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의 원제와 번역 제목이 전혀 다르답니다.
한동안 영화 번역에 대한 오역 논란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영화 번역에 대한 오역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요즘 우리나라 국민의 영어 수준이 예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고, 또 번역가가 영화 속 세계관의 정확한 배경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의 원제와 번역 제목이 전혀 다르답니다.
하지만 번역 전공자로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자면 “번역자는 반역자(translators traitors)”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사실상 두 언어 간의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번역은 가시가 있는 장미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란 표현처럼 멀리서 볼 때는 참 아름답게 보일지 몰라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정말 고통스러운 창작의 작업일 때가 많습니다.
사실 최근뿐 아니라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수많은 외화 제목도 상당한 오역 논란에 시달려 왔습니다.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화들의 원제와 번역 제목이 전혀 다르답니다.
하지만 이것을 꼭 오역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게, 영화가 가진 상업성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어야 하므로 시대와 상황을 고려해서 만든 ‘귀여운(?) 오역’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세계에서 한국 영화도 많은 각광을 받고 있는데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한국 영화의 영어 제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살펴볼 영화는 이번 5월 30일에 개봉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영어 제목은 parasite입니다. parasite란 단어 자체가 ‘기생충’이란 뜻인데 뭐가 신기하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 영화를 예로 든 이유는 봉준호 감독의 히트작 [괴물] 때문입니다. 한글 제목이 [괴물]이니 많은 사람이 영어 제목으로 monster를 떠올리겠지만, 놀랍게도 실제 영어 제목은 [Host]였답니다. 우리가 흔히 ‘주인’이라고 외우는 host에 ‘(기생 동물의) 숙주’라는 뜻도 있거든요.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가 괴수 영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얘기로 비춰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영어 제목을 통해 창작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들이 참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전고운 감도의 [소공녀]입니다. 우리가 흔히 ‘소공녀’라는 단어를 들으면 [A Little Princess]라는 소설이 먼저 생각나겠지만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랍니다. 제목 그대로 ‘어린 소녀’가 아니라,‘작은(micro) 집(habitat)’을 의미하는 말이거든요. microhabitat의 사전적 정의는 ‘미소 서식처’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작은 집을 보면 영화가 시사하고자 부분을 영어 제목을 통해 상당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의 영어 제목은 [Ode to my father]입니다. ode가 ‘송가(頌歌)’라는 뜻이니 ‘아버지에게 바치는 노래(혹은 시)’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영화 혹은 시사·문화 평론가는 아니기 때문에 감히 영화의 완성도나 영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메시지에 대해 논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자마자 정말 울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늘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부모님. 그 어떤 말로도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부산의 ‘국제시장’을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영화의 감동을 전달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번역자’이기에 언제나 영어의 ‘반역자’로 남겠지만, 그 반역이 유쾌한 반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고 연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