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문학이야기 (25)] 김유정 《따라지》](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01.17655510.1.jpg)
사직골 꼭대기 집에서
사직골 꼭대기 깨웃한 초가집 주인마누라는 오늘도 골이 난다. 사글세를 못 받아서다.
세를 준 방은 세 개다. 첫 번째 방에는 대낮에도 이불을 뒤쓰고 잠을 자는 젊은 녀석이 있다. 제복공장 직공인 과부 누나에게 얹혀살며 방세 독촉을 할 때마다 묵묵부답이다가 돈은 우리 누님이 쓰는데요 누님 나오거든 말씀하십시오, 할 뿐이다. 두 번째 방에는 뒷간에 피똥을 싸 대는 부족증 환자 영감과 버스 걸 노릇으로 밥을 버는 딸이 살고 있다. 애초 방을 얻을 때 병을 숨긴 게 괘씸하기도 하거니와 영감의 광대가 불거진 노란 낯짝을 볼 때마다 송장 칠까 애간장이 졸아든다. 세 번째 방에는 카페 여급 아키코와 영애가 산다. 영애는 심술은 낼망정 뭐라 물으면 대답이나 하건만 아키코는 입을 앙다물고 대꾸 한마디가 없다. 방세를 조르면 외려 성을 낸다. 누구 있구두 안 내요? 좀 편히 계셔요, 어련히 낼라구 그런 극성 첨 보겠네.
방세고 뭐고 이 인간들을 아무래도 쫓아내야지 싶은 주인마누라는 꾀를 내어 집안의 조카를 데려왔다. 우선은 제일 만만한 백수, 방구석에서 맨날 글을 쓰는 걸 보고 아키코가 지어 준 별명대로라면 톨스토이를 쫓아내기로 한다. 주인마누라의 지시를 받은 조카는 톨스토이의 방에서 세간을 들고 나온다. 톨스토이가 멀건히 보기만 하는데 문틈으로 보던 아키코가 뛰쳐나온다. 아니 여보슈 남의 세간을 그래 맘대로 내놓는 법이 있소? 앙칼지게 조카를 나무라며 문을 막고 서자 분이 뻗친 구렁이(주인마누라)가 아키코의 팔을 잡아당긴다. 이 꼴이 아니꼬운 영애가 구렁이의 그 팔을 잡아채자 체격에서 밀린 구렁이가 제풀에 넘어진다. 이를 본 조카가 영애의 뺨을 쩔꺽 때리고 이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된다. 아키코는 조카의 혁대를 낚아채고 영애는 구렁이에게 숯바구니를 던져 버린다. 어느 틈인지 노랑통이 영감까지 뛰쳐나와 사방에 소리를 지르며 그동안 쪼여 지내던 분풀이를 한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지팡이로 조카의 복장을 내지르고 귓바퀴를 내려갈긴다. 공격당한 조카가 넘어지자 아키코는 그 어깻죽지를 물고 늘어지고 영애는 뒤통수로 주먹을 암팡지게 날린다. 미닫이는 설주가 부러지고 뒤주 위 대접은 깨지고 조카는 죽게 생겼고 이러다가 방은커녕 사람 잡겠다 싶어 겁이 난 구렁이는 헐레벌떡 순사에게 신고한다.
![[문학이야기 (25)] 김유정 《따라지》](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AA.17633688.1.jpg)
![[문학이야기 (25)] 김유정 《따라지》](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01.17655507.1.jpg)
‘따라지’는 1935년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이 작품에는 그의 문학의 큰 축인 해학성과 삶의 현장성이 함께 직조되어 있다. 사직동 초가집 마당에서 펼쳐진 주인집 여자와 조카 대 세입자들의 싸움판은 유머 코드 가득한 상황극을 보는 듯하다. ‘전투’는 치열하지만 인물들은 지질하고 그 행동은 우스꽝스럽다. 작가의 능청스러운 묘사와 천연덕스러운 서술 탓에 우리는 그들의 삶을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다.
![[문학이야기 (25)] 김유정 《따라지》](https://img.hankyung.com/photo/201808/AA.16086172.1.jpg)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