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공격 전원수비 '토탈사커' 창조자…포지션 경계 허물어 선수효율 극대화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13) '축구 철학자'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

크루이프는 왜 전설이 된 것일까요? 오랫동안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축구의 기본개념 가운데 몇 가지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혁신가이자 철학자였습니다. 현대 축구는 토탈사커(total soccer)입니다. ‘전원공격 전원수비’가 이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 개념의 창시자가 바로 요한 크루이프입니다. 그 이전 시대의 축구는 각각의 포지션에 따라 전해진 플레이 영역이 있었습니다. 수비는 절대로 하프라인을 넘어가면 안되고, 라이트 윙은 경기장 왼 편으로 이동하지 말아야 하며 골키퍼는 절대로 페널티 에어리어를 벗어날 수 없다는 식이지요.

크루이프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플레이하면 팀의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예컨대 우리 팀이 수세에 몰린다면 기존의 방식으로는 수비수들이 체력을 더 소모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공격수들의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다. 특정 포지션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나면 팀 경기력 전체가 떨어진다. 다른 선수들은 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바르셀로나팀 진화의 비결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13) '축구 철학자' 요한 크루이프
효율을 극대화하는 길은 포지션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공격수들이 수비에 나서고 경우에 따라서는 최후방 수비수도 상대팀 깊숙이 치고 올라가 공격에 가담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여담입니다만, 오프 사이드 트렙도 토털사커의 부산물입니다. 다만 이 작전은 상대 공격수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좁은 공간에서 경기를 펼쳐 롱 패스보다는 세밀한 축구가 더 유리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세계 축구계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토털사커를 무시합니다. 네덜란드 리그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경쟁의 강도가 높은 국제무대에서는 어림없다는 이야기였지요. 리누스 미셸 감독은 ‘요한 크루이프라는 선수가 있기에 이 전략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받아 쳤습니다. 크루이프가 주장으로 뛰었던 네덜란드는 1974년 월드컵에서 토털사커 시제품을 선보입니다. 세계는 경악했습니다. 기존의 금기를 깨는 스타일인데 강자들을 연파하며 성적을 냈으니까요. 1970년 대회 챔피언이자 세계최강이던 브라질이 생전 처음보는 스타일의 축구에 무기력하게 당하며 0-2로 무너집니다. 결승전에서 개최국 서독에게 1-2로 패해 토털사커의 꿈은 완성 일보 직전에서 무너집니다. 하지만 우승팀 주장 베켄바우어가 ‘크루이프는 나보다 위대한 선수고 네덜란드는 우리보다 나은 팀이다. 그렇지만 세계챔피언이 된 것은 나다. 서독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1985~1988년 네덜린드 아약스 암스테르담 감독을 거쳐 1988년 세계적인 명문인 스페인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크루이프는 토털사커의 완성품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한 사람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해야 한다는 멀티 플레이어 이론, 정확도가 떨어지는 롱패스보다는 짧고 간결한 패스로 전진한다는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갔다 한다는 뜻입니다), 볼 점유율을 높이고 모든 선수들이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전원 동시이동론 등이 현실에서 구현되면서 바르셀로나는 세계 최고의 축구팀으로 진화합니다. 그가 만든 바르셀로나 유스시스템 ‘라마시아’도 중요합니다.

어린 선수들을 뽑을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체격이 아니라 재능과 지력이라는 모토아래 훈련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무한반복’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더 성과를 낸다는 것이지요. 팀보다 나은 개인은 없다는 철학 아래 패스 축구를 몸에 익히면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선수로는 이승우, 장결희, 백승호 등이 지금 바르셀로나 유스 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선수 시절의 크루이프와 선수로서 대결했던 한국인도 있습니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입니다. 필립스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하던 당시(1981~1983), 아약스 소속이던 크루이프의 전담 마크맨으로 밀착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허정무의 끈질긴 수비에 짜증이 난 크루이프가 엘보우로 가격을 했고 다음 날 ‘이 대결의 승자는 허정무’라는 기사가 네덜란드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크루이프는 ‘내 행동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며 허정무 선수에게 공개 사과했습니다. 덧붙이자면, 2002년 월드컵 이후 아인트호벤에 입단한 이영표와 박지성은 팀의 2, 3호 한국인이었지요.

‘축구는 쉽다. 하지만 축구를 쉽게 하는 것은 어렵다’,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 왜 중요하냐고? 경기장에 공을 단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공 없이는 득점도 승리도 불가능하다’, ‘골키퍼로부터 공격이 시작되고 최전방 공격수로부터 수비가 시작된다’가 모두 크루이프의 어록입니다.
철학자는 자기가 사랑했던 바르셀로나에서 영면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