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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80호 2018년 1월 29일

소설가와 떠나는 문학여행

[문학이야기] "문학이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죠"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

/이운진, ‘슬픈 환생’ 중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문학작품

첫눈에 시선을 붙들어 매는 문학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읽는 이가 자각하기도 전에 그를 낯선 시공으로 이동시킨다.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는 이 시가 그랬다. 시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고비 사막 모래 바람 속에서 눈물을 훔치며 개의 꼬리를 자르는 몽골인이 된다. 주인의 품에서 잠든 것을 마지막 행복으로 여기는 개가 된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금세 서재로 돌아와 사막에 묻힌 꼬리들을 세어 본다. 얼마나 많은 꼬리들이 모래언덕 사이에 숨어 있을까. 꼬리들 하나하나가 품고 있을 사연과 주인의 기도 내용을 궁금해 한다.

이 시를 읽은 많은 이들이 아마도 몽골로 시간 여행을 했으리라. 칭기즈칸의 시대로 가 환란의 어지러움에 휩쓸리기도 하고 연대 불명의 사막으로 가 낙타의 쌍봉에 올라타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반려 중인 강아지를 껴안으며 꼬리를 만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나 지금은 별이 된 고양이를 떠올리며 환생을 빌었을 것이다. 또는 시인처럼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을 버거워하거나 꼬리와 맞바꾼 삶이 꼬리보다 무거움에 또는 가벼움에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기억하려 애쓰다 망각의 슬픔마저 초원의 건조함에 빼앗겨버렸을 수도 있다.

상상을 하고 삶을 돌아본다

어쨌든 우리는 이 한 편의 시를 읽으면서 시를 읽지 않았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상상을 하고 상념에 빠지고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런 상상과 상념과 성찰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한 시인의 작품을 읽었지만 타인의 것과는 다른 나만의 세상이 하나 생겨난다. 물론 친구와 감상을 나눌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체험이 고유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작품은 이렇듯 읽은 이의 숫자만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하나의 문학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 속에는 세상들이 생긴다. 또 이 세상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만나서 대화하고 교통하며 때로 부대끼고 충돌하며 질적으로 상이한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킨다.

이렇게 나의 세상은 점점 확장되고 깊어지며 단단해진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내면을 가진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것은 지식의 습득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 생각을 교환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문학 읽기만이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는 자산이 분명히 존재한다.

읽고 즐기면 성적은 ‘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말한다.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해. 그러나 시와 미(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키팅 선생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지와는 별개로 시를, 문학을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자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렇게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우리는 자신의 크기를 가진 고유한 존재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읽는 작품은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은 모두 재미있다.

첫눈에 시선을 뺏기는 작품을 자주 만나서 그 속으로 떠나고 빠져들고 다시 돌아오기를 권하고 싶다. 다만 그것을 권하고 싶다. 감상문은 쓰면 좋다. 그러나 강권하지 않는다. 언어로 구획되지 않는 무정형의 체험이 때론 우리를 더욱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몸인지 마음인지 머릿속인지 모를 그 어딘가에 저장돼 우리를 조금 더 낫게 살게 하기 때문이다. 그저 읽고 느끼고 즐기라고 다시 말하고 싶다. 그것이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다. 국어 성적 향상은 아마도 덤일 것이다.

◆손은주 선생님 인사말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으뜸은 책을 통해 만나는 것이라 믿고 있어요. 그것이 문학 작품이라면 더 좋겠어요. 다양한 주제로 매주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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