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성립 조건과 개념의 외연
멈춰 있는 흰 공에 빨간 공이 부딪쳐 흰 공이 움직였다고 하자. 흄은 빨간 공이 흰 공에 부딪친 사건과 흰 공이 움직인 사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성립하기 위한 세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있어야 하고, 원인과 결과가 시공간적으로 이어서 나타나야 하며,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항상적 결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적 결합이란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방식으로 공이 움직여 부딪친다면, 같은 식으로 공들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리드는 위 사례와 같이 흄이 말하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하는 경우에도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오직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만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행위자 인과 이론에서 리드는 원인을 ‘양면적 능력’을 지녔으며 그 변화에 대한 책임이 있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양면적 능력은 변화를 산출하거나 산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행위자는 결과를 산출할 능력을 소유하여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 변화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다. 리드는 진정한 원인은 행위자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빨간 공이 흰 공에 부딪쳤을 때 흰 공은 움직일 수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빨간 공은 행위자일 수 없다.

경험론자인 리드의 관점에서 보면 관찰의 범위 내에서 행위자는 오직 인간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흰 공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빨간 공을 굴렸고 흰 공이 움직였다면 그 사람은 행위자이고 흰 공이 움직인 것은 결과에 해당한다.

-2022학년도 3월 교육청 전국연합학력평가-
리드는 … 흄이 말하는 세 가지 조건이 성립하는 경우에도 인과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생각도 생각 나름이지'…조건에 조건을 붙이고 있네
‘D가 성립할 조건’에서 조건의 개수에 따라 D에 속하는 수가 줄어든다. 예컨대 ‘생각하다’라는 한 가지 조건만으로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때와 달리, ‘생각도 생각 나름이지. 올바르게 생각해야지’ 하며 ‘생각하다’와 ‘올바르다’라는 두 가지 조건이 성립할 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이에 속하는 수는 줄어든다. 옆의 표는 조건 A, A/B, A/B/C 등에 따라 나타나는 경우의 수를 나타낸 것인데, (가)보다는 (나), (나)보다는 (다)에서 조건의 수가 많다. 이는 D에 속하는 것이 (가)보다 (나)가 적고, (나)보다는 (다)가 적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이전에 말한 내포의 수가 많을수록 외연의 수는 줄어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지문에서도 흄은 ‘인과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리드는 그 외에 또 하나의 조건, 즉 ‘원인’이 ‘자유 의지를 가진 행위자’여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는 흄이 인과 관계라고 생각하는 것 중에 리드는 인과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와 같이 벤다이어그램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생각도 생각 나름이지'…조건에 조건을 붙이고 있네
변화를 산출하거나 산출하지 않을 수 있는 … 흰 공은 움직일 수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기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생각도 생각 나름이지'…조건에 조건을 붙이고 있네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사례로, 구체적인 사례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훈련을 많이 하라고 했다. 지문에서 ‘변화를 산출하’는 것과 ‘(변화를) 산출하지 않’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다. 이를 ‘흰 공은 움직일 수… 있’다와 ‘(흰 공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연결지어 이해하려면 벤다이어그램만한 것이 없다.

이를 고려할 때, ‘흰 공은 움직일 수만 있을 뿐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은 ‘변화를 산출할’ 경우만 있을 뿐 ‘변화를 산출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즉 변화만 산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행위자’를 ‘변화를 산출하거나 산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동적인 능력’을 지닌 존재로 정의했기 때문에 ‘빨간 공은 행위자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경험론철학에서 ‘인식’이라는 말은 ‘지식’과 같은 말이라 생각하면 좋다. 그 인식의 바탕이 경험에 있다고 보아, 경험의 내용이 곧 인식의 내용이 된다는 이론이 경험론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해 깨닫게 되는 내용을 말한다. 즉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등의 인간 감각을 통해 파악하는 것이다. 인간 감각을 보조하는 장치들, 예컨대 현미경, 전파 탐지기 등을 이용해 파악하는 것도 경험이다. 그뿐만 아니다. 촛불을 비커로 덮어 꺼지는 것을 통해 산소의 존재를 아는 것, 즉 실험도 경험이다.

경험론을 합리론(이성론)과 대비해 이해하면 좋다. 합리론은 진정한 인식은 경험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논리적 필연성으로 연결돼 있는 세계(대상)를 인간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론이다. 합리론에서는 이성이 경험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험론과 합리론은 국어 지문에서 많이 언급되는 철학 이론이다. 이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은 글 읽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 포인트
신철수 성보고 교사
신철수 성보고 교사
1. ‘D가 성립할 조건’에서 조건의 개수에 따라 D에 속하는 수가 줄어듦을 알아두자.

2. 내포의 수가 많을수록 외연의 수는 줄어든다는 것을 알아두자.

3.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사례로, 구체적인 사례를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자.

4. 경험론과 합리론은 국어 지문에서 많이 언급되는 철학 이론임을 알아두자.

5. ‘경험’은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해 깨닫게 되는 내용임을 알아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