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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 이코노미

    상품기능보다 과정과 의미가 더 중요해진 시대

    ‘이 재킷을 사지 마시오.’ 아웃도어 의류업체 파타고니아의 광고 문구다. 패스트패션 시대에 한 벌의 옷을 만들면서 생기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이자, 재활용 원료의 우수성을 알리려는 광고다. 소비자들은 파타고니아 옷을 구입하면서 ‘지구를 살리기 위한 비즈니스를 한다’는 파타고니아의 경영 이념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는 동시에 직접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채우게 된다. 마켓 4.0의 시대근대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마켓 4.0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필요한 기능만으로 충분한 시대는 마켓 1.0이다. 냉장고, 세탁기, TV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들을 구입함으로써 생활이 얼마나 편리해지는지 강조하는 것만으로 홍보가 됐다. 하지만 마켓 2.0 시대에는 개별 맞춤화된 홍보가 필요했다. 사람들은 보편화된 상품보다 내가 원하는 특별한 기능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가 풍요로워지자 소비자는 성숙해졌다. 이제는 ‘인간 중심 마케팅’으로 진화했다. 제품의 편리성은 기본이고 브랜드가 내거는 가치와 운영방식 등 기업의 방향성도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면 여기에 공감하는 소비자는 상품 구입을 통해 브랜드를 응원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마켓 4.0이다. 상품과 서비스의 기능가치는 점차 빛을 잃고 감정가치와 참여가치가 커진다는 내용이다. 즉, 기업이 표방하는 메시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모든 서비스는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관점이 마켓 4.0의 핵심이다.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닌 적극적으로 기업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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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전환은 시장이 있어야 성공한다

    많은 국제 전문가는 아프가니스탄을 제2의 한국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문제의 근원은 방만한 제도였다. 수십억 달러를 제도 개선에 투입했다. 새로운 법이 제정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제도들이 ‘주입’됐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부패한 국가로 손꼽힌다. 선의의 제도와 나쁜 결과조지아 정부는 싱가포르가 되기를 꿈꿨다. 민간 산업을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명분으로 세금은 줄이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힘겨운 노력을 기울였다.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 세계은행이 실시한 기업환경평가에서 순위도 높아졌다. 하지만 국내 경제의 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국 하버드대의 앤드루스 교수는 조지아 정부의 조치가 기업 부담을 줄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효과적인 고용 창출과는 무관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사례는 인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전국 약 600개 지구의 토지 기록을 전산화할 목적으로 ‘카르나타카 사업’을 시작했다. 역시나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등록에 걸리는 시간이 3시간에서 30분으로 줄어든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이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을 줄였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토지 기록 전산화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주입’된 제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제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참여하는 시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과정으로서의 제도아이를 낳는 것과 훌륭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규제를 완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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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AI는 '인간상식'을 학습할 수 있을 때 가능

    추장은 기뻤다. 처음 경험한 호텔 화장실은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의 물을 원하는 온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부족을 생각하면 절도 따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추장은 호텔 화장실의 수도꼭지를 잘라 가방에 숨겨 넣었다. 수도꼭지만 있으면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AI에 대한 미신오늘날 인공지능(AI)에 대한 믿음은 꼭 수도꼭지에 대한 추장의 믿음과 같다. 추장은 수도꼭지 뒤에 연결된 거대한 상수도 시스템과 이를 운영하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과장된 믿음은 많은 오피니언 리더의 탓이기도 하다. 어떤 미래학자는 AI가 인간 지능을 넘어서는 시기가 머지않았다고 주장하고, 어떤 기업가는 향후 30년 안에 신발 속 칩이 인간 두뇌보다 똑똑해진다고 강조한다. 이들 전망을 토대로 한다면 AI는 세상을 구하고, 유토피아로 만들 기술임이 틀림없다.하지만 현실에서 AI의 발전은 매우 더디다. 몇몇 성공 사례가 들려오지만, 실상은 모두 ‘좁은 AI’ 혹은 ‘약한 AI’라 불리는 인공지능만이 성과를 내고 있다. 약한 AI란 정해진 업무만 수행할 수 있는 AI를 의미한다. 단일 작업 또는 제한된 범위의 작업을 수행하는 데 적합한 기술이다. 제한된 특정 영역에서는 AI가 인간을 넘어설 수 있지만, 상황이 조금만 달라지면 성능이 급격히 저하된다. 제한된 상황을 벗어나 인간 수준의 지능이 필요한 작업은 실패하며,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지식을 전달할 수 없다. 한편 ‘범용 AI’ 혹은 ‘강한 AI’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적 작업을 이해하거나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기계를 의미한다.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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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발전이 가계부채를 늘린다고?

    과학 경영의 아버지 테일러는 인건비 절감으로 싼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1920년대 산업혁명으로 효율성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필요한 노동자가 크게 줄었고, 이는 더 적은 노동인구와 더 많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1920년대 중반 미국 산업은 잉여 인력을 해고하고, 남은 직원에게는 엄격하게 보상을 책정했다. 이렇게 절약한 인건비 덕분에 제품 가격을 날로 낮출 수 있었다. 그러나 소득이 줄자 노동자들은 소비할 여력이 없어졌고, 가게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다. 문제를 빠르게 파악한 주인공은 헨리 포드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급여를 관대하게 책정하고, 심지어 노동시간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차를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 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다른 기업들은 포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후 정치권의 개입으로 8시간 노동제는 받아들였지만, 임금 인상만큼은 끝까지 고수했다. 소비를 되살린 요인은 임금이 아니었다. 광고였다. 인기 잡지들이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남녀상을 지면에 도배하기 시작했다. 불만스러운 소비자를 양산한 것이다. 더 좋고, 더 새로운 것을 스스로 추구하도록 만들었다. 사라지는 일자리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동화의 물결은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물론 전에 없던 고임금 일자리가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속도는 1943년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수학자 노버트 위너가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발표하면서 더욱 빨라진다. 그는 기계가 생각하고 학습하고 피드백을 통해 행동방식을 조정하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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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율성 높은 반도체산업, 회복성 낮은 이유는?

    효율성과 회복성은 상충관계다. 효율성을 추구할수록 회복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카카오의 데이터센터 화재로 일상이 멈췄던 사건도 같은 맥락이다. 백업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반복 및 중복으로 비효율적인 일이다.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고, 운영 효율성을 떨어뜨리며, 순익을 갉아먹는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딘 회복으로 이어지는 이유다.비단 카카오 사태만이 아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효율성과 회복성의 상충을 찾아볼 수 있다.반도체 산업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세계 반도체의 공급이 부족해졌다. 디지털 세상인 오늘날 반도체 없이 가능한 서비스는 거의 없다. 문제는 복합 반도체를 생산하는 일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거대 제조시설 건설은 물론이고 비상시 가동할 수 있는 완충장치와 잉여재고의 확보, 즉시 가동할 수 있는 백업 제조시설의 보유, 문제 발생 시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인력 운영과 같은 ‘비효율’적인 부분도 갖춰야 하는 탓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비효율을 반길 리 없다. 결국 반도체산업 내에서는 효율을 극대화한 일부 기업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 대가로 회복력은 떨어졌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로 칩을 공급할 수 없다면, 아무리 효율성 높은 공장이라 한들 소용없다.코로나19 펜데믹으로 마스크나 휴지 같은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오랜 기간 효율성을 추구한 결과 제조 기반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금융과 서비스 기반으로 경제를 재편했다. 이를 통해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경제 엔진을 장착했지만,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는 기본적인 니즈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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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차공유 '그랩'의 태국 진출 전략은?

    플랫폼 기업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해야 한다. 플랫폼 내에서 더 많은 중개가 이뤄질수록 수익이 높아지는 특성 탓이다. 플랫폼의 진출 분야가 주로 서비스업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내수시장만으로는 머잖아 한계에 봉착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부분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전 세계로 사업 규모를 확장하는 이유다. 약해지는 네트워크 효과플랫폼 기업이 성장하는 방식인 네트워크 효과는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힘이 자국 시장에서만큼 강력하지 못하다. 이는 플랫폼이 사용자를 확보할 때 의존하는 알고리즘이 자국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의 학습 데이터와 관련성이 낮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는 추가적인 시장조사나 온라인 실험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강력한 알고리즘을 보유한 틱톡과 트위터도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나면서 현지화된 콘텐츠 확보에 투자했다. 현지 인력을 확보하는 점도 중요하다. 드롭박스나 세일즈포스와 같이 해외시장에 물리적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도 세계 지역에 사무실을 설립하고, 해당 국가의 인재가 리드하도록 한다.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이해고비용의 물리적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그 어떤 전통기업보다 해외시장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오히려 제약 요인이 되기도 한다. 너무 빠른 해외 진출은 기업의 현지 규제를 회피하고, 의도와 무관하게 기존 산업에 혼란을 초래하며, 규제기관이나 기존 기업 그리고 이해관계자 반발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버가 대표적이다. 초반의 엄청난 확장세와 달리 오늘날 유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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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랫폼은 사회 인프라…문제 해결 통해 성장해야

    플랫폼 시대다. 혹자는 농업 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를 지나 다음은 플랫폼 시대라고 진단한다. 사실 일반인이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끼는 지점도 플랫폼이다. 로봇을 만나고 메타버스를 경험하는 것은 아직 일부의 일이지만, 플랫폼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경제와 전통 경제플랫폼 경제는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데이터와 네트워크 중심의 비즈니스로 구성된, 플랫폼 중심의 경제체제를 의미한다. 제조업 기반의 전통 경제가 공급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로 효율성을 달성한다면, 플랫폼 경제는 수요 측면에서 규모의 경제, 즉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 효율성을 달성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런 플랫폼의 주 무대는 온라인이다. 플랫폼상의 모든 움직임은 데이터 형태로 남는다. 그리고 인공지능에 의해 분석된다. 플랫폼 경제에서 방대한 데이터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재료요, 자본이다. 이를 통해 전통 경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을 만들어낸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개별화된 소비자 맞춤형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다. 공공재로서의 플랫폼플랫폼이 사회의 한 인프라임을 깨닫게 해준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플랫폼 없이 소통은 불가능했고, 격리에 필수적인 음식과 의약품을 받을 수 없었다. 플랫폼은 이처럼 공공재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공적 가치를 갖는 동시에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특성을 지닌다. 문제는 이런 플랫폼 대부분이 미국계라는 점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계 플랫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국 플랫폼을 가진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 플랫폼을 통해 추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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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 혁신이 인류에게 경제·시간적 여유를 준다고?

    케인스는 2030년이 되면 노동시간이 하루평균 3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했다. 1930년대 시각에서 100년 뒤 세상에는 과학기술의 진보와 자본의 축적 그리고 생산력 제고가 인류의 경제적 능력을 엄청나게 늘릴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인스의 예측이 남은 8년간 성사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케인스는 미래를 예언한 에세이집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100년 뒤 세상에서의 고민은 충분히 발전한 과학기술이 제공한 여가를 어떻게 활용해 풍족한 삶을 살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일보다 삶이 중요해지는 세상을 예언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유쾌하고 풍족한 삶’보다는 ‘긴급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간다. 물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30년대를 기준으로 8배 이상 증가했다. 분명 경제적 능력은 예언대로 높아졌지만, 경제적 걱정 없이 삶의 질을 즐길 수는 없다.케인스의 예측이 틀린 이유 중 하나는 기술이 일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증기기관에서 전기로 이어지는 동력의 발전은 동물이나 자연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했다. 인간의 손과 발, 간단한 도구에 의존하던 일을 기계와 인간의 결합을 통해 빠르고 더 정교하며, 지치지 않는 연속 공정으로 바꿨다. 기계가 등장하자 성인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아동도 생산에 동원될 수 있었다. 컴퓨터의 등장은 다시 한번 일을 변화시켰다, 기계가 블루칼라 일을 바꿨다면, 컴퓨터는 화이트칼라 일을 변화시켰다. 컴퓨터를 통한 정보처리와 연산,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소통은 업무 효율을 높였고, 블루칼라 업무의 체계적 관리가 가능해졌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