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논쟁에 관한 글을 읽는 법
공손룡은 ‘실’이 ‘물(物)’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물’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의 천지 만물을 뜻한다. ‘실’은 ‘물’에서 분화된 각각의 개체이고, 이를 지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명’이다. … 그는 어떤 ‘실’은 그것을 가리키는 어떤 ‘명’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지시되어야 한다는 것과, 어떤 명은 유일하게 어떤 실만을 지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공손룡에 따르면 서로 다른 실인 이것[此]과 저것[彼]이 똑같이 ‘이것’이라는 명으로 지시된다면 서로 구별되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이것’이라는 명으로 이것이라는 실을, 다른 사람은 ‘이것’이라는 명으로 저것이라는 실을 지시하는 혼란이 나타나게 된다.(중략)[지문 키워드] 그는…을 주장하였다.…후기 묵가는…라는 주장에도 반대하였다.…명과 실의 엄격한 일대일 관계인류 역사상 논쟁(論爭), 즉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주장을 말이나 글로 논하며 다투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우리가 접하는 글 중에는 논쟁을 담은 글이 부지기수다. 철수 쌤이 그런 글을 볼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각각의 논리다.
후기 묵가는 하나의 명이 지시하는 실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주장에도 반대하였다. 하나의 명이 서로 다른 사물을 지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과 저것, 두 마리의 새가 모두 학이라면 이것과 저것을 모두 ‘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후기 묵가가 명과 실의 엄격한 일대일 관계를 이렇게 부정한 것은 그들의 명에 대한 논의와도 관계가 있다. 후기 묵가는 명을 그것이 지시하는 실에 따라 달명(達名), 유명(類名), 사명(私名)으로 나누었는데, 이 세 가지 명은 외연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 달명은 천지 만물을 총괄하여 지시하는 것으로, 공손룡이 말하는 ‘물(物)’에 해당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유명은 수많은 사물 가운데 어느 하나의 속성을 공유하는 것들을 지시하는 이름으로, 후기 묵가는 그 예로 ‘말[馬]’이라는 명을 제시했다. 사명은 가리키는 대상이 오직 하나인 명을 말한다. 사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고유명사이다. 다른 하나는 ‘새[鳥]’라는 유명을 어떤 한 마리의 특정한 새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경우처럼 유명을 단 하나의 개체에만 대응하게 함으로써 만들어지는 명이다. 결국 ‘새[鳥]’라는 명이 유명인가 사명인가 하는 것은 그것에 대응하는 대상이 하나인가 둘 이상인가에 의해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2023학년도 교육청 전국 연합 학력 평가-
지문에는 ‘공손룡’과 ‘후기 묵가’의 주장이 설명되어 있다. 주제를 반영해 논쟁에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의 주제가 ‘명(名)’과 ‘실(實)’이므로 둘 사이의 논쟁에 이름을 붙인다면 명실(名實) 논쟁, 줄여서 명실론(名實論)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철수 쌤은 지문 속 공손룡의 논리가 전형적인 ‘문제의 원인-문제 상황-문제 해결법-문제 해결 결과’의 전개를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에 반해 후기 묵가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다. ‘두 마리의 새…를 모두 ‘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예시’를 통해 “하나의 명이 서로 다른 사물을 지시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공손룡은 “하나의 명이 지시하는 실은 오직 하나뿐이다”라는 주장을, 후기 묵가는 “하나의 명이 서로 다른 사물을 지시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는 ‘명과 실의 엄격한 일대일 관계’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입장인 것이다. [지문 키워드] 외연의 크기가 서로 다르다.…‘새[鳥]’라는 유명을 어떤 한 마리의 특정한 새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경우외연(外延)은 철학적 개념 중 하나로 고등학생이라면 꼭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일정한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를 말한다.
이를테면 금속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금·은·구리·쇠 따위가, 동물이라고 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원숭이·호랑이·개·고양이 따위가 외연이다.
철수 쌤은 학생들에게 외연과 함께 내포(內包, 개념이 적용되는 범위에 속하는 여러 사물이 공통으로 지니는 필연적 성질의 전체)를 고려해 개념을 이해하는 훈련을 많이 하라고 한다. 개념을 이해하는 데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지문에 나오는 ‘외연의 크기’는 반드시 이해해야 할 말이다. 다음을 보자.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내포의 수가 늘어날수록 외연의 수는 줄어든다. 예로 든 ‘철수 쌤’은 지문에서 말하는 ‘고유명사’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문에는 외연의 일반적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 있다. “‘새[鳥]’라는 유명을 어떤 한 마리의 특정한 새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인데, 이를 이해하려면 지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위 상황에서 ‘철수’는 고유명사로서 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런데 ‘쌤’은 일반명사인데도 위 상황에서는 역시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또한 지문에서 말하는 ‘가리키는 대상이 오직 하나인 명’에 해당한다.
지문에는 출제 선생님이 친절하게도 사례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지만, 그러지 않았더라도 이 정도는 고등학생이면 외연의 개념을 활용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영희: 쌤이 방금 말씀하신 것이 이해가 안 돼요.포인트 1.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다투는 말이나 글에 익숙해지자.
쌤: 철수도 이해가 안 되니?
철수: 저도 이해가 잘 안 돼요.
2. ‘문제의 원인-문제 상황-문제 해결법-결과’의 논리 전개를 보이는 글이 있다.
3. 외연(外延)은 일정 개념이 적용되는 사물의 전 범위, 내포(內包)는 그런 사물이 공통으로 지닌 필연적 성질의 전체를 말한다.
4. 내포의 수가 늘어날수록 외연의 수는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