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법재판소, 시효지난 검색결과 삭제 요구권 인정…"알 권리 침해" 일부는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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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지워도…지워도…인터넷에 떠도는 내 정보, '잊혀질 권리'는 없나요
“인터넷은 한번 흡수한 정보를 내뱉지 않는다” 인터넷의 무수한 정보는 한번 유통되기 시작하면 좀 처럼 삭제되지 않고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됨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회적 이슈에 관련된 인물의 신상정보는 인터넷에서 언제든 다시 검색할 수 있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정보가 정확하지 않고 부적절해져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그 내용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문제때문에 ‘잊혀질 권리’ 도입의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잊혀질 권리는 개인이 온라인 사이트에 검색되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가 인터넷 구글사이트에서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구글은 ‘실망스런 결과’라며 검색 결과를 조작하지 않고 링크가 제공됐기 때문에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위키백과 설립자인 지미 웨일스는 “잊혀질 권리의 인정은 일종의 ‘검열’”이라며 비난한다.

유럽재판소, 구글 기사 삭제권리 인정

유럽 최고재판소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구글 이용자가 시효가 지났거나 부적절한 구글 검색결과에 삭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인터넷서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 판결 결과에 따라 신문 등 제 3자가 게재한 웹페이지 링크에 자신과 관련된 정보가 포함되어 있으면 해당 링크를 내려달라고 구글에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정보를 올린 당사자가 기사나 웹사이트를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판결은 ‘검색 엔진이 제공하는 검색 결과’에만 적용된다.

하지만 판결은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의 주민 5억명에 적용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유럽 구글 이용자들의 구글 검색 정보 삭제요청이 확산되고 있다. 판결 후 2주 동안 저작권 침해와 관련해 구글 삭제요청 웹페이지가 530만 건이 넘었다.

구글은 유럽재판소의 결정에 항소할 수 없다. 스페인 법원이 EU 법령을 해석한 내용에 ECJ의 의견을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결 해석의 여지는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 받을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구체적 방안에 대한 논의가 남아 있다.

인터넷서 사적정보 삭제 요청 권리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는 인터넷에서 생성·저장·유통되는 개인 사진이나 성향 등 사적 정보에 소유권을 강화하고 정보의 유통기간을 정하거나 이를 삭제·수정·영구 파기 등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 권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도출됐다. 정보의 생산은 쉬운 반면 삭제와 파기가 쉽지 않은 인터넷 환경에서 잊혀질 권리 도입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인터넷이 현재와 같이 활성화 되기 이전에는 소규모로 친밀한 집단, 가족, 친구 끼리 정보를 공유했다. 하지만 현재 인터넷 검색으로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한번 생산된 정보의 유통과 유효기간은 거의 무한대다. 누구나 쉽게 언제든지 과거 기사에 접근하고 재활용 할 수 있다.

ECJ의 이번 판결이 인터넷에서 잊혀질 권리를 즉각적으로 전면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 받을 권리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 적절한 균형점부터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ECJ도 그 균형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에 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구글이 어떤 삭제 요청은 수용하고 어떤 요청은 거절할수 있는지를 명시하지 않았다. EU 회원국 법원은 이 판결을 가이드 라인으로 삼아 자체적으로 다시 판결을 내려야 하고 각국마다 잊혀질 권리와 프라이버시 보호가 조금씩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알 권리’·‘표현의 자유’와 충돌

검색엔진은 다른 웹사이트에 올라온 정보를 제어하지 않지만 검색 결과 페이지에 뜨는 정보를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다른 웹사이트에서 게재하는 내용을 보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공개된 개인정보를 취합하고 유명인 등의 프로필을 생성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정확한 데이터가 검색되고 합법적으로 처리됐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부적절해지거나 과도해질 수 있기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회적 이슈때마다 소위 ‘신상털기’라고 하는 행위가 온라인에서 발생한다. 개인의 직업·전화번호·주소 등 일체의 정보가 공개돼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일으켰다.

반면 잊혀질 권리 인정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대중의 ‘알권리 침해’를 우려한다. 검색엔진은 온라인상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잊혀질 권리 인정으로 뉴스에는 계속 거론되는 정보들이 구글에서만 그 뉴스를 검색할 수 없게 될뿐이라고 지적한다. 뉴욕타임스는 “인터넷에서 사업가의 10년전 파산 기록을 삭제하는 게 정당한지 아니면 5년이면 괜찮은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검색업체가 일부 검색 결과를 편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권력 감시 등 인터넷의 순기능을 방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우리나라는 명예훼손 등 제한적 경우에만 한시적 블라인드 허용

국내에서는 당사자가 인터넷에 올라간 개인정보에 대해 인터넷 서비스업자에 직접 문제를 제기하면, 해당 콘텐츠를 일단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일명 ‘블라인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이 제도는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시행되며 ‘사생활·저작권 침해’나 ‘명예 훼손’ 등의 경우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개인 블로그에 자신의 사적인 정보가 있는 경우, 해당 게시물의 게재를 임시 중단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삭제 요청을 받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30일 동안 해당 게시물이 보이지 않게 차단하는 임시조치를 취하게 된다. 게시물의 적합성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적법한 자격을 갖춘 기관이 판단한다. 30일이 지난 뒤 특별한 이의제기가 없으면 해당 게시물은 삭제 처리된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연도별 임시조치 건수는 2008년 9만2638건에서 2013년 24만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검색 엔진 사용자가 개인정보 관련 게시물을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 삭제 요청했을 때 즉시 지우도록 하는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는 개인정보가 담긴 글을 본인이 직접 삭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인터넷에 올린 사적인 글과 사진 등 정보를 개인 차원에서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