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100년 역사 인터폴…지구촌에 숨을 곳은 없다
1914년 모나코 왕궁에서 왕실 귀중품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모나코 왕자 알베르 1세의 연인과 이 연인의 또 다른 남자가 왕궁 비밀통로를 통해 왕실 귀중품을 모조리 훔친 것이다. 이들은 이탈리아로 곧바로 도주했다. 하지만 모나코 경찰은 국외에서 절도범을 수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에 알베르 1세 왕자는 14개국 법학자와 경찰관을 초청해 ‘국제형사 경찰회의’를 열어 수사협조를 요청했다. 이 사건이 국제경찰기구 ‘인터폴’의 시초다. 인터폴은국제 범죄를 공조 수사하는 국제기구로 올해로 설립 100주년을맞았다. 해외 도피사범 증가, 테러등 범죄가 점차 국제적 문제가 되면서 인터폴의 역할과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90개국 국제범죄 수사공조

인터폴(International Criminal Police Organization·ICPO)은국제형사 경찰 기구다. 국경을 초월한 전 세계 경찰 공조 시스템이다. 모나코 왕실 귀중품 도난 사건을 계기로 열린 국제형사 경찰회의를 시초로 1923년 국제형사경찰위원회(ICPC)로 출발했다.하지만 1938년 ICPC의 본부가 있던 오스트리아를 나치스(히틀러를 당수로 둔 독일 파시즘 정당)가 점령했다. 나치스는 기관 내 정보를 유대인 학살에 이용했고 ICPC의 기능은 전면 중지됐다. 이후 1956년에 인터폴이설립돼 국제범죄에 대한전 세계 경찰의 수사 공조가 가능하게 됐다.

인터폴 회원국은 미국 중국프랑스 캐나다 독일 등 190개국이다. 이는유엔 다음으로 가입국 수가 많은 규모로 한국은 1964년에 가입했다.

가입국마다 정보교환사무소를 두고 있고 각국 사무소는 범죄 정보교환과 수사에 협력한다. 운영자금은회원국이 분담하는데 연간5900만유로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인터폴 본부는 프랑스 리움에 있고연 1회총회를 연다. 서울에서는 1999년 총회가 열렸고 테러, 마약 거래, 문화재 밀매 등의 국제범죄 대책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강제수사·체포권은 없어

“인터폴이다. 당신을 체포하겠다.” 영화 속 주인공의 대사 같은 이런 상황은현실에는 없다. 인터폴은 국제범죄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범죄정보를 교환하는 창구이지강제수사권이나 체포권은 없기 때문이다. 각국 경찰의 정보공유 시스템으로 국제적 범죄·사건사고가 해마다 늘어 인터폴 수사공조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말레이시아 여객기 실종 사건에서도 인터폴을 통해각국 경찰기관의 정보공유가 활발히 이뤄졌다.수사 대상은국제 부정부패·테러·사이버 범죄 등이다.회원국의 국내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치·군사·종교·인종 문제 등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인터폴 통신망은 해외도피 범죄인의 개인정보·지문·DNA 자료등을 데이터 베이스에 축적하고24시간 접근과 검색이 가능하도록 돼 있다. 출입국관리 국경통제 등 실질적 수사정보가 필요한 기관에 바로전파된다.

도피사범 우범자 테러분자 등에 관한 자료는 ‘수배서’ 형태로 배포한다. 수배서 색상은 적색·청색·녹색·황색 등 5단계 유형으로 나뉜다.특히 적색수배서(red notice)는 형법 위반에 따른 체포 혹은 구속영장이 발부된 대상에 발행된다.적색수배범죄자가 발견되면 인터폴이 즉시 신병구속이가능한 최고 강도의 수배다.

한국 파견 경찰도 ‘맹활약’

인터폴 인원은700여명으로이 중 약 33%는 각 회원국의 경찰 기관에서 파견된 현직 경찰이다. 한국은 1990년에 처음 인터폴 사무총국에 경찰관을 파견했다. 현재프랑스 본부 1명, 싱가포르 2명, 태국 연락사무소 1명 등 총 4명의 현직 경찰관이 ‘인터폴 업무협력관’으로 파견 중이다. 인터폴에 선발되려면 경찰 경력 5년이 넘는경감 이상 간부 가운데외국어 실력과 경찰·범죄·국제법 등 관련 지식과 소양 등을 갖춰야 한다.

인터폴 본부에 근무 중인 김종양 치안감은최고의결기구이자 관리·감독 기구인 집행위원회 소속이다. 김 치안감은 “범죄자 지문과 인적 자료 보관 및 활용 문제, 테러 등의 범죄 발생 시 인터폴 직원 파견을 위한 비자 발급 문제논의 등의 업무를 한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사무총국에 파견 중인 양근원 총경도 인터폴에서 사이버 범죄 전문가로 꼽힌다. 한국 경찰 최초로 팀장급 간부직으로 파견됐고‘사이버범죄국’에서 사이버범죄 증거 분석 등을 담당하고 있다. 단순한 지역 담당자가 아니라 전문 작전부서 팀장으로 한국 경찰이 근무하는 것은 인터폴 내에서 한국 경찰의 사이버 수사 역량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륙별 국제경찰기구 유럽엔 유로폴-중남미엔 아메리폴-동남아엔 아세안폴

유럽중남미동남아시아 등 대륙별로 국경을 초월한‘국제경찰기구’가설립돼 있다. 이는 테러, 사이버 범죄, 해외 도피사범 증가 등에 따라국제 범죄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은 형집행 기능이 있으면서 국경을 벗어난 수사도 가능한 유로폴(Europol·유럽경찰기구)을 설치하고 국제사법공조체제를 갖췄다. 1994년에 설립된 유로폴은초창기에는 Europol Drugs Unit(EDU)라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이후 국제적 성격의중요 범죄를예방·진압하면서정보력과 수사력이 강화됐다. 현재 유럽 전 지역의 마약 밀매 및 조직범죄 단속에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솅겐지역의 경찰 협력도 효율적으로 이뤄진다. 1985년EU 가운데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등 5개국은 국경 개방 등을 협약한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라 솅겐지역에서 경찰 협력이 이뤄져 ‘SIS Ⅱ’로 명명된 솅겐 정보 시스템이 마련됐고, 이 시스템을 통해세관·경찰 등 국경 통제기관끼리범죄 정보를 교환한다.솅겐지역 인접국은 국경을 초월한 감시권과 현행범 추격권 등도 인정했다.

아메리폴(Ameripol)은 중남미·카리브 지역 21개국의 국제경찰기구다. 2007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개최된 남미경찰총수회의에서 설립헌장을 마련하면서 창설됐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10개국도1981년에 아세안폴(Aseanapol)을설립했다. 회원국 간 범죄정보 교환을 위한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고 인터폴과도 공조수사를 한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