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경제학
시네마노믹스 (2) 기생충 (下)
“아주 근본적인 대책이 생겼어요.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거예요.”시네마노믹스 (2) 기생충 (下)
기생충의 마지막 장면. 기우(최우식 분)는 돈을 많이 벌어서 박 사장(이선균 분)의 대저택을 사겠다고 다짐을 내뱉는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기우가 임금을 꼬박 모아 그 집을 사려면 547년이 걸린다”고 했다. 불평등에 대한 감독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백수 가족’과 부잣집인 ‘박 사장 가족’의 경제적 불평등은 계단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우가 과외를 하러 박 사장 집에 갈 땐 끝없는 계단을 오르고, 홍수로 집이 잠겨 반지하 방으로 돌아갈 땐 끝없이 계단을 달려내린다.
갈등의 본질은 결국 일자리
어찌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갈등의 이면에는 일자리 다툼이 존재한다. 현실에서도 삶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집약된다. 괜찮은 일자리를 잡아 기득권 울타리에 진입하는 순간, 계층 이동의 기회가 열린다. 반면 어떤 이유에서건 일자리를 잃어 울타리 밖으로 내쳐지는 찰나, 삶은 무너진다. 기택 가족의 반지하 인생도 사업 실패로 기택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시작된 것이다. 아들 기우를 통해 운좋게 다른 일자리 기회를 얻게 된 기택. 하지만 그 자리는 이미 또 다른 약자(운전기사와 가정부)가 차지하고 있다.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약자’ 간의 갈등은 다음 수순이다. ‘일자리 빼앗고, 지키기’를 둘러싼 피튀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불평등을 설명하는 지표들 불평등은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매달려온 연구 주제다.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표도 다양하다. 지니계수는 그 가운데 경제학자들이 즐겨 쓰는 소득분배 지표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우면 불평등하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한국 도시 2인 이상 가구의 지니계수는 1992년 0.245로 저점을 찍은 뒤 꾸준히 높아졌다. 지니계수와 함께 대표적인 분배지표로 활용되는 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평균소득을 하위 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은 2018년 이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소득불평등과 계층이동의 상관관계를 밝힌 개념도 있다. 마일스 코락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가 ‘대대로 이어지는 불평등’이라는 연구에서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 곡선’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상류사회에 입성하겠다는 의지로 뭉친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름을 따왔다.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소득 불평등이 심할수록 세대 간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로축에 소득 불평등 정도를 알려주는 지니계수, 세로축에는 세대 간 소득탄력성을 표시해 국가별로 점을 찍으면 경향성이 드러난다. 2012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앨런 크루거가 소개해 유명해진 개념이다.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계층갈등 해법
계층 이동의 ‘문’이 점차 좁아지고 있다는 신호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문제는 무너진 계층 사다리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다. 경제학자 사이에서도 극명히 엇갈린다. 기회보다는 결과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경제학자들은 분배를 강조한다. 이른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다. 부자나 대기업으로부터 ‘부유세’나 ‘자본세’를 떼내 약자에게 돌려주자는 주장이 그런 사례다. 반면 주류 경제학자들은 ‘기회’의 평등에 주목한다. 경제적·사회적 약자에게 일할 수 있는 유인책을 제공해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가 아닌,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복지 안전망을 구축하자는 것도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계층 갈등의 해법을 지극히 영화적인 설정으로 몰아간다. 영화의 절정은 한낮의 살인 사건으로 치닫는다. 계층을 오가는 사다리가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권력층인 박 사장 가족이 홍수로 모든 걸 잃은 기우 가족의 상황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때, 심지어 그들의 ‘냄새’를 혐오하는 표정과 태도를 내비쳤을 때,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저마다 비극을 맞는다. 계층 간 단절이 사회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은유다.
NIE 포인트
① 경제학자들이 불평등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 한국의 ‘위대한 개츠비 곡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어떤가.
③ ‘결과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나수지 한국경제신문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