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54) 아메리칸 셰프 (上)
모든 사건은 거물 블로거 램지(올리버 플랫 역할)가 요리사 칼(존 파브로)의 음식을 먹고 남긴 리뷰 한 건으로부터 시작됐다. ‘실망했다. 칼의 추락을 보여주는 요리. 별 두 개.’ 혹평에 상처 입은 칼은 트위터로 램지를 공개 저격한다. 둘의 설전은 SNS를 통해 생중계되고 상황은 칼이 전혀 예상치 못한 쪽으로 흘러간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는 SNS 초짜였던 요리사가 하룻밤 새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열정 요리사 칼주인공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요리사 칼. 본인 레스토랑도 없고 남의 식당에 고용돼 일하지만 요리 개발에 대한 열정만은 끓어 넘친다. 일에만 몰입하는 바람에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과도 소원해졌지만 요리라면 누구에게도 안 밀린다. 그런 그에게도 LA에서 가장 핫한 음식블로거 램지의 식당 방문은 떨리는 일이다. 칼은 새로운 메뉴를 야심 차게 준비한다.시네마노믹스
(54) 아메리칸 셰프 (上)
문제는 칼이 새 메뉴를 시도할 때마다 태클을 거는 레스토랑 사장. 기존 메뉴대로 가라는 사장의 요구에 칼은 항변한다. “거물이 오니까 좋은 메뉴를 내야죠. 지금 메뉴는 창의성이 없어요.” “아니. 거물이니까 안정적으로 가. 그 사람 블로그가 대기업에 1000만달러(약 119억원) 받고 팔렸어. 모험하지 마.”
칼과 사장이 램지를 신경 쓰는 이유는 그만큼 램지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램지처럼 온라인 콘텐츠로 유행을 이끄는 사람을 ‘인플루언서’, 이들을 이용한 홍보를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라고 한다. 지난해 전 세계 기업들이 인플루언서에게 지급한 금액은 100억달러(약 11조8340원)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5년 5억달러(약 5959억원)에서 시장이 빠르게 커졌다. 사장의 겁박에 가까운 설득에 칼은 신메뉴를 포기한다. 구독자 수의 경제학칼은 결국 램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램지는 ‘지루하고 진부하다’는 평가를 남긴다. 칼은 트위터에서 램지의 혹평이 수없이 리트윗되는 상황을 목격한다. 참지 못하고 램지의 트위터 계정에 욕설을 날린 칼. “요리를 면상으로 짓이기니 맛을 모르지.” 자신이 보낸 메시지가 램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보인다는 걸 ‘SNS 초짜’인 칼은 모른다.
“아빠, 밤사이에 팔로어가 1653명 생겼어.” “팔로어가 뭐냐”고 묻는 칼에게 초등학생 아들은 설명한다. “1653명에게 아빠 글이 보인다는 거야.” 램지를 공개저격하면서 하룻밤 새 유명인이 된 것이다. 인플루언서 시장에선 구독자 수가 많을수록 영향력이 커진다. ‘메가 인플루언서’(구독자 100만명 이상)들은 아예 콘텐츠 기업과 전속 계약을 하는 경우도 많다. 램지의 블로그를 대기업이 거액에 사들인 것처럼 한 회사가 해당 인플루언서의 콘텐츠 유통을 독점하는 것이다.
램지와의 설전으로 트위터 팔로어가 2만명까지 늘어난 칼이 “계정을 삭제하겠다”고 하자 홍보 전문가는 만류한다. “아니, 왜 지워요? 이게 다 돈인데.” 미국 마케팅업체 이제아에 따르면 파워블로거의 게시물당 평균 광고비는 2014년 407달러(약 48만원)에서 2019년 1442달러(약 171만원)로 세 배가량 늘었다. 구독자가 많은 계정일수록 단가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다. 밈노믹스 주인공이 되고램지가 레스토랑을 재방문한 날, 신메뉴를 준비하던 칼은 사장과의 마찰로 주방에서 쫓겨나고 만다. 화가 난 칼은 식당에서 난동을 부리고 이는 SNS로 생중계된다. 램지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칼의 영상이 입소문을 타고 무섭게 퍼진다. 어쩌면 좋냐며 찾아온 칼에게 홍보 전문가는 말한다. “램지가 미친듯이 포스팅을 하고 있어요. 이걸 언론사들이 공유하고 SNS에선 짤방으로 만들어 또 공유하고. 이 정도면 기록이에요.”
칼이 일종의 ‘밈(meme·유행 요소를 모방 또는 재가공해 만든 콘텐츠)’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밈은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처음 만든 용어로 유통업계에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밈노믹스(meme+economics)’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가수 비의 ‘1일 3깡’이 밈으로 소비되자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홍보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홍보 전문가는 칼에게 “요리검증 프로그램 MC 자리는 따놨다”고 위로하지만 칼은 그저 괴로울 뿐이다. 이 일로 레스토랑에서도 잘렸다. “지금 사람들이 절 비웃는 건가요, 아니면 공감하는 건가요.” “둘 다요.” 밈노믹스의 특징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인증샷 성지’ 된 푸드트럭요리를 계속하고 싶었던 칼은 푸드트럭에 도전한다. 아내와의 이혼 후 멀어졌던 아들도 방학을 맞아 합류한다. 그렇게 팔기 시작한 메뉴는 쿠바 샌드위치. SNS에 익숙한 아들은 매일 푸드트럭의 영업 위치를 위치태그를 걸어 알린다. 샌드위치를 만드는 과정과 재료 사진도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램지와 싸우면서 얻은 2만명의 팔로어가 칼에게 기회가 됐다. 칼의 푸드트럭은 SNS에서 ‘인증샷 성지’가 된다.
이렇게 누군가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부추기는 현상을 ‘밴드왜건 효과’라고 부른다. SNS 인증샷 열풍도 다른 사람의 소비를 따라하고 싶다는 심리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다. 칼의 푸드트럭은 ‘에펠탑 효과’까지 누린다. 자주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상품의 호감도가 상승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용어다. 칼과 아들은 몇 달간 함께 트럭을 타고 샌드위치를 만들면서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따뜻한 정을 나눈다.
고은이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① 방송 신문 등 기존 미디어의 영향력과 파워 블로거와 인플루언서 등 SNS 스타의 파워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클까.
② 인플루언서 마케팅이나 밈노믹스가 광고, 판촉이벤트 등 전통적 마케팅 기법보다 효과적일까.
③ 짧고 강렬했던 첫인상이 사람·사물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첫인상 효과’와 처음에는 싫거나 무관심했지만 자주 접하면서 호감도가 높아지는 ‘에펠탑 효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제품 판매에 유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