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사회적 경제 교과서' 배포
[포커스] '사회적 경제' 보다 시장경제 원리 먼저 배워야
‘사회적 경제는 양극화와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 ‘협동조합은 경제위기에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는 등….’

서울 초·중·고등학생이 오는 2학기부터 정규 수업시간에 배울 ‘사회적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다. 서울시와 서울교육청이 ‘돈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경제 교육’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해부터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종사자들과 함께 제작한 교과서다. 헌법에 명시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가르치는 교과서도 없는 마당에 학생들에게 반(反)시장경제와 반기업 정서만 심어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포커스] '사회적 경제' 보다 시장경제 원리 먼저 배워야
서울시와 시교육청이 19일 공개한 ‘사회적 경제 교과서 워크북’에는 사회적 경제의 등장 배경과 개념,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 등에 대한 내용이 기술돼 있다.

시장경제 전문가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앞세우고, 사회적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 없이 장점만 나열한 이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는 ‘사회적 경제 실현을 통해 양극화와 실업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 경제는 시장경제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에 불과하다”며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사고관을 가르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교과서는 협동조합에 대해 주식회사보다 긍정적으로 썼다. “높은 이윤을 기대할 수 없는 사업에 대해 투자 의욕이 낮은 주식회사와 달리 협동조합은 일자리 확보 등 위기 극복 능력을 갖고 있고 공동 이익을 추구한다”는 식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력을 갖춘 협동조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기획재정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8000개에 가까운 협동조합이 설립됐지만, 이 중 실제로 활동 중인 곳은 10% 안팎으로 추정된다. 교과서는 사회적 기업이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및 불평등 해소에 기여한다”고 평가했다. 전국 1000여개의 사회적 기업 중 상당수가 정부 보조금에 의지한 채 부실 운영되고 있다는 내용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과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마을공동체 및 마을기업, 공정무역 카페 등 서울시의 정책 사례가 다수 포함돼 편향적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적 경제 교과서 제작에는 서울시와 시교육청, 시의회 및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기업 및 경제계 인사들은 배제됐다. 시교육청은 이 교과서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서 관련 교과 수업과 연계한 보조자료로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중학교에서는 ‘인정 교과서’로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인정 교과서는 시·도교육감 승인만 있으면 학교에서 쓸 수 있는 필수과목(국어·영어·수학 등) 외 교과서를 말한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사회적 경제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시장경제는 나쁘고, 사회적 경제는 좋은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며 “편향적인 경제관이 학생들에게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 사설]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경제" 이념 교육 나선 서울시

서울시가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경제’를 가르치는 교재를 제작해 보급한다고 한다. 서울시 3억원, 서울교육청 1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만든 이 교재를 초등학교에 7000여권, 고등학교에 1만4000여권 우선 보급하고 중학교용은 8월 말까지 개발키로 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협력’과 ‘연대’를 기본 가치로 내세우면서 우리 헌법(119조1항)상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 개념이다. 이런 논란엔 눈감은 채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만능’이라고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교재 내용부터가 노골적인 왜곡이 많다. 고등학교용 ‘사회적 경제 워크북’에선 2008년 금융위기 때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으나, 협동조합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는 등 위기 극복 능력을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문제도 사회적 기업을 통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는 수많은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협동조합의 경우 작년 8월 말 현재 전체 7759개 가운데 10%만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실패했거나 정부 지원금만 챙기고 사라졌다. 이런 왜곡된 내용을, 공공예산까지 써가며 가르치겠다는 것은 노골적인 반(反)시장경제 이념 운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문제는 정부와 여당이 이에 대처하는 자세다. 새누리당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원내대표를 지낸 사람까지 가세해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지난해 발의한 상태다. 당시의 사회적 경제 기본법에 따르면 정부는 사회적경제원을 세워야 하고, 사회적 기업 등이 생산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5%까지 구매해야 한다. 공공기관 구매액 가운데 1조8000억원어치가 사회적 경제 조직에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여당이 이념적 정체성 없이 ‘좌클릭’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이제 여소야대까지 됐으니 이 법을 막을 길은 없다.

경제적 자유와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시장경제가 아니라 모두 다같이 나눠갖자는 사회적 경제 이념이 학교를 뒤덮으면 우리 사회는 남미식 포퓰리즘으로 침몰하는 길밖에 없다. 누가 이런 좌익이념 의식화 교육을 막을 것인가.

강경민 한국경제신문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