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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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진정한 아름다움은 다름을 수용하는 관용에서 나와…아리스토텔레스는 ‘공포’와 ‘연민’을 비극의 목표로 봤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의 눈길을 끌고 숨을 멎게 할 만큼 매력을 발산하는 대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류 모두에게 적용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존재하는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정의하고, ‘그렇다’고 교육받아 온 그것이 아름다운가? 서양은 18세기 중반 고대 로마의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을 재발견하면서 ‘신고전주의’를 시작했다. 신고전주의는 당시 장식과 비조화, 신의 은총을 강조했던 바로크와 로코코 형식에 대항해 르네상스와 고대 그리스의 예술을 모체로 삼았다. 조화와 비율, 일치는 신고전주의의 문법이다.숭고18세기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와 더불어, 그 신고전주의가 숨 쉴 수 있는 ‘틈’들도 유럽인들 어휘에 등장했다. 천재성, 상상력, 취미, 정서, 감정, 즉흥과 같은 단어들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아름다움이 등장했다. 천재성과 상상력은 창작자의 능력을 표시하고 취미, 정서, 감정, 즉흥은 창작자가 어떤 대상에 느끼는 사적이며 시적인 능력을 시사한다. 이 용어들은 작품이 지닌 객관적이고 수학적인 특징들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사적인 태도들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닌 내재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관찰자의 반응이다.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리스 비극을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는 불안정한 연습과정에 대한 재현’이라고 정의했다. 무대 위에 선 배우의 말과 행동은 단호하고, 수단과 목적이 하나가 되며 압도적이어야 한다. 그 평가는 비극을 보는 아테네 관객들의 정서적인 반응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표를 ‘공포’와 ‘연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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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콜로노스 주민들, 오이디푸스 얘기 들으며 마음 열어…대화는 경청 통해 타인의 입장을 숙고하는 훈련이죠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눈물로 가득한 연못’이란 장면이 등장한다. 앨리스는 잠시 잠이 들어 깊은 구덩이에 빠졌는데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 운다. 앨리스는 몸 크기가 작아져, 자신이 흘린 눈물이 만든 연못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때 생쥐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나타난다. 앨리스가 말을 건다. “오, 마우스(생쥐)여. 이 연못을 나가는 길을 아니? 여기서 헤엄치는 것이 너무 피곤해. 오, 마우스여!” 앨리스는 생쥐를 부를 때 ‘마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쥐에게 말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오빠의 라틴어 문법책에서 ‘마우스’에 대한 격(格)변화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스, 마우스의, 마우스에게, 마우스를, 오 마우스여!’앨리스와 생쥐의 대화생쥐는 앨리스를 한참 쳐다본 후, 조그만 눈으로 윙크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앨리스는 생쥐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스어로 말을 건넸다. 윌리엄 1세가 11세기 영국을 정복하러 이주했을 때, 그 생쥐도 함께 왔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1세가 거의 1000년 전 사람이란 사실을 몰랐다. 앨리스는 프랑스어를 배울 때 외운 첫 문장을 생쥐에게 말했다. “우 에 마 샤트(Ou est ma chatte)?” “고양이가 어디 있지?”라는 뜻이다. 그러자 생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물에서 나와 공포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앨리스는 말한다. “미안해. 나는 네가 고양이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어.”생쥐는 앨리스에게 묻는다.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어?” 앨리스는 자신이 키우는 ‘디나’라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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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세상은 명암·선악 등 서로 대립적인 두 항의 짝으로 구성…배움이란 내가 알 수 없는 수많은 다름에 대한 존경이죠
내가 삶의 기준으로 삼을 옳은 것은 무엇이고, 버려야 할 그름은 무엇인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가. 어디가 지옥이고 어디가 천국인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이며 너는 누구인가. 누가 스승이고 누가 학생인가. 배움이란 자신이 우연히 던져진 환경의 관습이나 도덕이 나에게는 ‘옳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배움이란 내가 알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수많은 ‘다름’에 대한 존경이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무식(無識)에서 탈출할 수 있다.두 도시 이야기《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시민들에게 묻는다. 작가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의 과거를 상징하는 테베의 문명을 아테네 근교에 있는 콜로노스에서 구축하려는 새로운 문명과 대비시킨다. 이 비극은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부랑자이며 방랑자인 오이디푸스를 당시 아테네 시민들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도시문명 안으로 수용하려는 과정이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상징하는 테베에서 추방돼, 새로운 도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애쓴다. 그는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자비로운 도시’를 찾는다. 이 비극을 이해하는 열쇠는 이 두 도시가 상징하는 가치들에 대한 대비다.《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처한 불쌍한 운명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오이디푸스의 딸 안티고네는 눈먼 아버지와 낯선 땅으로 들어갈 참이다. 오이디푸스가 안티고네에게 건네는 말로 비극이 시작된다. “눈먼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