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은 진화한다. 유통 진화가 멈췄다면 상품과 서비스 역시 진화하지 못했다. 생각해보자. 지금도 조선 후기 보부상이 전국 물류를 담당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어떨까? 원시 조선시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보부상은 19세기 전국을 걸어다니며 물건을 팔았던 초기 유통망이었다. 중국이나 외국에서 들여온 값비싼 물건과 옷감, ‘동동구루무(화장품)’ 유통은 보부상이 담당했다. 지금의 두산그룹 창업자가 바로 보부상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 놀랍다. 박승직이라는 분은 한양 애오개에서 전남 땅끝 마을까지 물건을 팔러 다니던 보부상이었다. 거기서 돈을 모아 상점을 열었고, 사업을 키워 오늘날 두산그룹을 일궜다.

보부상은 유통 진화에서 밀려나야 했다. 동네마다 가게가 생겼다. 5일장이 있었지만 동네가게는 매일 문을 열었다. 소비자는 더욱 편리해졌다. 물건 수가 많아졌고 소비자 선택 폭도 넓어졌다. 가게가 늘었고 이전보다 값이 싸고 좋은 물건이 가득했다. 보부상은 설 땅을 잃었다. 보부상을 보호하기만 했다면 진일보한 동네가게를 소비자들은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네가게는 시간이 흐르자 슈퍼와 마트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깔끔한 슈퍼와 마트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신선한 제품이 많았고, 물건의 가짓수는 더욱 늘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쾌적한 곳이 마트다. 마트도 대형화됐다. 자동차를 몰고가 쇼핑을 할 수 있게 됐고, 거기에서 식사도하고 영화도 본다.

요즘 대형마트 영업시간이 규제를 받고 있다. 대형마트가 동네 슈퍼를 집어 삼킨다는 비판이 대형마트에 쏟아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힘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보부상이 동네가게에 밀렸듯이 대형마트도 요즘 온라인 쇼핑에 밀리는 중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쇼핑한다. 온라인 쇼핑이 급팽창 중이다. 온라인 쇼핑은 또 하나의 진화다. 보부상에서 온라인 쇼핑까지의 역사를 보면 유통진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동네가게를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은 대형마트를 위해 온라인 쇼핑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와 같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