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에 악영향…"일부러 적게 잡아" 의혹도

역대 최대규모 '초과세수'
국세수입 293조5700억원
쓰고 남은 돈 13조2000억원
정부가 지난해 거둬들인 세금(국세수입)이 당초 잡은 계획(세입예산)보다 25조원가량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 규모의 ‘초과 세수’다.

언뜻 보면 “세금이 많이 걷혀 정부 곳간이 풍족해지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오차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금을 예상보다 더 걷어 경제 활성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엉터리 세수 추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법인세·소득세 모두 예상보다 더 걷혀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해 정부 세입·세출 결산을 보면 국세수입은 293조5700억원, 세입예산은 268조1300억원을 기록했다. 25조4400억원의 ‘흑자(세수 초과)’를 봤다. 세금 종류별로 보면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골고루 계획보다 더 걷혔다.
정부가 거둬들인 세금 3년 연속 계획보다 더 걷혀
‘세수 호황’을 이끈 건 반도체와 부동산이었다. 법인세는 지난해 반도체 수출 등으로 기업들 실적이 좋았던 덕에 예상보다 7조9000억원 많이 걷혔다. 소득세는 11조6000억원 더 들어왔는데, 집값 상승으로 부동산 거래가 급증해 양도소득세가 잘 걷힌 영향이 컸다. 증권거래세도 주식 거래 증가에 힘입어 2조2000억원 더 징수됐다. 반면 휘발유·경유 소비 둔화, 유류세 한시 인하 등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계획에 1조1000억원 미달했다.

국세수입에서 세입예산을 뺀 수치는 2015년만 해도 3조3000억원 적자였다. 하지만 2016년 19조6000억원, 2017년에는 23조1000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초과 세수 규모가 계속 불어나면서 경제 전반에 사실상 ‘긴축 정책’ 효과를 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돈이 정부 쪽으로 빨려들어갈수록 민간의 소비·투자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 등에 쓸 재정 규모를 유연하게 조절하기도 어렵다.

“추경 위해 일부러 낮춰잡는다” 의혹도

지난해 국세수입이 크게 늘어난 영향으로 세입에서 세출을 뺀 세계(歲計)잉여금 역시 13조20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정부가 한 해 동안 쓸 것 다 쓰고 남은 돈이 13조원을 넘겼다는 뜻이다. 2007년(16조5000억원) 이후 11년 만에 최대였다.

불균형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세수 추계 능력에 문제가 있거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위해 일부러 추계를 낮게 잡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추경은 미리 짜둔 1년치 예산과 별개로 경기 부진 등을 타개하기 위해 추가적인 재정 집행이 필요할 때 편성하는 예산을 가리킨다. 진짜 경제가 어려울 때 요긴한 수단이지만 때론 쉽게 남발돼 ‘정부 업적 홍보용’이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세계잉여금을 정부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 출연, 채무상환 등에 순서대로 사용하며 나머지 일부를 추경에 쓸 수 있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 온 문재인 정부는 작년에도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짰는데, 이 과정에서 세계잉여금 2조6000억원을 활용했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법에 정해진 항목에 쓰고 나면 올해 추경에 쓸 재원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수 예측 정확해야 재정 효율적 운용”

전문가들은 정확성이 떨어지는 세수 추계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정부가 잡아둔 국세수입은 작년보다 불과 1조원가량 많은 294조8000억원이다. 이를 감안하면 초과 세수 현상이 또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세수 추계를 전담해온 기재부는 방식을 대폭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기재부뿐 아니라 국세청, 관세청, 조세재정연구원 등이 각자 전망치를 제시하거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세수 예측이 정확해야 미리 적정한 지출 규모와 시기를 정해 재정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NIE 포인트

국가 재정의 바탕이 되는 세금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정리해보자.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히면 국가의 곳간이 풍부해져 좋을 듯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어떤 문제점들이 있는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법인세를 미국 등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