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우화》
버나드 맨더빌
(1670~1733)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로 도덕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버나드 맨더빌 (1670~1733)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로 도덕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다.
“사치는 가난뱅이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100만 명을 먹여살렸다.”“잘살고 못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그들의 법질서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것이다.”

“개인의 악덕(惡德)은 사회의 이익이 될 수 있다.” “사치는 가난뱅이 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주었고, 얄미운 오만은 또 다른 100만 명을 먹여살렸다.”(버나드 맨더빌)

18세기 초 영국은 경제 자유가 확대되고 상업과 금융이 발전하면서 풍요와 번영을 누렸다. 일각에서는 물질 추구, 이기심, 탐욕이 만연하고 과도한 사치와 낭비가 도덕을 파괴시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져갔다. 이런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도덕 개혁 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그 무렵 악덕으로 여겨지던 이기심과 사치가 오히려 번영을 가져온다고 주장하며 도덕 개혁 운동에 찬물을 끼얹은 사람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 버나드 맨더빌(1670~1733)이다.

[다시 읽는 명저] "사치가 100만 명 먹여살려"…'악덕'이 경제번영 이끈다 주장
맨더빌의 대표작 《꿀벌의 우화: 또는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은 자본주의 발전의 초입에서 발생하는 ‘돈과 도덕’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우화(寓話) 형식을 빌려 때로는 시로, 때로는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상업사회의 출현으로 야기된 도덕문제를 예리하게 진단했다. 맨더빌은 1705년 펴낸 풍자시 《투덜대는 벌집》에서 ‘악덕이 사라지면 잘살던 사회도 무너진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여기에 주석 20개를 달고 ‘미덕은 어디서 왔는가’라는 글을 추가해 1714년에 출간한 책이 《꿀벌의 우화》다. 맨더빌의 핵심 주제인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이 여기서 처음 나온다. “개인의 악덕이 사회의 이익”그때만 해도 눈길을 크게 끌지는 못했다. 맨더빌이 주목받은 것은 9년 뒤인 1723년이다. 주석을 새로 달고 ‘사회의 본질을 찾아서’ ‘자선과 자선학교’ 등 두 편을 추가해 다시 펴낸 책이 관심을 끌면서 하루아침에 악명을 떨치게 됐다. 영국에서는 사회를 어지럽힌 혐의로 고발당했고, 프랑스에서는 책을 금서로 분류해 불태우기도 했다. 맨더빌을 ‘인간 악마(Man-Devil)’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맨더빌은 굴하지 않고 이듬해 반박문을 담아 다시 책을 냈고, 1729년에는 대화록 여섯 편을 담은 《꿀벌의 우화》 제2권을 출간했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아라. 바보들은 오로지/위대한 벌집을 정직하게 만든다고 애를 쓴다만/세상의 편리함을 누리며/전쟁에서 이름을 떨치면서도 넉넉하게 사는 것이/커다란 악덕 없이도 된다는 것은/머리속에나 들어 있는 헛된 꿈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정신병을 연구한 맨더빌은 사람이란 감성적이므로 자연스럽게 이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각자가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사회구조가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현상이었다.

맨더빌은 “세상은 이기심, 탐욕, 사치 등 악덕으로 가득차 있는데도 멀쩡하게 잘 돌아간다”고 했다. 악덕이 있더라도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 악덕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다. 사회 번영은 한 개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재주를 통해, 수세대에 걸쳐 축적된 지혜를 통해 창출된다며 시장질서의 탁월함을 역설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맨더빌의 명작에서 나오는 생각이 진화와 자발적인 질서 형성이라는 쌍둥이 같은 생각을 현대 사상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자유주의 경제학 발전에 기여맨더빌은 소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부자들의 사치가 생산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오며, 사치를 막는다면 물건이 팔리지 않아 경제가 침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로지 저축만 미덕으로 간주하는 세상은 소비 부족으로 유지되기 어렵고, 아무리 좋은 상품이 있어도 이를 사줄 수 있는 유효수요가 없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맨더빌은 번영의 원동력인 복잡한 분업관계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사익 추구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생성된다고 봤다. 정부의 규제나 간섭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잘살고 못사는 것을 공무원과 정치인의 미덕과 양심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그들의 법질서는 언제까지나 불안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미다.

맨더빌은 체계화된 경제이론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 경제학의 등장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개인의 이기심을 경제활동의 원천으로 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스미스의 이런 사상은 맨더빌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맨더빌이 사치를 오늘날 경제학에서 쓰는 중립적 용어인 소비에 가깝게 이해한 것도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훗날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맨더빌의 시와 주석을 인용하면서 유효수요가 국민소득을 결정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썼다. 맨더빌은 경제학자는 아니었지만 시장의 메커니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줬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가 설파한 사상이 빛을 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양준영 한국경제신문 IT과학부장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