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박사의 인문학 산책 -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11) 자비
이탈리아 화가 산치오 라파엘로(1483~1520)의 ‘세 자비의 여신들’(1504, 유화, 17×17㎝). 프랑스 상티이 콩데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자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리스’를 세 여신으로 표현했다. 알라이아(광채), 에우프로시네(기쁨), 탈리아(쾌활)로 불리는 이들은 그리스 신화와 종교에서 지하세계에 거주하며 망자를 심판하는 ‘분노의 여신들’이자 ‘자비의 여신들’이다.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등장한다.
이탈리아 화가 산치오 라파엘로(1483~1520)의 ‘세 자비의 여신들’(1504, 유화, 17×17㎝). 프랑스 상티이 콩데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자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카리스’를 세 여신으로 표현했다. 알라이아(광채), 에우프로시네(기쁨), 탈리아(쾌활)로 불리는 이들은 그리스 신화와 종교에서 지하세계에 거주하며 망자를 심판하는 ‘분노의 여신들’이자 ‘자비의 여신들’이다.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등장한다.
오이디푸스는 도시라는 공동체가 지탱하기 위한 원칙을 위반(違反)했다. 도시는 가족의 집합이며, 가족은 부모 자녀라는 독립적인 위치와 기능의 집합체다. 가족의 해체는 곧 도시문명의 해체로 이어진다. 가족의 기반을 흔드는 가장 근본적인 해악은 가족 구성원의 경계를 침범하는 폭력(暴力)이다. 그는 이성적인 인간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오이디푸스는 그를 덮친 운명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조금씩 ‘볼 수 있는’ 지혜로운 인간이 됐다.

운명의 암호

자비로운 여신들이 인간의 기준으로 상반된 가치를 지닌 존재인 것처럼 오이디푸스의 삶도 저주인 동시에 축복이 될 수 있다.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콜로노스에서 다시 저주를 받아 추방될 위기에 처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반전시킨다. 그는 자신이 침입한 낯선 장소가 “자신의 운명의 암호”라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엄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 있게 분노의 여신들에게 요구한다. “그분들이 탄원자를 자비롭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제 여기 이 자리를 절대로 뜨지 않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행한 삶에 얽혀 있는 실타래와 같은 암호를 새로운 문명의 구축을 위해 풀기 시작한다.

‘탄원(歎願)’이란 한 사회의 통념이나 관습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숙고할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는 행위다. 오이디푸스는 자신과 같이 금기시된 인간을 아테네라는 도시문명의 언저리인 콜로노스 안으로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그는 장님이며 허약한 사람이지만 동시에 콜로노스 공동체를 정신적으로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危險)’이다. 그는 기존 사회가 정한 도덕과 윤리의 범위를 허물기를 요구한다. 오이디푸스는 아테네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문턱에 서 있다.

자비(慈悲)

콜로노스 주민들은 오이디푸스의 거주 여부가 아테네 왕 테세우스에게 달려 있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직접 테세우스를 만나 자신이 왜 콜로노스에 있어야 하는지 설득하겠다고 말한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비참한 몰골의 오이디푸스를 동정해 테세우스를 소환하러 전령을 보낸다. 그들은 오이디푸스와의 대화를 통해 특별한 감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오이디푸스의 따님이여, 우리는 그대의 불행에도, 그대 아버지의 불행에도 ‘자비’를 느낍니다. 하지만 신들의 심판이 두려워 우리는 이미 한 말 이외에 더할 말이 없습니다. 그대들은 이곳을 서둘러 떠나시오.” 그들은 비록 사회규범에는 위반되지만 인간의 마음속 깊이 숨겨진 자비를 발견한다.

‘자비’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카리스(charis)’다. 카리스는 상대방의 처지를 깊이 공감할 때 자신도 모르게 심연에서 움트는 감정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바로 자비다. 자비는 상대방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것,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다. 자비는 또한 상대방의 비극적인 상황에 함께 눈물을 흘릴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도록 노력하는 수고다. 콜로노스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음 속에 자비라는 감정의 존재를 확인했지만, 아직 이성을 근거로 만들어진 사회규범을 위반하기를 두려워한다.

새로운 도시문명의 규범

오이디푸스는 아테네가 달성해야 하는 새로운 도시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는 콜로노스 주민들에게 호소한다. “도시라는 평판이나 명성이 헛되이 흘러가 버리기만 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말합니다. ‘아테네는 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도시가 되기를. 이 도시만이 핍박받는 이방인들을 보호해줄 수 있고, 이 도시만이 그런 사람을 기꺼이 돕는다.’” 아테네는 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른 도시들과 구별된다. 신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절기에 따라 신전으로 몰려가 제물을 바치는 거대한 의례를 행하는 것인가? 오이디푸스는 신을 두려워하는 행위를 단호하게 설명한다. 신을 두려워한다는 의미는 ‘핍박받는 이방인들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이방인’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 ‘크세노스(xenos)’는 한 도시에 거주하는 사회의 소외계층을 총칭하는 단어다. 크세노스에는 해당 도시에서 법의 보호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과 과부, 고아, 장애인들을 포함한다. 당시 다른 도시들은 왕정으로 상징되는 순혈주의와 편파주의, 혈연과 지연이 장악하는 폐쇄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새로 태어날 도시문명의 상징인 아테네는 이방인을 보호하는, 이방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도시가 돼야 한다. 작가 소포클레스는 이 비극을 보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묻는다. “아테네에 그런 자비가 있습니까?”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그런 ‘이방인’의 상징으로 여겨, 아테네가 자신을 수용하는지를 시험한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라는 도시에서 온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여느 인간과는 전혀 다른 터부 그 자체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신성하고 경건하고, 이곳 시민들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자로 왔습니다.” 그는 콜로노스 주민들에게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한 ‘다름’을 수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아테네 민주주의 뿌리는 다름을 수용하는 자비와 경청…이방인을 보호하고 수용할 때 도시가 새롭게 태어나죠
■기억해주세요

‘자비’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카리스(charis)’다. 카리스는 상대방의 처지를 깊이 공감할 때 자신도 모르게 심연에서 움트는 감정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바로 자비다. 자비는 상대방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것, 상대방이 사랑하는 것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