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거의 없앤 SK·부전공란 삭제한 현대차·면접시 스펙 가리는 롯데
[Cover Story] [Cover Story-블라인드 채용 빛과 그림자] 민간기업도 '블라인드 채용' 실험 중
최근 취업시장에 ‘블라인드 채용’이 화두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력서에 학벌이나 학력, 출신지, 신체조건 등 차별적 요인은 일절 기재하지 않도록 해 공정한 채용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력서에 각종 스펙란을 없앤 기업들은 채용 때마다 수만 명씩 몰리는 지원자와 제조업 특성상 이공계생 채용이 많다 보니 ‘완벽한 블라인드 채용’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래서 부분적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 중이다.

SK, 스펙 거의 안 봐…현대차·LG도 점차 줄여

SK그룹은 2015년 상반기 공채부터 파격적인 채용 실험에 나섰다. 학력과 전공, 학점 등 기본적인 정보를 제외하고는 스펙을 일절 보지 않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입사지원서에 △외국어 성적 △정보기술(IT) 활용 능력 △해외 경험 △수상 경력 △업무 경험 △논문 내용 등을 기입하는 난을 없앴다. 다만 해외영업직이나 제약 연구분야 등 특정 직무에 한해서는 외국어 성적이나 자격증을 제시토록 했다. SK그룹 인재육성위원회 관계자는 “구성원의 문제 해결 역량 등 직무수행 능력이 사업 성패를 좌우하는 경영환경 변화 등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SK는 2013년부터 오디션 방식의 스펙 초월 전형 ‘바이킹 챌린저’를 통해 전체 신입사원의 10%를 뽑아 왔다. 끼와 열정을 지닌 지원자가 스펙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경험을 15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SK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이력서에 각종 기입란을 없애는 추세다. 현대자동차는 2011년부터 5분 자기PR을 통해 서류전형 면제 혜택을 주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는 블라인드 수시채용 ‘힌트(현대 인터뷰의 줄임말)’를 도입한다. 현대차는 2013년 상반기 채용을 앞두고 공채 입사지원서란에 사진, 부모 주소, 외국어 구사 능력, 석·박사, 전과 및 편입 여부를 없앴다. 심지어 이중국적 내역란도 삭제했다. 2014년 공채에서는 부전공과 해외거주 여부도 삭제한 뒤 비상연락망까지 없앴다. 그리고 올 상반기 공채에서는 동아리, 봉사활동 내역란도 없애 지원자의 이름을 비롯한 최소한의 정보란만 남겨 두었다. LG그룹은 2014년 하반기 공채부터 사진, 수상경력, 어학연수, 인턴경험, 봉사활동, 가족관계, 주소를 지원서란에서 없앴다. 심지어 지원자의 주민등록번호란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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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 ‘스펙 블라인드’ 처리하기도

서류단계에서는 지원자 스펙을 놔두고 면접에서 스펙을 블라인드 처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롯데는 면접과정에서 지원자의 학력란(학교, 학점, 전공, 입학·졸업연도)을 블라인드 처리해 면접관이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롯데는 ‘스펙태클’ 오디션으로 인턴 기회를 준다. CJ도 지원서 단계에선 기본적으로 지원자 정보를 기입토록 하지만 면접단계에선 지원자의 이름, 전공 등만 볼 수 있도록 했다. KT는 지역 거점 대학 출신 우수인재채용, 특이한 경험과 전문자격증 보유자를 뽑는 ‘달인채용’ 등을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현장면접 ‘스타오디션’으로 서류전형을 면제해 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신장과 학력, 병역사항, 유학 경력도 이력서에서 없앴다. 심지어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승무원 채용 시 사진란을 없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많은 승무원 지원자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메이크업, 스튜디오 촬영비 등에 시간과 비용(1인당 평균 25만원)을 쏟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원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사진란을 없앴다”고 말했다

‘외국어 기입란’ 없애는 금융권

스펙을 없애는 것은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2014년 하반기 공채부터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예금보험공사, 주택금융공사, 예탁결제원, 한국거래소 등은 이력서에 금융자격증과 외국어 기입란을 없앴다. 어학능통자가 필요한 경우는 별도 채용을 통해 뽑는다. 또한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농협 기업은행 등도 이력서에 어학성적과 금융자격증 기입란을 삭제했다. 취업준비생들의 ‘스펙 쌓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취재 중 만난 한 기업 채용담당자는 “공정한 채용을 하자는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일률적으로 학력, 학점 등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실무자로서는 무리”라며 “효과적인 평가 도구를 못 갖춘 기업들은 실력 있는 사람을 뽑기 어려운 채용제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NIE 포인트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방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알아보자. 기업들이 전면적인 블라인드 채용을 꺼리는 이유도 생각해보자.

공태윤 한국경제신문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