면에서 가락동·역삼동유형과는 단절적이다. 고고학자들은 송국리유형의 기원을 둘러싸고 외부에서 유입됐다는 설과 내부에서 발생했다는 설로 대립하고있다. 송국리유형은 점차 가락동·역삼동유형을 흡수해갔지만, 두 유형은 기원전 4세기까지 지역을 나누면서 병존했다.

송국리유형의 주거지는 대개 지름 5m, 면적 20㎡ 내외의 원형이나 방형이었다. 가락동·역삼동유형의 절반에 못 미치는 면적으로 소규모 가족 하나의 생활 공간에 해당했다.주거지의 내부 시설을 보면 저장공이나 노지가 없는 게 일반적이다. 노지는 난방과 조명을 위한 시설이다. 주거지에 노지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는 고고학적으로 큰 수수께끼다. 어느 학자는 송국리유형의 취락이 계절적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학자는 주거지 내부에 평상이 설치되고 그 위에 화로와 같은 시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어느 주장도 넓은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하편에서 계속)

한반도 정착 농경은 청동기 시대에 시작…당시 반지하 움집엔 저장·난방 시설 있었죠
■이영훈 前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951년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곡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다. 한신대, 성균관대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경제사학회·한국고문서학회·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조선후기사회경제사》《대한민국역사》《한국경제사Ⅰ·Ⅱ》 등이 있다.

■저자의 말

나의 《한국경제사Ⅰ·Ⅱ》(일조각, 2016)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경제생활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종래의 한국사 연구는 경제사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상적 설명에 머물렀다. 후대의 평가에 맡겨야겠지만, 주관적으로는 앞선 시대와 뒤이은 시대의 경제적 인과를 실증적으로 해명한 최초의 연구서가 아닌가 자부한다. 그 3000년의 한국 경제사를 연재를 통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