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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넘사벽'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할 수 없는 것은

    옛 소련의 프로 체스선수 가리 키모비치 카스파로프는 1985년 세계 챔피언에 올라 2000년까지 최강자로 군림했다. 그런 카스파로프에게 1989년 도전자가 나타났다. 도전자는 인간이 아니라 미국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소트’였다. 그러나 카스파로프가 두 판을 모두 이겼다. 기계가 인간 영역인 체스에서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는 게 세상의 반응이었다. IBM은 7년이 흐른 1996년 ‘딥블루’로 다시 도전해왔다. 여섯 판을 겨뤄 3승2무1패로 카스파로프가 또 이겼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재대결에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졌다. 카스파로프가 1승3무2패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몇 차례 대결에서 기계가 계속 이기자 ‘인간 대 기계’의 체스 대결은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한동안 잊혔던 ‘생각하는 기계’가 2011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슈퍼컴퓨터 ‘왓슨’이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두 명과 겨룬 것이다. 왓슨은 사람이 말하는 자연어의 소리와 의미를 이해했고, 단어의 뉘앙스까지 정확히 파악해 여유 있게 우승했다.2016년 3월 또 한 번 세기의 대결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번에는 바둑이었다. 결과는 인공지능(AI)의 승리였다. 구글이 6억달러에 사들인 영국 벤처기업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승1패로 압도했다. 이제 기계가 넘보지 못할 인간의 영역은 없고,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기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일자리가 사라진 미래의 삶은 어떨까? 온갖 비관적인 질문과 잿빛 전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의사가 된 왓슨, 암 진단

  • 디지털 이코노미

    민간과 공공의 집합적 노력 결과로서의 혁신

    아이폰을 대표하는 시리 기술은 미국 국방부의 방위 고등연구계획국(DARPA),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기술은 미 해군, 터치스크린 기술은 미국중앙정보국(CIA)의 지원으로 개발됐다. 제약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약의 3분의 2는 미국국립보건원(NIH)의 초기 연구자금 지원이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월드 와이드 웹(www)의 기반이 된 HTML 코드는 유럽입자물리 연구소(CERN)에서 개발됐고, 구글이 사용하는 검색 엔진 알고리즘은 미국과학재단(NSF) 자금으로 개발됐다. 집합적 과정으로서의 혁신혁신은 누적적이고, 불확실하며, 집합적이다. 1987년 MIT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가 경제 성장의 80%를 기술 혁신이 설명할 수 있음을 증명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후 많은 경제학자가 혁신을 추동하는 기술 발전이 어디에서 오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많은 벤처 신화들은 유명 대학을 중퇴한 기업가가 차고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가 혹은 천재적인 발명가가 유레카적인 순간을 맞이해 혁신이 마법처럼 생겨난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혁신을 연구한 수많은 학자가 내린 결론은 혁신은 장기적인 노력과 투자의 결과라는 점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 정부의 반도체 연구 투자나 정부 구매를 통한 지원이 없었다면 컴퓨터 산업이라는 혁신은 태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혁신은 불확실하다.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상업화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리스크가 발생한다. 문제는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을 추구한다고 알려진 기업가들이 사실은 대부분 리스크 감수에 소극적이라는 점에 있다. 특히 자본이 많이 필요하면서 리스크까지 높은 경우 더

  • 디지털 이코노미

    디지털시대에 주목받는 아날로그의 가치

    디지털 전환시대의 경영전략을 고민하는 세미나였다. 국내외 유명 인사들이 총출동한 세미나의 무게감을 증명하듯 많은 기업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임원이 많이 참여하는 만큼 중후한 느낌의 만년필 기업도 그중 하나였다. 세미나의 시작은 스폰서 기업들의 홍보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무대 앞에 설치된 대형 3D 사이니지에는 화려한 디지털 기술로 표현된 만년필 광고가 등장했다. 모든 것이 0과 1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상을 고민하는 자리의 시작은 전통적인 아날로그 상품인 만년필이었던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 사라지지 않는 아날로그사람들이 ‘서점’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경우는 서점이 문을 닫을 때뿐이었다. 물론 대형 체인서점들은 계속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신규로 문을 여는 경우는 드물다. 우연히 들른 동네에 작은 서점을 발견하면 마치 유적지를 발견한 듯 신기한 느낌이다. LP판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간부터 음반협회는 LP판의 판매액을 통계에 포함하지 않았다. 전체 규모에서 숫자의 반올림 오차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CD에 대체되기 시작했던 LP판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아이튠즈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화되면서 달라진 유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필름도 대표적이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필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지더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필름을 구경해보지도 못한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최근 이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1995년 아마존의 등장 이후 서점을 비롯한 많은 오프라인 매장은 사라져버렸다. 전자상거래 혁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동일한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빠른 배

  • 시네마노믹스

    컴퓨터 속 연인 사만다, OS 사라지며 허무한 이별…AI와 사랑에 빠지면 매몰비용 따윈 없을 줄 알았어

    영화 ‘HER’(그녀)에서 편지 대필 업체의 손꼽히는 대필작가인 테오도르 톰블리(호아킨 피닉스 분)는 인공지능(AI) 인격체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별거중인 전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 분)은 이혼 서류 서명을 위해 오랜만에 만난 그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나를 틀에 끼워 맞추려고만 하고, 그저 순종적인 아내를 바라더니 만난 게 운영체제(OS)야? 참 잘 찾은 것 같네”라고. AI 연인은 머지 않은 미래영화에 나오는 수준의 인공지능(AI)은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AI가 발전할수록 기업과 소비자가 실패할 확률은 줄어들고 경제 행위의 만족도는 높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인공지능을 경제학적으로 다룬 책 《예측기계》는 AI를 ‘저비용으로 예측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탐구해 패턴을 분석하고 ‘다음’을 예측하는 게 주 업무다. AI가 발전하면 ‘예측의 값’이 싸진다. 재화의 가격이 내려가면 이용은 늘어난다. ‘예측’이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이다.예측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기업은 실패를 줄이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특정 소비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다음 소비 행위를 예상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구매로 인한 만족을 높일 수 있다.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가정해보자. 소비자의 취향과 구매 습관 데이터를 쌓아갈수록 예측 능력이 높아진다. AI가 추천해주는 상품이 맘에 들 확률은 커지고 반품률은 줄어든다. 소비자가 구매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미리 원하는 상품을 포장하는 것이 기업들이 그리는 시나리오다.구글,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AI에 막대한

  • 디지털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의 빛과 그림자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경제 시대의 소리 없는 동력원이다. 전체 노동자의 아주 일부가 주문형 플랫폼 기업을 위해 일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전통적인 일자리 대부분이 문을 닫은 오늘날 플랫폼 노동을 통해 일상생활을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플랫폼 노동에 의존하는 경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국가를 막론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감염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는 점이 대표적이다. 이들 업무의 성격상 대부분이 재택근무가 불가능하고, 자가격리의 여유가 없어 감염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위기에 취약한 플랫폼 노동자일반적인 임금근로자는 아프면 언제든지 병가를 낼 수 있다. 계약에 의해 병가 중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고,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해고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기업이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해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 하지만 일한 만큼 벌고, 재무적 회복탄력도가 낮은 플랫폼 노동자는 아프다고 편하게 쉴 수 없다. 영국 왕립인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 근로자 중 절반 가까이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현재의 소득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생활비를 밀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이하거나 최대 두 달이다.재택근무도 불가능하다. 플랫폼을 통해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물건을 나르고, 음식을 배달하는 일은 집에서 할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팬데믹으로 학교가 문을 닫고 홈스쿨링이 장기화되면 이들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삼는 가정은 심각한 소득 감소를 경험한다. 케임브리지 경제학자들이 시행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연간 2만달러 미만을 버는 노동자들은 4만달러 이상 소득의 노동

  • 커버스토리

    스마트폰이 사라지게 한 것들

    고교생 희수는 아침 일찍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을 깼다. 과학에 관심이 많은 희수는 침대에 누운 채 유튜브로 최신 소식이 있는지 검색해 잠시 동영상을 봤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바로 네이버사전을 검색해 확인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스마트폰에 대고 ‘오늘 날씨를 알려줘’ 하고 말했더니 바로 상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을 들으며 등교길에 나선 희수는 공원을 지나다 축대 한켠이 올여름 장마와 태풍의 영향으로 무너져내린 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안전신문고 앱에 사진을 올려 신고한 희수는 오늘도 공익을 위해 한 건 했다는 뿌듯함을 안고 학교에 도착했다.희수가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할 때가지 한 많은 일은 모두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자명종 시계, TV, 전자수첩, MP3 플레이어, 카메라 등 다양한 기기가 있어야 했지만 지금은 휴대폰 하나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2007년 1월 애플의 아이폰으로 시작된 스마트폰은 진화를 거듭하며 수많은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 생활양식도 근본적으로 바꿨다.기술 진화에 힘입어 인류의 삶은 더 풍요롭고 편리해졌다. 기존에 있던 제품들은 혁신적인 기술을 접목한 새 제품이 나올 때마다 경쟁에 뒤처지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기존 제품을 생산하던 기업은 사라지고 해당 기업 종사자들도 일자리를 잃거나 새로운 분야로 옮겨가야 한다.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를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기술혁신으로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변혁을 일으키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신제품의 개발, 새로운 생산 방법의 도입, 신기술의 발명,

  • 시네마노믹스

    기회비용 적고 비교우위 넘치는 '모니터 속 그녀'…혁신의 확산으로 만든 'AI 연인'…조만간 나타날까

    “당신과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을, 난 아직도 어젯밤 일처럼 기억해.”테오도르 톰블리(호아킨 피닉스 분)는 편지 대필 업체 ‘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에서 손꼽히는 실력의 대필 작가다. 이용자의 사연에 늘 자신만의 낭만적인 언어로 색채를 입힌다. 그가 모니터 앞에서 읽어내려가는 세상은 아름답기만 하다.그러나 퇴근 후 홀로 맞는 세상은 잿빛이다. 가상현실(VR) 게임을 켰다가 모르는 여성에게 음성 채팅을 청해보기도 하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전 부인 캐서린(루니 마라 분)과 함께한 추억만 잔상처럼 그를 괴롭힌다. 그러던 어느날 퇴근길에 한 기업의 광고 문구에 눈길을 빼앗긴다. ‘당신을 이해하고 귀기울이며 알아주는 하나의 존재’. 인공지능(AI) 운영체제(OS)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준 삶의 ‘혁신’2014년 개봉한 영화 HER(그녀)는 부인과 별거하며 공허한 삶을 살던 테오도르가 AI 인격체인 사만다를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영화다. 머지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AI는 현재보다 훨씬 진보한 존재로 그려진다. 특정 질문에 대답을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읽어내는가 하면, 축 처져 있을 때면 유머러스한 대화를 유도해 기분을 풀어준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을 들어주는 사만다에게 테오도르는 점차 사랑을 느낀다.테오도르가 삶의 활기를 되찾은 것은 엘리먼트소프트웨어라는 업체가 출시한 AI 운영체제(OS1) 덕분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이론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는 100여 년 전인 1911년 <경제 발전의 이론>을 통해 ‘혁신’이라는

  • 디지털 이코노미

    플랫폼 기업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

    디지털 이전의 세상은 불편했다. 무언가를 위해서는 수고가 들고, 기다려야 했고, 담당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달랐다. 유통에서도, 광고에서도, 출판업계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이런 불편함은 대안이 없었던 탓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고, 테크놀로지 기업이 등장하자 많은 것이 변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디지털화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동으로 처리되고, 오래 걸리지 않으며, 서비스의 질은 언제나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금융은 디지털 세상 전후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의 모습오늘날 새로운 금융 서비스의 비약적인 발전은 전통적인 금융기업이나 ‘핀테크(금융기술)’ ‘테크핀(기술금융)’이라 불렸던 신생 금융기업이 아닌 플랫폼 기업에 의해 선도되고 있다. 처음부터 이들 플랫폼 기업이 금융 서비스 제공을 염두에 뒀던 것은 아니다. 그저 고객의 재방문을 촉진하고, 전자상거래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민한 결과 결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유사 금융의 씨앗이 시작됐다.아마존의 ‘원클릭’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원클릭은 클릭 한 번으로 결제와 발송이 완료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매번 결제정보와 배송지를 입력하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고 거래할 수 있다. 무인 편의점 ‘아마존 고’ 역시 원클릭 서비스의 오프라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원클릭 정신은 플랫폼 기업들의 ‘페이 서비스’로 이어진다. 페이 서비스는 본사 홈페이지 이외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도 자사 계정으로 로그인하면 등록된 정보를 이용해 구입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