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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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446년 훈민정음 반포를 기준 삼은 '한글날'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 ‘씨슨’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 / ‘데-’보다 읽기 좋고 ‘씨슨’보다 알기 쉬워요/ … /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가르쳐줄 수 있어요.”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 ‘가갸날’의 탄생 소식에 벅찬 심정으로 그 감격을 노래했다. 승려이면서 독립운동가이자 시집 <님의 침묵>으로 너무도 유명한 그가 한글 예찬론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조선어연구회의 ‘가갸날’이 시초‘데-’는 데이(day), ‘씨슨’은 시즌(season)을 적은 것이다. 외래어표기법도 없던 시절이었다. ‘축일’이나 ‘제일’ 같은 한자어보다, ‘데이’나 ‘시즌’ 등 외래어보다 한글이 읽기 좋고 알기 쉽다고 말한다. 사례만 다를 뿐 무겁고 난해한 한자어와 낯선 외래어 사용이 넘쳐나는 요즘도 통하는 주장이다. 시의 마지막 행은 “온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해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라고 기원하며 마무리지었다. 조금 과장하면 정보화시대 들어 꽃피운 한글 세계화를 100년 앞서 이끈, 선구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가갸날’은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다. 한글날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3·1운동 직후인 1921년 한글학자 주시경의 제자들이 중심이 돼 조선어연구회라는 민간단체를 결성했다. 여기에 최현배, 이병기, 이윤재 등 한글학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민족운동단체로 발전했다. 이들은 당시 민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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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세상
외국인들의 한글 받아쓰기 점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9일 제578돌 한글날을 맞아 세계 28개국 한국문화원 31곳에서 한글의 가치를 알리는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 미국(뉴욕), 베트남, 스페인,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브라질에서는 한국어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4일 서울 세종로 경복궁 흥복전에서 열린 ‘전 국민 받아쓰기 대회’에서 외국인 참가자들이 제시문을 답안지에 적고 있는 모습. 임형택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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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한글, 왜 소중할까요
제82호 주니어 생글생글 커버 스토리 주제는 한글입니다. 577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 창제와 보급, 발전에 기여한 역사 속 인물들을 살펴봤습니다. 한글이 우리 국민의 교육 수준을 높여 경제 성장에 이바지했다는 점도 설명했습니다. 내 꿈은 기업가에선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 도요타 기이치로를 소개했습니다. 원래 방직기 제조회사였던 도요타를 자동차회사로 탈바꿈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 기업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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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접속어 줄이면 문장에 힘이 생기죠
“공문식(公文式) 제14조: 법률·칙령은 모두 국문(國文)을 기본으로 하고, 한문으로 번역을 붙이거나 혹은 국한문으로 혼용한다.” 구한말인 1894년 11월 고종 칙령 1호가 공포됐다. 당시 개화파가 추진한 개혁운동의 일환으로, 이른바 ‘갑오개혁’을 뜻한다. 우리말 역사로 보면 한글이 우리나라 공문서의 공식 문자로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그동안 언문으로 불리며 천시되던 한글이 비로소 ‘국문(國文)’이란 위상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당시 지배층의 주요 표기 수단은 여전히 한자였다. 법률과 칙령을 모두 한글로 적는다고 공포하면서, 정작 그 문자는 한자로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올해 제577돌을 맞은 ‘한글날(10월 9일)’은 처음엔 ‘가갸날’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아래 신음하던 시절이었다.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기념일로 삼았다. 그때가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꼭 480년 되던 해였다. 한글날이 지금처럼 10월 9일로 된 것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이 발견된 덕분이다. 이 책 말미에 ‘정통 11년 9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에 책으로 펴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따라 음력 9월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반포일로 추정하고, 이를 다시 양력으로 환산해 나온 것이 10월 9일이다. 우리말이 지금과 같은 기틀을 갖춘 데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 공이 크다. 해방 이후 그는 두 차례 문교부(지금의 교육부) 편수국장을 지내면서 우리말 문법 체계를 갖추는 데 매진했다. 당시 편수국장은 한글 교과서를 새로 펴내고, 우리말 순화 작업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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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소중한 우리 말과 글
주니어 생글생글은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커버 스토리에서 세계의 언어, 그 안에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해 다뤘습니다. 언어에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생각 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삶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는 언어의 중요성과 다양성, 진화와 쇠퇴까지 살펴봤습니다. 주니어 생글생글 기자단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취재기도 실었습니다. 내 꿈은 기업가에선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며 세상을 바꾼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생애를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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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고종칙령, 한글을 공식문자로 끌어올리다
2019년 3월 ‘금명간’이 갑자기 인터넷 실시간검색(실검)에 떴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누리꾼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 ‘금일’을 금요일로 오해하고, 순우리말 ‘고지식’을 한자어 고지식(高知識, 물론 이런 말은 없다)인 줄 아는 것도 다 오십보백보의 오류다. 개화기 때 한글을 국문(國文)으로 지정금명간(今明間) 대신 차라리 ‘곧’이나 ‘오늘내일’, ‘이른 시일 안에’ 같은 일상의 말을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굳이 ‘금일(今日)’이란 한자어를 쓰지 말고 쉽게 ‘오늘’이라고 했으면 누구나 알아봤을 텐데…. ‘고지식하다’는 성질이 외곬이라 융통성이 없을 때 쓰는 순우리말이다. 이를 엉뚱한 의미인 ‘높은(高) 지식(知識)’으로 해석하는 데선 무지 속에 스며든 창의력(?)도 엿보여 ‘웃픈’ 느낌이다.글쓰기의 ‘읽기 쉽고, 알기 쉽게’란 명제 앞에 ‘한자어와 쉬운 우리말’의 관계는 종종 곤혹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제576돌 한글날(10월 9일)을 앞두고 우리말이 처한 현실이다. 단순히 말장난 같은 해프닝이라 하기엔 우리말 실태가 구조적으로 복잡하다. 비슷한 어휘력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글과 한자, 고유어와 한자어, 거기에 영어와 일본어 등 외래어가 뒤섞이면서 치열한 ‘언어적 세력다툼’을 벌여온 게 지난 100여 년의 우리말 역사다. 특히 한글 전용 대(對) 한자 혼용 논란은 광복 이후 때론 격렬하게, 때론 느슨하게,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부딪쳐온 갈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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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기자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한글날'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날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가.한글날은 훈민정음 즉, 한글이 창제돼 세상에 알려진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정한 국경일이다.한글날의 시초는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있던 1926년 조선어연구회 즉, 지금의 한글학회가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이라고 정하고 서울 식도원에서 처음으로 기념식을 거행한 데서 비롯됐다.한글날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받던 상황에서 민족의 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해 제정, 기념하기 시작했다. 음력 9월 2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세종실록’ 28년 9월조의 “이 달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지다”라고 한 것을 근거로 했다. 이름을 ‘가갸날’로 한 것은 당시 한글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한글을 ‘가갸거겨,나냐너녀’ 하는 식으로 배울 때여서다. 한글이라는 이름은 주시경 선생을 중심으로 한 국어 연구가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1928년에는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한글날을 양력 10월 9로 확정한 것은 1945년 우리나라가 광복이 된 이후다. 그 근거는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해례》 본에 적힌 ‘정통 십일년 구월 상한(正統十一年九月上澣>’이란 문장에 따른 것이다. ‘9월 상한’을 해석하면 상한의 마지막 날이 10일이고, 이 날짜를 음력에서 양력으로 환산해 한글날 기념일을 10월 9일로 정했다고 한다.한글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이 주도해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인데, 지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서 세계 문자 역사상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한글만큼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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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책요? 책이요?…변신 꾀하는 보조사 '-요'
지난 9일은 574돌 한글날이었다. 이날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1446년을 기점으로 삼아 제정됐다. 한글이 탄생한 지 500년이 훨씬 넘었으나 우리 정서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은 것은 100년이 채 안 된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한글학회의 전신)에서 ‘한글마춤법 통일안’을 내놓은 게 밑거름이 됐다. 종결형으로 쓰인 ‘책이요’는 규범에서 벗어나그 사이 우리 맞춤법은 많이 변했다. 그중 하나로 요즘도 늘 헷갈리는 게 어미 ‘-이요’와 ‘-이오’, 그리고 보조사 ‘-요’ 용법의 구별이다.1933년 한글마춤법 통일안에서는 이를 어떻게 제시했을까? <‘이요’는 접속형이나 종지형이나 전부 ‘이요’로 한다.>고 했다. 가령 “이것은 붓이요, 저것은 먹이요, 또 저것은 소요.”처럼 썼다. 현행 한글맞춤법에서는 다르다. 제15항 어간과 어미를 적는 방식에 관한 얘기다. <종결형에서 사용되는 어미 ‘-오’는 ‘요’로 소리 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원형을 밝혀 ‘오’로 적는다.>고 했다. “이것은 책이오./이리로 오시오.”(책이요×/오시요×)가 현행 규범이다. 또 <연결형에서 사용되는 ‘이요’는 ‘이요’로 적는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것은 책이요, 저것은 붓이요, 또 저것은 먹이오.”처럼 구별해 써야 한다. 정리하면 ‘-이요’는 연결어미로만, ‘-이오’는 종결어미로만 쓸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 [이요]로 소리 나지만 각각의 쓰임새에 따라 구별해 적도록 한 것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쓰임새 활발…규범화 진행 중2019년 5월 국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