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IT 넘어 언론·출판까지…전통산업 새 수익모델 '꿈틀'

행복한 닭 프로젝트 - 70만원
토종콩 잡곡 판매 - 300만원
허영만 만화 출판 - 1200만원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 9억원
[포커스] 새 시장 만드는 크라우드 펀딩…'농업의 잡스' 되겠다, 돈 모아달라
우리가 먹는 달걀의 99%는 A4용지보다 작은 닭장(케이지)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평생을 지내는 닭들로부터 나온다. 스트롱에그협동조합은 달걀에 주목한 벤처기업이다. “행복한 닭이 건강한 달걀을 낳는다”는 철학에 따라 닭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넓은 울타리 안에서 달걀을 생산한다. 이 회사가 세간의 화제가 된 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와디즈(www.wadiz.kr)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면서부터다. 모금액(70만원)은 크지 않았지만 양계 실상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소액의 돈을 십시일반 모아 투자에 활용하는 자금조달 기법이다.

십시일반 돈 몰리는 농촌

신동호 스트롱에그협동조합 대표(왼쪽 세 번째)와 직원들이 공장식 케이지 방식을 탈피해 자유롭게 풀어놓은 닭에서 생산한 달걀을 소개하고 있다. 스트롱에그협동조합 제공
신동호 스트롱에그협동조합 대표(왼쪽 세 번째)와 직원들이 공장식 케이지 방식을 탈피해 자유롭게 풀어놓은 닭에서 생산한 달걀을 소개하고 있다. 스트롱에그협동조합 제공
충북 괴산군 감물면 박달마을의 50대 청년회원 7명은 토종 콩을 판매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수요가 적은 토종 콩만을 따로 파는 것보다 여러 가지 잡곡을 섞어 부가가치를 높이기로 한 것. 7명의 농부가 귀족서리태 선비잡이콩 찹쌀현미 등 6가지 잡곡을 각각 재배해 ‘박달청춘’ 잡곡 꾸러미 상품을 만들었다.

이들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데는 ‘농사펀드’라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의 도움이 컸다. 일정액을 후원한 사람에게 박달청춘 꾸러미를 보내주는 식으로 목표액 대비 111%인 300만원을 모았다.

가내 수공업 형태의 농산물 가공업도 빛을 보고 있다. 충남 청양의 유정녀 씨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청양된장은 420만원을, 친환경 들깨로 짠 정준호 들기름은 730만원을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았다.

언론·출판에서 장학금까지

신문과 출판 등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산업에서도 크라우드펀딩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대표 인터넷 업체 다음카카오는 크라우드펀딩 기반 뉴스 생산 플랫폼 ‘뉴스펀딩’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뉴스펀딩은 누적매출 9억원을 모으며 언론의 새 수익모델을 제시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북펀드’는 중소형 출판사를 돕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독자들은 등록된 프로젝트 중 마음에 드는 도서를 골라 원하는 액수만큼 투자한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로 재탄생한 ‘허허동의보감 1’은 1200만원을 모으는 등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는 크라우드펀딩을 이용해 장학금을 모으는 ‘허버브(hubbub)’라는 서비스도 있다. 영국으로 이주한 2세대 아프리카계 영국인 레이첼은 옥스퍼드대 이주학 전공 석사 과정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입학 취소 위기에 놓였다. 레이첼은 포기하지 않았다. 허버브를 통해 이주학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자신과 같은 소수 여성이 학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한 것. 그의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1만1000파운드(약 1900만원)를 내놓으면서 레이첼은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다.

롱테일 경제의 실현

크라우드펀딩은 롱테일 경제를 실현한다. 롱테일 경제란 미국의 경영전문지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이 주창한 개념으로 인터넷의 발달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크라우드펀딩을 활용하면 상품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요 예측의 어려움으로 발생하는 리스크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조용기 한국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 회장은 “보상형 크라우드펀딩이 조금씩 활기를 띠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소규모 자금조달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 크라우드펀딩

인터넷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십시일반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 일정액을 후원하면 소정의 상품을 보내주는 ‘보상형’, 회사의 지분에 투자하는 ‘지분투자형’, 개인 간 대출을 중개하는 ‘대출형’ 등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에서 지분투자형은 자본시장법으로 막혀 있고 대출형도 관련 규제가 많은 탓에 지지부진하다.

박병종 한국경제신문 기자 dda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