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관점에 따른 대상의 평가
아도르노의 미학은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예술은 사회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에서 떨어져 사회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의 미학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공한다. 가령 사과를 표현한 세잔의 작품을 아도르노의 미학으로 읽어 낸다면, 이 그림은 사회의 본질과 유리된 ‘아름다운 가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아도르노의 미학은 … 긍정적으로 평가… 미적 체험을 …에 국한시킴으로써, 진정한 예술을 …으로 한정한다. … 예술의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다.관점(觀點)이란 하나의 의견이므로 평가의 대상이 된다. 지문의 화제는 ‘아도르노의 미학’으로서 이는 관점에 해당하는데, 글쓴이는 그 관점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평가에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있다. 지문에서 글쓴이는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며 아도르노 미학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에 반해 부정적 평가는 그러지 못하고, ‘미적 체험을 …에 국한시킴으로써, 진정한 예술을 …으로 한정한다. … 예술의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국한(局限·범위를 일정한 부분에 한정함)’ ‘한정(限定·수량이나 범위 따위를 제한하여 정함)’ ‘축소(縮小·모양이나 규모 따위를 줄여서 작게 함)’는 공통적으로 어떤 것을 무시하고 일부분만 생각하는 걸 말하며 부정적 평가를 할 때 많이 사용된다. ‘의의(義意·어떤 사실이나 행위 따위가 갖는 중요성이나 가치)’ ‘한계(限界·사물이나 능력, 책임 따위가 실제 작용할 수 있는 범위)’라는 말이 있는데, 이 둘은 긍정적 평가 또는 부정적 평가를 할 때 흔히 사용한다. 결국 지문은 아도르노 미학의 의의와 한계를 말하는 글이다. 세잔의 작품을 아도르노의 미학으로 …에 불과… 하지만 … 미메시스일 수 있다. … 아도르노의 미학은 … 전위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 베냐민의 지적처럼, 전위 예술이 아닌 예술에서도 미적 가치를 발견관점에 따라 대상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지문에서는 아도르노와 글쓴이, 베냐민의 관점에 차이가 있어 ‘세잔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다름을 보여준다.
하지만 세잔의 작품은 예술가의 주관적 인상을 붉은색과 회색 등의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로 표현한 미메시스일 수 있다. 미메시스란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의 관념을 재현하는 것, 즉 감각될 수 없는 것을 감각 가능한 것으로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그는 … 미적 체험을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국한시킴으로써, 진정한 예술을 감각적 대상인 형태 그 자체의 비정형성에 대한 체험으로 한정한다. 결국 그는 … 미적 체험을 현대 사회의 부조리에 국한시킴으로써, 진정한 예술을 감각적 대상인 형태 그 자체의 비정형성에 대한 체험으로 한정한다. 결국 아도르노의 미학에서는 주관의 재현이라는 미메시스가 부정되고 있다.
한편 아도르노의 미학은 예술의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키고 있다. 즉 그 자신은 동일화의 폭력을 비판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전위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하며 전위 예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동일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이는 현실 속 다양한 예술의 가치가 발견될 기회를 박탈한다. 실수로 찍혀 작가의 어떠한 주관도 결여된 사진에서조차 새로운 예술 정신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베냐민의 지적처럼, 전위 예술이 아닌 예술에서도 미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2022학년도 9월 평가원 모의평가-
아도르노는 세잔의 작품을 ‘사회의 본질과 유리된 ‘아름다운 가상’을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앞에서 ‘~에 불과하다’는 대상의 가치를 낮게 평가할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아도르노는 세잔의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세잔의 작품은 … 미메시스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세잔의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왜 긍정적 평가라 할 수 있는지 알려면 ‘미메시스’에 대해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출제 선생님은 이에 대한 정의로 설명한다.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의 관념을 재현하는 것, 즉 감각될 수 없는 것을 감각 가능한 것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주관의 재현이라는 미메시스’라고 다시 한번 핵심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한편 아도르노와 베냐민의 관점도 다르다. 그래서 ‘전위 예술’에 대해 아도르노는 ‘진정한 예술’이라고 하고, 베냐민은 ‘전위 예술이 아닌 예술’도 진정한 예술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실수로 찍혀 작가의 어떠한 주관도 결여된 사진에서조차 새로운 예술 정신을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베냐민의 관점에 따르면 전위 예술만이 진정한 예술이라 할 순 없는 것이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중립적 평가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아름다운 가상’이 부정적 평가를 담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회의 본질과 유리된’이라는 꾸미는 말 때문이다. 예술에서 사회의 의미를 중시했던 아도르노라면 사회의 본질과 동떨어진 것을 좋게 볼 수 없다. 한편 글쓴이는 미메시스를 중시하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세잔의 작품을 주관을 재현한 미메시스라고 한 것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또한 ‘동일화의 폭력을 비판하지만, … 전위 예술의 관점에서 예술의 동일화를 시도하’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동일화를 비판하면서도 동일화를 시도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는 모순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포인트1. 관점(觀點)이란 하나의 의견이므로 평가의 대상이 된다.
2. ‘국한’ ‘한정’ ‘축소’는 공통적으로 어떤 걸 무시하고 일부분만 생각하는 것을 말하며 부정적 평가를 할 때 많이 사용된다.
3. ‘의의’는 대상이 가진 긍정적 측면을, ‘한계’는 부정적 측면을 말할 때 흔히 사용한다.
4. 관점에 따라 대상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5. A를 비판하면서도 A를 하는 것은 모순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