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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82호 2018년 2월 12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3)] 정읍사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

정읍사는 현전(現傳)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屬縣)이다. 고려시대에 향유된 음악과 관련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고려사악지’에는 이 노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배경 설화가 전한다. 정읍 사람이 행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가 산 위의 바위에 올라 남편이 간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길을 오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고개에 올라 달에 의탁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이 전하기를, 오른 고개에 아내의 망부석이 있다 한다.

행상 나가 오래도록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아내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시절 평범한 민초에게 통신 수단이 있었겠는가.

아내는 남편이 걱정되었으리라. 걱정 끝에 달을 보며 소망을 말한다. 높이 돋아서 멀리 비추시오. 세상을 훤히 비추어 우리 서방님 밤길 무사히 걷도록 해 주시오. 아내는 남편이 ‘즌 (진 데)’를 디딜까 염려한다. 진 데, 진 곳, 진 땅. 이는 남편에게 닥칠 수 있는 위해에 대한 염려이다. 또는 남편에게 다른 여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도 읽힌다.



임이 없다면···달은 메신저

물론 의심은 연모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또 아내는 염려한다. ‘내 가논 ’가 저물까봐. ‘내 가논 ’는 ‘내가 가는 길’, ‘남편이 가는 길’, 또는 ‘임과 내 앞에 놓인 길’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어떻게 해석해도 이것이 임의 부재가 초래할 순탄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내가 바라보는 저 달, 아마 남편도 바라보고 있겠지. 아내는 어딘가에서 저 달을 보고 있을 남편에게 내 소망이 전해지기 바랐을 것이다. 말하자면 달이 남편과 자신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서 돌아오라는 기원을 전해 주기 바랐을 것이다. 달이 있어서 긴 기다림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달에게 더 적극적으로 메신저 역할을 요구하는 작품도 있다. 향가 ‘원왕생가(願往生歌)’가 그러하다. 이 노래를 부른 광덕은 달에게 간곡히 청한다. 왕생을 원하여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음을 부처에게 전해달라고. 이 몸(광덕 자신)을 남겨 두고 사십팔대원을 이루시겠냐고 자못 겁박에 가까운 강력한 청원을 한다. 사십팔대원은 아미타불이 법장 비구라 불렸던 옛적에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마음먹었던 48가지 큰 소원이다. 꽤 간이 큰 불제자다.

고대인도 현대인도 달을 보며 소원 빌어

일본 근대문학의 대가 나쓰메 소세키가 영어 교사로 재직할 당시 제자가 ‘l love you’를 ‘나는 너를 사랑해’로 번역하자 “일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 달이 아름답군요 정도로 해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에게는 직접적인 사랑 고백보다는 우회적인 방식이 적절했을 것이다. 또 함께 달을 볼 정도의 남녀라면 진지한 연인이라는 방증이라는 당시의 분위기가 읽히기도 한다. 이때의 달은 단연 사랑의 메신저이다. 이 일화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역시 달과 연정의 조화가 가진 생명력 때문일 것이다.

정읍사의 가사는 ‘악학궤범’에 전해지는데 전강·소엽·후강전·과편·금선조·소엽 등 궁중 무용 반주에 사용된 음악 곡조명도 함께 적혀 있으므로 오랜 세월 구비전승되다가 궁중 음악으로 연주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밤의 광명. 고대인도 현대인도 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 사랑을 고백한다. 유일하게 전해지는 백제의 노래가 달과 애틋한 연모를 함께 품고 있어서 참으로 아름답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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