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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노믹스

    사진 현상하는 월터가 해고될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시대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사진 현상가 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잡지가 폐간되고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월터는 마지막호의 표지사진을 구하기 위해 온갖 모험을 무릅쓴다. 하지만 월터에게 날아온 것은 결국 해고통지서였다. 디지털로 바뀌는 흐름 속에서 아날로그 인력은 구조적 실업에 내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구조적 실업 극복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구조적 실업을 노동유연화로 잘 대처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다. 동독 지역은 1990년대 말로 들어서면서 20%를 넘나드는 극심한 실업률에 시달렸다. 독일 통일 초기 인프라 투자로 호황이었던 건설업이 점차 자리를 잃게 되자 건설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2003년 하르츠 개혁을 시행한다. 하르츠 개혁의 요지는 시간제 근로자 확대다.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다. 좀 더 유연화된 미니잡(mini job)인 시간제 일자리를 필두로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동독지역 실업률은 2011년 말 10.4%까지 하락하게 된다.즉, 잘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직장에 오래 버틸 수 있게 고용을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다. 새롭게 일어서는 산업에서 그가 쉽게 채용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해결책이다. 월터를 자른 매니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월터가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새로운 도전이 실업을 이겨내는 길물론 그들을 쉽게 자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갖추지 못한 사회에선 특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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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파도에 떠내려간 월터의 아날로그 일자리…온갖 모험 무릅썼지만 구조적 실업 피할 수 없는 현실

    라이프 잡지사 사무실에 직원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자신을 구조조정 매니저라고 소개한 남자가 그들 앞에서 말을 꺼낸다. “이런 말씀 드리기 매우 어렵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면서 직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급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라이프지를 폐간합니다. 이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라이프 온라인으로 바꾸고 여러분 중 새로운 업무에 불필요한 분은 자리를 비워주셔야 합니다.”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수십 년을 이어온 라이프 잡지의 폐간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자리를 비워야 할 누군가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단 사실에 사람들의 초조함은 옅은 탄식으로 흘러나왔다. 그는 계속 이어나갔다. “누가 떠나야 할지는 마지막 호를 제작한 뒤 결정하겠습니다.” 월터, 구조적 실업 위기를 겪다월터 미티(벤 스틸러 분)는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사진 현상가다. 사진가들이 현장에서 찍은 사진필름을 보내주면 인화하는 작업을 도맡아 했다. 사진에 정교하고 세밀하게 마지막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이다.그에게 라이프지의 폐간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사진 기술도 빠르게 디지털로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먼저 위협받는 자리에 있다는 걸 그 스스로도 직감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매니저의 연설이 끝난 뒤 한숨을 쉬며 그는 사진현상실로 터벅터벅 돌아간다.월터는 ‘구조적 실업’ 위기를 맞닥뜨리고 있다. 구조적 실업은 산업 구조의 변화로 산업 간 인력 수급의 불균형이 생겼을 때 발생한다. 기술 진보로 산업 생산성이 향상되거나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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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조선 탈출 꿈꾸는 자들의 어설픈 도박장 털이…범죄의 기대이익과는 비교도 못할 목숨값 몰라

    감옥에서 3년 만에 나온 준석(이제훈 분)이 절친인 기훈(최우식 분), 장호(안재홍 분) 등과 한탕을 꿈꾸며 범죄를 계획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사냥의 시간’. 헬조선을 떠날 자금 마련을 위해 불법 도박장을 털기로 한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게리 베커 교수가 설명한 대로 범죄의 기대이익과 기대비용을 따진 결과다. 체포돼 감옥에 가는 위험보다 해외의 한 섬에 가서 여유롭게 살자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불완전 정보로 생명의 비용 몰랐다베커의 범죄경제학은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지만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의도와 달리 비합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의사결정에 꼭 필요한 정보를 현실에서는 다 모으지 못하기도 한다. 일명 ‘정보의 불완전성’이다. 이 경우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결정이 될 수 있다.현실을 몰랐던 준석 일행의 어설픈 불법 도박장 털기 계획도 처음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이들은 도박장 운영 조직의 킬러로 고용된 ‘한(박해수 분)’의 사냥감이 된다. 총 쏘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20대 청년들이 불법 영업장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털려도 신고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법 밖 세상의 잔혹성과 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만약 한의 존재를 알았다면 준석 일행은 불법 도박장 대신 달러를 보관하고 있는 은행을 털었을 것이다. 그들을 사냥하는 한에게 준석은 “경찰에 자수하고 돈도 다 돌려주겠다”고 절규한다. 범죄 기대비용에 어떤 기대이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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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밑바닥 인생인데 불법도박장이나 털어 버릴까"…법 밖의 세상 잔혹성 모르는 자들의 허술한 기대비용 계산

    서늘한 총구가 이마를 겨눴다. 죽음을 예감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과 땀으로 얼굴이 뒤범벅됐다.웃음소리가 들렸다. “재밌네. 기회를 줄게요.” 총을 내린 ‘한(박해수 분)’이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그가 준 시간은 5분. 그 안에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한다.세 친구가 있었다. 일자리는 없고 물가는 매일 치솟는 극단적인 불황. 돈도 빽도 없는 청년들의 유일한 꿈은 ‘헬조선’ 탈출이다. 그러나 꿈을 위해 필요한 것도 돈이었다. 성실하게 일해선 구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마련하는 방법은 하나다. 털려도 신고하지 못할 불법 도박장을 터는 것. 법 밖의 세상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미처 몰랐다. 헬조선 속 청년들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디폴트에 빠진 ‘디스토피아’ 한국준석(이제훈 분)이 감옥에서 3년 만에 나오며 영화 ‘사냥의 시간’은 시작된다. 그를 마중나온 기훈(최우식 분), 장호(안재홍 분)가 차를 몰고 지나는 거리는 폐허에 가깝다. 고층 건물은 텅 비었고, 문을 닫은 상점의 내려진 셔터에는 그래피티만 가득하다. 한때 말쑥한 시민이었을 사람들은 집을 잃고 길가를 서성인다. 밤이 되면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리고, 정부와 기업을 규탄하는 시위대는 횃불을 든다.국가가 무너진 이유는 영화 속 지나가듯 등장하는 뉴스에 나온다. “정부가 1150억달러의 부채를 상환 만기까지 갚지 못해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습니다. 국제 채권단은 정부가 요구한 부채 탕감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디폴트는 국가가 채권 발행 등을 통해 진 빚을 계약된 기간 안에 갚지 못해 파산한 상태를 뜻한다. 상환 기간을 뒤로 미루는 모라토리엄(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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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드, 레이싱 대회 우승으로 '후광효과' 거뒀지만…판매 대수 적은 페라리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1960년대 자동차시장에서 포드와 페라리의 경쟁을 다룬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포츠카 1위 업체인 페라리 인수합병을 추진했다 피아트에 뺏긴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 분)는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던 ‘르망24’(24시간 연속 레이스)에서 복수하기 위해 자동차 디자이너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와 정비공 출신 레이서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 분)를 고용했다. 포드의 임원인 레오 비브(조시 루카스 분)의 방해에도 마일스는 실력을 보여주며 비브의 팀을 포함해 르망24에 공동 출전하는 포드의 세 팀에 합류했다.르망24에서 포드는 이변을 일으킨다. 마일스는 밤낮없이 달렸고 경쟁자인 페라리의 선수는 빗길에 미끄러져 탈락하고 만다. 1~3위는 모두 포드 팀, 그중 선두는 마일스였다. 우승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비브가 또다시 훼방을 놓는다. “1~3위를 함께 결승선에 들어오게 하자”고 헨리 포드 2세를 설득한다. ‘그림이 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헨리 포드 2세는 이를 받아들였고 셸비는 마일스에게 “원하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 늘 그랬듯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기를 바라면서. 브레이크를 밟게 한 ‘후광 효과’헨리 포드 2세는 왜 비브의 ‘밉상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행동경제학에서는 ‘후광 효과(Halo Effect)’를 기업 마케팅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설명한다. 브랜드의 이미지가 머리에 강하게 박히면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브랜드 이미지가 제품의 ‘후광’이 되는 것이다. 제품과 서비스의 본래 가치를 뛰어넘는 이미지를 전달해 소비자 구입을 유도하는 것이다. 1960년대 들어 판매량 급락이 고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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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기업을 꺾고 싶어? 그럼 그 회사를 사버려…페라리 M&A 나선 포드…'지옥의 레이싱'일 뿐

    “제임스 본드는 포드를 몰지 않습니다. 한물갔으니까요.”1960년대 미국 포드 본사, 마케팅 임원인 리 아이아코카(존 번탈 분)는 회장 헨리 포드 2세(트레이시 레츠 분) 앞에서 이렇게 프레젠테이션(PT)한다. 그는 “젊은 세대는 부모님이 운전하던 포드가 아닌, 빠르고 섹시한 페라리를 원한다”며 “카 레이싱(경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라고 선언한다. 헨리 포드 2세는 “한 달에 우리의 하루 생산량도 못 만드는 회사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아이아코카가 답한다. “‘차의 의미’ 때문이죠. 포드 배지가 승리를 의미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헨리 포드 2세의 눈이 번뜩인다. 포드는 왜 페라리 인수에 나섰나영화 ‘포드 V 페라리’는 1960년대 자동차시장을 배경으로 두 기업 간 승부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글로벌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카 레이싱 대회의 인기도 덩달아 하늘을 찌를 때였다. 1900년대 초중반 호황을 뒤로한 채 내리막을 걷던 포드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카 레이싱에 뛰어든다.이탈리아의 페라리는 카 레이싱 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이자 글로벌 1위 스포츠카 생산업체였다. 1960~1965년 ‘지옥의 레이스’라고 불리던 ‘르망24’(24시간 연속 레이스) 우승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차 개발에 지나치게 많은 예산을 투입한 탓에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포드는 페라리와의 인수합병(M&A)을 시도한다. 그러나 창업자 엔초 페라리(레모 기론 분)는 협상장에서 아이아코카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못생기고 작은 차를 만드는 큰 공장에 돌아가서 회장에게 전해라. 넌 헨리 포드가 아니라 ‘2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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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위 1% 백만장자인 장애인과 하위 1% 빈민가 청년…'무차별곡선'은 달라도 우정으로 서로의 핸디캡 극복

    “종이에 코피 쏟아놓고 3만유로라고?”‘상위 1%’ 백만장자이지만 전신마비 장애인인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과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파리 빈민가에 사는 ‘하위 1%’의 드리스(오마 사이 분) 간 소통을 그린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간병인이 된 이후 필립을 따라 처음 가본 미술관에서 드리스가 현대미술 작품을 보고 대뜸 던진 말이다. 드리스의 눈에는 ‘그림 같지도 않은’ 작품 하나가 3만유로(약 4000만원)가 넘는다는 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웠다. 상위 1% 자산가는 고가 미술품을 수긍하는데같은 작품을 보고도 필립은 가격에 수긍한 반면 드리스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무차별곡선’으로 설명한다. 무차별곡선은 소비자에게 같은 만족을 주는 재화 묶음을 연결한 곡선을 말한다. 무차별곡선은 소비자가 얼마까지 지출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예산제약선’과 접한다. ‘하위 1%’ 드리스와 ‘상위 1%’ 필립의 반응이 달랐던 것도 미술 작품이라는 재화에 대한 두 사람의 예산제약선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드리스가 필립만큼 돈을 많이 번다면 드리스의 예산제약선도 <그래프>처럼 밖으로 이동 할 것이다.드리스는 미술관에서 본 그림처럼 캔버스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물감을 뿌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필립은 자신의 집을 찾은 친구에게 드리스의 작품을 소개한다. 필립은 이 작품을 신인 유망 화가의 작품이라며 “런던과 베를린에서 전시될 예정이야”라고 말한다. 필립이 부른 가격은 1만1000유로(약 1400만원). 이 말을 들은 필립의 친구는 이렇게 말하며 드리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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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업급여에 의존해 '일할 의지' 꺾인 빈민가 청년…무조건적 수당 대신 직업훈련 받았다면 어땠을까

    “대충 몇 글자 끄적여주세요. ‘능력은 있지만 이 일엔 적합하지 않다’ 같이 늘 쓰는 말 있잖아요. 세 번 거절당해야 생활보조비를 받으니깐.”화려한 저택의 복도에 멀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온갖 학위와 경험을 자랑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찾으러 온 구직자다. 면접장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장애인을 친형제처럼 생각해서’와 같은 고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 사이 펑퍼짐한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온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있다. 드리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일자리가 아니라 실업급여.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서를 무시하고 새치기해 덜컥 면접장 안으로 들어간 드리스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인이나 해달라고 말한다. 실업급여는 실업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필립(프랑수아 클루제 분)은 으리으리한 저택에 수많은 가정부를 두고 사는 ‘상위 1%’ 백만장자다. 돈은 남부럽지 않게 많지만 24시간 내내 누군가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인이다. 이런 필립을 도와주는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찾아온 건 ‘하위 1%’의 드리스. 세면대에서 물을 틀면 동시에 샤워조차 할 수 없는 열악한 파리 빈민가 아파트에 열 명이 넘는 가족이 살고 있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하루 종일 거리를 떠돌아다닌다.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오면서도 드리스는 필립의 상태에는 관심도 없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왜 지금 바로 서명을 못 해주냐”고 반문할 뿐이다. “사인은 해줄 테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에 다음날 다시 필립의 집을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