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박사의 인문학 산책 -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10) 용서
플크랑-장 아리에(1776~1805)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798),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플크랑-장 아리에(1776~1805)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1798),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가 사망한 해인 기원전 406년 완성됐다. 기원전 401년 아테네 비극 경연인 디오니시아 축제에서 초연됐다. 이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안티고네》와 함께 소포클레스의 ‘3대 테베비극’으로 불린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왕으로 치리(治理)하던 테베에서 떠난다. 그는 옷핀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됐다. 수많은 사람을 이끌던 왕이 이젠 발 한 걸음도 누구의 도움 없이는 옮길 수 없다.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아테네 근처에 있는 마을 콜로노스에 도착한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를 왜 이곳으로 이주시켰을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아테네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을까.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비극적인 운명에 굴하지 않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찬양이다. 소포클레스가 이 작품을 쓴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선 먼저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비극 작품이 쓰이고 상연된 기원전 5세기 말, 아테네의 철학을 파악해야 한다. 이 두 비극 작품의 주인공은 분명 오이디푸스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개성(個性)은 두 작품에서 다르다. 《오이디푸스 왕》은 영웅이 오만으로 명성과 권력을 잃는 비극적인 과정을 다뤘다. 반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한 인간이 어떻게 신적인 인간으로 부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인들에게 인간만큼 흠모할 만한 기적은 없다. 사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불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개성을 지키려는 인간의 숭고함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용서

소포클레스는 페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가 시작한 그리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토대인 ‘숙고하는 개인’을 위한 대중 교육인 비극 경연이 곧 사라질 것이란 사실도 알았다. 기원전 468년 비극 경연에서 소포클레스가 아이스킬로스를 이겼을 때,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년)는 석공인 아버지 공방에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가 아테네에서 초연된 후 2년이 지난 기원전 399년에 아테네 시민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인간 개인의 도덕적 책임이 인류 발전의 모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소포클레스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용서(容恕)’라는 원칙을 소개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란 신화적인 인물을 통해 반(反)인륜적인 죄의 무게를 가늠해 봤다.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고 관용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인 두 눈을 스스로 상하게 만들어 장님이 됐다. 그는 자신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자 스스로 망명(亡命)을 선택했다. 망명이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줄 보금자리로부터 자신을 유리(遊離)해 목숨을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이다. 장님인 오이디푸스는 낯선 땅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30인 참주들 시대’

소포클레스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마지막 유작으로 저술하고 사망하고 나서 이 작품이 아테네 야외 원형 극장에서 초연되기까지 6년이란 세월 동안 아테네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스에선 아테네가 중심이 된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펠레폰네소스동맹 간의 전쟁이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27년 동안 벌어졌다. 아테네는 이 전쟁에서 패했다. 이 기간에 테베인들과 코린토스인들은 아테네를 초토화하고 아테네 시민들을 모두 노예로 삼자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파르타인들은 이들의 과도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기원전 404~403년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드로스가 아테네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30명의 참주(潛主)들이 치리하는 과두정치체계를 수립했다. 이후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트라시불로스가 기원전 403년 1월 페레우스에서 크리티아스가 이끄는 과두파에 승리를 거두면서 그해 6월 민주주의가 부활했다.

죽음을 담보하는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찾은 아테네 시민들은 기원전 401년 원형 극장에 모여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관람했다. 그들은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가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용서하는 비극을 보면서 아테네 민주주의의 위대함과 관용에 감동했다. 소포클레스는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작품으로 이 비극을 지으면서, 쇠락하는 아테네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봉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오이디푸스를 아테네 근처 콜로노스로 데려간다. 콜로노스는 소포클레스의 고향이다. 오이디푸스는 이곳에서 추방당하지 않고 보호받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대신에 아테네와 테베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가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콜로노스에 있는 거룩한 땅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눈먼 노인의 딸 안티고네야, 우리가 대체 어떤 곳에, 어떤 사람들의 도시에 온 것이냐?(…) 우리는 이방인들이라 이곳 주민들에게 배워야 하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이곳에서 용서를 말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인은 '패륜아' 오이디푸스를 관용으로 용서하죠…관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믿음이 바탕에 깔려 있어요
■기억해주세요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불행할 수 없는 한 인간이 어떻게 신적인 인간으로 부활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스인들에게 인간만큼 흠모할 만한 기적은 없다. 사실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불운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개성을 지키려는 인간의 숭고함을 감동적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