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쟁 원리'에 입각한 지방분권이어야 한다
대통령 개헌안을 계기로 지방분권의 본질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해 분권선언을 하겠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자치 입법권과 주민참여를 확대하는 내용까지 헌법에 담겠다는 안을 내놨다.
자율과 책임 강화를 통한 지역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지방분권은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분권도, 균형발전도 중앙 정부가 일방적으로 준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법권 재정권 참여권 모두 그렇다. 스스로 당위성을 절감하고, 권리에 따른 책무도 실현하면서 하나씩 이뤄나가야 지속가능해진다. 요컨대 중앙의 시혜적인 보호 육성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이 중요하다. 그 바탕에 필요한 것이 ‘경쟁 원리’다. 중앙과 지방이 수직적·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독립적 관계로 가려면 지역 간 경쟁, 나아가 중앙과 지방 간 경쟁도 필요하다. 경쟁을 통한 발전은 생태계를 건강하게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다.
건전한 경쟁은 시·군·구부터 시·도까지 예외 없는 지역 발전 원리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국가 간 경쟁보다 더 치열한 지역 경쟁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경쟁도 많은 경우 서울과 도쿄·오사카, 베이징·상하이의 경쟁이다.
역설적으로 경쟁제한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지방분권은 큰 틀에서 이뤄질 수 있다. 서울 인구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고양 성남 용인 등이 치열하게 경쟁할 때 지방행정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이치다. 그런 노력의 축적이 분권을 담보할 것이다. 선 그어주는 자율, 보호해주는 자치, 일괄 배분하는 권한은 설사 헌법에 담긴다고 해도 사문화되기 십상이다. 학교교육 하나에서조차 우리는 지역 간에 경쟁하는 제도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지방자치 시행 23년째지만 선거 때면 ‘3류 정치’가 반복되는 배경이다.
청와대의 ‘수도권은 1등 국민, 지방은 2등 국민론’은 자칫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수도권이 경제적으로 앞선 것은 지역 간 경쟁의 결과라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 개헌안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 6월 선거 등을 계기로 지방분권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경쟁을 통해 지방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담론이 돼야 한다. 건전한 경쟁은 발전의 길이다. 지역발전, 지방분권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3월23일자> 지방자치의 확대는 세계적으로 볼 때 근대 이후의 일반적 추세다. 하지만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문제를 놓고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선(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럽 대국으로 서로 맞붙은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독일은 경제과 산업, 정치, 대학과 교육 등에서 지방분권이 탁월하다. 반면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매우 강하다. 양국 모두 중세이래 오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볼 때 이런 점까지 볼 필요가 있다. 지방 문제는 행정 조직의 개편조차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통과 통신 등의 발달을 감안할 때 현재의 시·군·구 및 시·도의 이원화된 행정 체제에다 지방 의회까지 중첩되면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1000년 전 고려시대부터 그어져 온 ‘8도(道)’라는 기본틀은 손대기가 쉽지 않다.
과거 정부에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를 통폐합해 그 중간 수준의 행정구역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일본의 현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도 어려웠다. 적지 않은 규모의 지방 공무원들과 단체장, 국회의원, 광역 및 기초의회 등 직접 당사자들 목소리도 말 그대로 제각각이었다.
‘지방정부’가 맞는가, ‘지방자치단체’가 맞는가를 두고 비슷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돼온 판에 지방분권을 선언하는 개헌안이 청와대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지방분권을 강조해왔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라는 대통령 언급도 있었다. 이런 의지가 대통령 개헌안에 세세하게 담겼다.
법만 잘 만들어둔다고 지방의 행정과 입법, 재정과 세제, 참여 권리가 이상적으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중앙에서 주어지는 권한, 타율에 의한 독립의 한계다. 가장 큰 원리 원칙도 빠졌다. 경쟁의 원칙이다. ‘경쟁과 보상’은 현대사회를 발전시키고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리다. 지역 간 경쟁과 적절한 보상도 그래서 필요하다.
자율과 책임성을 다져나가는 지방분권은 타당성이 있지만, 중앙 정부가 인심 쓰듯 시혜적으로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도권은 1등 국민, 지방은 2등 국민론’도 위험이 다분한 접근법이다. 더구나 원인과 결과의 혼동이다. 수도권이 경제적으로 앞선 것은 지역 간 경쟁에 따른 결과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든 문제의 원인 삼아 균형발전 문제를 풀겠다면 본말이 바뀐 것이 된다.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거용 제안이란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대통령 개헌안을 계기로 지방분권의 본질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본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해 분권선언을 하겠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자치 입법권과 주민참여를 확대하는 내용까지 헌법에 담겠다는 안을 내놨다.
자율과 책임 강화를 통한 지역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지방분권은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분권도, 균형발전도 중앙 정부가 일방적으로 준다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법권 재정권 참여권 모두 그렇다. 스스로 당위성을 절감하고, 권리에 따른 책무도 실현하면서 하나씩 이뤄나가야 지속가능해진다. 요컨대 중앙의 시혜적인 보호 육성이 아니라, 지역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이 중요하다. 그 바탕에 필요한 것이 ‘경쟁 원리’다. 중앙과 지방이 수직적·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독립적 관계로 가려면 지역 간 경쟁, 나아가 중앙과 지방 간 경쟁도 필요하다. 경쟁을 통한 발전은 생태계를 건강하게 작동시키는 기본 원리다.
건전한 경쟁은 시·군·구부터 시·도까지 예외 없는 지역 발전 원리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국가 간 경쟁보다 더 치열한 지역 경쟁이 이미 벌어지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경쟁도 많은 경우 서울과 도쿄·오사카, 베이징·상하이의 경쟁이다.
역설적으로 경쟁제한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갈 때 지방분권은 큰 틀에서 이뤄질 수 있다. 서울 인구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고양 성남 용인 등이 치열하게 경쟁할 때 지방행정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이치다. 그런 노력의 축적이 분권을 담보할 것이다. 선 그어주는 자율, 보호해주는 자치, 일괄 배분하는 권한은 설사 헌법에 담긴다고 해도 사문화되기 십상이다. 학교교육 하나에서조차 우리는 지역 간에 경쟁하는 제도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지방자치 시행 23년째지만 선거 때면 ‘3류 정치’가 반복되는 배경이다.
청와대의 ‘수도권은 1등 국민, 지방은 2등 국민론’은 자칫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 수도권이 경제적으로 앞선 것은 지역 간 경쟁의 결과라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 개헌안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 6월 선거 등을 계기로 지방분권 논의는 계속될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경쟁을 통해 지방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담론이 돼야 한다. 건전한 경쟁은 발전의 길이다. 지역발전, 지방분권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3월23일자> 지방자치의 확대는 세계적으로 볼 때 근대 이후의 일반적 추세다. 하지만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문제를 놓고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우월하다거나 선(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럽 대국으로 서로 맞붙은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봐도 그렇다. 독일은 경제과 산업, 정치, 대학과 교육 등에서 지방분권이 탁월하다. 반면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전통이 매우 강하다. 양국 모두 중세이래 오랜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지방분권이나 지방자치를 볼 때 이런 점까지 볼 필요가 있다. 지방 문제는 행정 조직의 개편조차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교통과 통신 등의 발달을 감안할 때 현재의 시·군·구 및 시·도의 이원화된 행정 체제에다 지방 의회까지 중첩되면서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1000년 전 고려시대부터 그어져 온 ‘8도(道)’라는 기본틀은 손대기가 쉽지 않다.
과거 정부에서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를 통폐합해 그 중간 수준의 행정구역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일본의 현 비슷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논의도 어려웠다. 적지 않은 규모의 지방 공무원들과 단체장, 국회의원, 광역 및 기초의회 등 직접 당사자들 목소리도 말 그대로 제각각이었다.
‘지방정부’가 맞는가, ‘지방자치단체’가 맞는가를 두고 비슷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돼온 판에 지방분권을 선언하는 개헌안이 청와대에서 나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지방분권을 강조해왔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이라는 대통령 언급도 있었다. 이런 의지가 대통령 개헌안에 세세하게 담겼다.
법만 잘 만들어둔다고 지방의 행정과 입법, 재정과 세제, 참여 권리가 이상적으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중앙에서 주어지는 권한, 타율에 의한 독립의 한계다. 가장 큰 원리 원칙도 빠졌다. 경쟁의 원칙이다. ‘경쟁과 보상’은 현대사회를 발전시키고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리다. 지역 간 경쟁과 적절한 보상도 그래서 필요하다.
자율과 책임성을 다져나가는 지방분권은 타당성이 있지만, 중앙 정부가 인심 쓰듯 시혜적으로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 ‘수도권은 1등 국민, 지방은 2등 국민론’도 위험이 다분한 접근법이다. 더구나 원인과 결과의 혼동이다. 수도권이 경제적으로 앞선 것은 지역 간 경쟁에 따른 결과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모든 문제의 원인 삼아 균형발전 문제를 풀겠다면 본말이 바뀐 것이 된다.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한 선거용 제안이란 비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