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의 누적된 부실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정기국회 국정감사 철이 다가오자 부실과 적자에 대한 정부쪽 답변 자료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가입자가 가장 많은 국민연금을 비롯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사학연금까지 재정적으로 탄탄한 곳이 없다. 흔히 ‘4대 공적연금’이라고 통틀어 지칭하고는 있지만, 법적 성격은 엄연히 모두 다르다. 먼저 전 국민이 잠재가입자인 국민연금은 공적부조 성격의 사회보험이다. 당분간은 적립금이 쌓여가는 데 2057년 고갈이 예고돼 있다. 전망할 때마다 고갈 시점이 앞당겨진다는 게 문제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말 그대로 진짜 연금이다. 이미 심각한 적자가 발생했는데, 별도의 독립 법률에 따라 정부가 적자분을 무조건 메꿔줘야 한다. 사립학교 교직원이 가입하는 사학연금은 성격이 또 다르다. 2023년부터 적자전환이 예상되는데 ‘4대 연금’으로 함께 묶여 분류되면서 적자 발생 시 정부에 메꿔달라는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떼법’은 교사·교수라 해서 예외가 없는 고질병 아닌가. 급격한 고령화로 연금지급액은 해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4대 연금을 함께 계산할 경우, 2025년에는 적자로 인한 부족 금액이 10조원을 넘어선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정부 예산에서 이 적자분을 보전해줘야 할까. [찬성] 공무원·군인연금 법적 의무노후용 국민연금도 불가피국고 지원이 불가피하다. 저마다 법적 성격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법률로 가입이 강제된 만큼 연금 가입자가 연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한국에서 쉽게 용인되겠나. 무엇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관련법에 따라 정부에 연금 지급 의무가 있다. 현직 공무원과 군인이 내는 납입금을 쌓아 조성한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정부 예산에서 직접 지원해줘야 한다. 군인연금은 1973년부터 적자가 시작됐고, 정부는 매년 부족한 만큼 보전해왔다. 2022년 군인연금 부족액이 2조9077억원인데, 정부 지원금액도 2조9220억원으로 책정돼 있다. 2025년에는 3조2881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공무원연금도 정부에 지급 의무가 있으니, 법대로 시행하는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도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정부가 부족분을 메꿔주지 않을 수 없고, 설령 법을 바꾼다 해도 소급 적용은 불가능하다.
다만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 지원은 논란 소지가 있다. 가입이 의무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공적 부조 체제이니 기금이 파탄나면 그걸로 끝이다. 법적으로는 그렇지만 가입자가 2000만 명이 넘고, 직장 유무와 관계없이 대다수 국민이 가입자가 돼 20년, 30년씩 가입했는데 현실적으로 연급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동안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을 홍보하면서 마치 적금 드는 것처럼 ‘노후 저축금’ 인식을 심어준 것도 사실 아닌가.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국고에서 국민연금 부족분을 메워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남았을 뿐이다.
국민연금은 다수 국민이 노후생활용으로 강제로 가입했고, 국가가 국민 노후를 살피며 챙긴다는 측면이 있으니 지급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복지국가의 기본이다. 국고 지원의 수준, 연금기금 고갈 시 개인의 손실분 계산 등이 관건일 수 있다. 사학연금도 가입자와 연금 수혜자가 사립학교 교직원이라는 특수성은 있지만 결국 다른 공적연금에 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 개혁 회피한 채 지원 곤란 국민·사학연금은 법적 근거 없어논의의 출발을 공무원연금·군인연금과 국민연금, 사학연금을 각각 별개로 놓고 냉철히 볼 필요가 있다. 이름만 ‘연금’이라고 함께 쓸 뿐, 법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전제를 무시하면 무의미한 논의가 이어진다. 이들 연금에 공공성이 있다는 이유로, 또 가입자들 노후보장용이라는 이유로 정부 예산에서 구별 없이 지원해준다면, 수많은 민간의 연금보험 상품도 정부가 다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많은 보험사가 경쟁적으로 판매한 개인 연금보험을 무슨 수로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줄 수 있나. 예금보험 제도에 따라 제한된 수준만큼 보증하는 게 현실적 금융 보호책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법에 따라 지급보증, 즉 연금기금 고갈에 따른 적자분을 국민 혈세로 지원해주되, 조건이 있다. 이 양대 연금의 구조조정이다. 소급해서 연금 수령액을 줄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신규 가입자는 물론 기존 가입자라도 지금부터의 납입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을 낸 만큼만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납입분의 몇 배가 되는 수령액을 계속 보장하면 적자폭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만 해도 적자폭이 갈수록 커져 2022년 3조730억원, 2023년 5조204억원, 2024년 6조132억원, 2025년 7조750억원씩 기금 부족이 예고돼 있다. 매년 그만큼씩 혈세 지원이 불가피한데도 공무원 수는 매년 늘어만 간다. 공무원 숫자도 줄여야 한다. 군인연금도 비슷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국고에서 지원해줄 근거가 없다. 지원하려면 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국민연금 미가입자도 혈세 지원에 동의할까. 숫자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정부 지원이 결정나도 결국은 그만큼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므로 둘러치나 메치나 같은 결과다. 국민연금 설계를 잘못한 정부의 대국민 사죄도 선결조건이다. 가입자가 제한된 사학연금에 대한 정부 지원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같은 차원의 난제다. √ 생각하기 - 고령화·공무원 증원, 미래세대에 부담…연금개혁 회피 책임져야 저출산과 급격히 진행된 고령화에 따른 문제점은 다양하고 어렵다.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도 각각의 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 추계’, 즉 납입료 수입 구조와 지출 규모에 대한 전망을 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그에 맞춰 필요한 조치(연금 개혁)도 해야 한다. 역대 정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인기 없는 결정이라고 정부가 회피해버렸다.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져야 할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개혁은커녕 공무원 숫자만 대대적으로 늘려놨으니 국민 부담이 급증하게 됐다. 이 모든 게 ‘생색나는 선심책은 내 임기 중에, 힘들고 싫은 소리 듣는 결정은 다음 정부가 해라’는 ‘NIMT(not in my term)’ 현상이다. 중앙 정부가 그러니 지방자치단체도 따라한다. 갈수록 커지는 연금적자는 어떤 식으로든 국고에서 지원해줄 수밖에 없고, 미래세대가 세금을 더 내는 게 다음 수순이다. 다른 어떤 대안이 있나. 경제 운용을 잘못해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된다. 그런데 정부도 국회도 태연하기만 하다. 연금 문제는 미래사회에 대한 중요한 대비라는 사실을 모두 외면하고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다만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 지원은 논란 소지가 있다. 가입이 의무화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공적 부조 체제이니 기금이 파탄나면 그걸로 끝이다. 법적으로는 그렇지만 가입자가 2000만 명이 넘고, 직장 유무와 관계없이 대다수 국민이 가입자가 돼 20년, 30년씩 가입했는데 현실적으로 연급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동안 정부가 국민연금 가입을 홍보하면서 마치 적금 드는 것처럼 ‘노후 저축금’ 인식을 심어준 것도 사실 아닌가.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국고에서 국민연금 부족분을 메워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좀 남았을 뿐이다.
국민연금은 다수 국민이 노후생활용으로 강제로 가입했고, 국가가 국민 노후를 살피며 챙긴다는 측면이 있으니 지급에 이상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게 복지국가의 기본이다. 국고 지원의 수준, 연금기금 고갈 시 개인의 손실분 계산 등이 관건일 수 있다. 사학연금도 가입자와 연금 수혜자가 사립학교 교직원이라는 특수성은 있지만 결국 다른 공적연금에 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 개혁 회피한 채 지원 곤란 국민·사학연금은 법적 근거 없어논의의 출발을 공무원연금·군인연금과 국민연금, 사학연금을 각각 별개로 놓고 냉철히 볼 필요가 있다. 이름만 ‘연금’이라고 함께 쓸 뿐, 법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전제를 무시하면 무의미한 논의가 이어진다. 이들 연금에 공공성이 있다는 이유로, 또 가입자들 노후보장용이라는 이유로 정부 예산에서 구별 없이 지원해준다면, 수많은 민간의 연금보험 상품도 정부가 다 지급보증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많은 보험사가 경쟁적으로 판매한 개인 연금보험을 무슨 수로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줄 수 있나. 예금보험 제도에 따라 제한된 수준만큼 보증하는 게 현실적 금융 보호책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법에 따라 지급보증, 즉 연금기금 고갈에 따른 적자분을 국민 혈세로 지원해주되, 조건이 있다. 이 양대 연금의 구조조정이다. 소급해서 연금 수령액을 줄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신규 가입자는 물론 기존 가입자라도 지금부터의 납입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돌려받는 연금을 낸 만큼만 받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납입분의 몇 배가 되는 수령액을 계속 보장하면 적자폭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공무원연금만 해도 적자폭이 갈수록 커져 2022년 3조730억원, 2023년 5조204억원, 2024년 6조132억원, 2025년 7조750억원씩 기금 부족이 예고돼 있다. 매년 그만큼씩 혈세 지원이 불가피한데도 공무원 수는 매년 늘어만 간다. 공무원 숫자도 줄여야 한다. 군인연금도 비슷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국고에서 지원해줄 근거가 없다. 지원하려면 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국민연금 미가입자도 혈세 지원에 동의할까. 숫자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정부 지원이 결정나도 결국은 그만큼 세금 부담이 늘어날 것이므로 둘러치나 메치나 같은 결과다. 국민연금 설계를 잘못한 정부의 대국민 사죄도 선결조건이다. 가입자가 제한된 사학연금에 대한 정부 지원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같은 차원의 난제다. √ 생각하기 - 고령화·공무원 증원, 미래세대에 부담…연금개혁 회피 책임져야 저출산과 급격히 진행된 고령화에 따른 문제점은 다양하고 어렵다. 국민연금도, 공무원연금도 각각의 법에 따라 5년마다 ‘재정 추계’, 즉 납입료 수입 구조와 지출 규모에 대한 전망을 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그에 맞춰 필요한 조치(연금 개혁)도 해야 한다. 역대 정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아예 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인기 없는 결정이라고 정부가 회피해버렸다.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떤 식으로든 져야 할 것이다. 공무원연금도 개혁은커녕 공무원 숫자만 대대적으로 늘려놨으니 국민 부담이 급증하게 됐다. 이 모든 게 ‘생색나는 선심책은 내 임기 중에, 힘들고 싫은 소리 듣는 결정은 다음 정부가 해라’는 ‘NIMT(not in my term)’ 현상이다. 중앙 정부가 그러니 지방자치단체도 따라한다. 갈수록 커지는 연금적자는 어떤 식으로든 국고에서 지원해줄 수밖에 없고, 미래세대가 세금을 더 내는 게 다음 수순이다. 다른 어떤 대안이 있나. 경제 운용을 잘못해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도 일어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된다. 그런데 정부도 국회도 태연하기만 하다. 연금 문제는 미래사회에 대한 중요한 대비라는 사실을 모두 외면하고 있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