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nsill723@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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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일본 경제 현황을 살피러 일본에 다녀왔다. 한국 경제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일본 경제다. 그러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할 답을 찾지 못해서인지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중산층의 총체적 붕괴가 밀려온다’는 등의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보내온 지인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 같다.
이들 SNS 글은 한국이 일본처럼 인구절벽·소득절벽을 맞아 추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중산층은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노인 빈곤과 부양 부담으로 고령자 학대가 일상화하며, 빈집이 늘어나 유령도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는 섬뜩하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더 가파른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일깨워주며 일본이 경험한 것을 피부에 와 닿는 사례로 보여주니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단카이 세대’라고 하는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가 30~40대일 때 부풀어 오른 버블이 40대 후반~50대 시기에 꺼져 불경기가 시작됐는데도 구조개혁에는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자식 세대인 ‘단카이 주니어세대’를 심각한 청년실업 상태로 몰아넣었으며 결혼도 취직도 못하는 ‘잃어버린 세대’로 만들어버렸다. 단카이 세대의 정년퇴직 시점에는 대충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되는 시대로 변했다. 2015년 3월 기준 일본의 대졸자 취업률은 96.7%에 이른다. 2015년 기준 한국의 20대 청년 고용률은 57.9%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74.7%나 된다. 한국에서는 청년 일자리가 심각한 문제지만, 일본에선 고급 인력이 취업을 기피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될 정도다. 소위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500인 이상 기업 취업)’도 일본은 24.3%인 반면 한국은 9%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런 결과가 인구구조에 기인하는 점이 크다는 사실이다. 경제성장률이 1992년 0%대로 추락했는데도 일본 기업들은 이를 통상적인 경기순환으로 인식해 구조조정을 회피했고 그 결과 과잉인력·과잉설비·과잉채무의 늪에서 허우적댔다. 구조개혁과 경기 회복 정책에서 우왕좌왕하다가 장기 침체를 자초한 것이다. 버블이 꺼지고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은 줄곧 연립정권이었다는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4·13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구조로 인해 협치(協治) 운운하고는 있지만 구조개혁은 흐지부지되고 하나마나한 정책만 쏟아낸 일본 정치의 재판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012년 12월 집권 후 디플레이션 탈피를 내걸고 대규모 금융 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이란 세 가지 화살을 쏘아 올렸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4월부터 지금까지 대략 240조엔(약 2700조원)의 돈을 풀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글로벌 금융시장 안정이 이어진 덕에 일본은 엔저(低) 호황을 누렸으며 자연히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늦춰진 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까지 겹쳐 안전자산인 엔화의 가치가 치솟아 엔저 노력이 허사가 돼버렸다.
이런 글로벌 경제 상황에서 연일 증폭돼 나타나는 한국의 정치·사회 갈등구조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일본 경제를 답습하는 게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이만큼 온 것은 나름대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대외지향성, 긍정과 신명의 유전자를 활용하면 3차 산업혁명이 낳은 정보통신기술(ICT)을 전통 제조업과 연결해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국민적 디지털 역량을 본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최적 테스트 베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축소지향이 아니라 성장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기로에 선 한국 경제는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 특히 경제부문에 관해서는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7월8일자
OECD 20년 간의 호소 "한국 노동개혁 절실"
사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0년 동안 각종 노동지표 평가에서 오히려 후퇴했다는 보고서를 읽고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20년 전과 지금의 노동지표 14개의 순위를 비교한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해주고 있다. 이 평가에 따르면 경제활동참가율은 23위에서 26위로 떨어졌고 고용률도 17위에서 20위로 3단계나 추락했다.
노동생산성은 당시 32위에서 28위로, 임시직 비중은 27위에서 26위로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평균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14개 지표에서 평균 이하가 11개나 된다. OECD 가입 후 20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 배나 증가했고 순위도 10위에서 8위로 올랐지만 노동 분야만큼은 이처럼 퇴보하고 있다.
노동개혁은 OECD 가입 시에도 첨예한 문제가 됐던 것이다. OECD는 당시 한국에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 노동 생산성을 올릴 수 있도록 임금체계 개편도 요구했다.
가입 10년 때인 2006년에도 OECD는 “한국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집단해고가 1998년 이후 허용됐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진시키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한 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집단해고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 노동계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2000년대 들어 독일 ‘하르츠개혁’을 비롯 선진 각국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려고 수차례 노동 개혁을 단행했다. 한국은 되레 정규직 보호가 강화되는 등 뒷걸음질만 쳤다. 지금도 그런 뒷걸음질은 계속되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의원입법으로 발의된 근로기준법 개정안만 10건이 넘는다. 대부분이 경영상 절박성에 의한 해고조차 막아야 한다는 등 강성 노조를 더욱 강화하려는 법안들이다. 노조권력과 국회권력이 결탁하면서 정규직만의 천국이 조성되고 있다. 그럴수록 노동개혁은 먼 나라 얘기로 흘러간다.
이인실 < 서강대 교수·경제학 nsill723@sog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