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그동안 원칙적으로 금지해온 ‘재판매가격 유지 행위’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최저가격 결정권을 제조업체에 주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유통업체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제조업체가 정한 가격보다 싼 가격에 물건을 팔 수 없게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그동안 제조사의 이 같은 가격 개입이 경쟁을 제한한다며 금지해왔다. 하지만 유통업체의 지나친 가격 인하 경쟁이 중소 납품업체의 납품가 인하 압박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제품 질 저하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에도 피해가 된다며 제도를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 같은 방침이 공정경쟁을 오히려 저해하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허용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대형 유통점에 휘둘리는 중소 제조업체 보호위해 필요"
공정위는 대형 유통점에 휘둘렸던 중소 제조업체를 시장에 안착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 경쟁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당장은 가격 경쟁을 막아 소비자에게 불리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공정한 시장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모든 제조업체에 허용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요건을 갖춘 곳에만 허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견해다. 특히 독과점 업체에 허용하면 가격 결정권 남용 등으로 소비자가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속하면서 시장점유율이 20% 이하인 제조업체 중 소비자 후생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공정위에 입증하는 곳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오랫동안 최저가격 유지제를 금지해온 미국 대법원이 2007년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도 들고 있다.
공정위의 이런 방침에 중소 제조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격 결정에서 소외돼 있는 제조사들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은 “대형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할 때 할인 폭을 제조사에 떠넘기기 때문에 원가를 맞추기 위해 제품 품질을 낮추는 일이 많았다”며 “최저가격을 보장받으면 품질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도 “유통업체의 최저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제조업체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제조업체가 가격 결정에 참여한다는 취지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 반대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며 소비자 후생에도 역행"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경쟁이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자유시장경쟁 원리에도 부합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조사의 횡포를 말하던 공정위가 이번에는 유통사의 횡포를 말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무조건 대기업이 하는 행위는 소비자 후생에 나쁘고 따라서 규제해도 좋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유통점의 가격 인하 경쟁이 품질 저하를 불러 중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 저하로 이어진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질 낮은 제품은 소비자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인데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이를 소비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고객 유치를 위해 일부 상품은 손해를 보면서 원가 이하에 판매하기도 한다”며 “최저가격 유지가 허용되면 제조사의 가격 전략에 휘둘려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최저가격 유지가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지만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는 “가격을 낮출 때와 비(非)가격 경쟁을 할 때의 소비자 후생 차이를 무엇으로 계량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미국 대법원 판례를 참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지 않다. 이 판례는 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현행 법률상 제조사가 필요하면 최저가 판매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생각하기 "예외적 규제 늘어나면 당초 원칙은 누더기 될 수도"
공정위가 오랫동안 금지해온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를 인정키로 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소비자 후생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조업체든 유통업체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위 ‘갑(甲)질’을 할 만한 사업자라면 누구든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위 경제민주화 논리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허용 여부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정위가 모든 제조업체에 이를 허용치 않고 시장점유율 20% 이하인 곳에만 허용키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정위는 ‘가급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공정경쟁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상대적 경제적 약자와 강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일일이 공정위가 개입해 이를 시정하려 든다면 규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소비자 후생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에서는 부당해 보이는 거래도 장기적으로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매가격 유지를 금지해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예외를 자꾸 적용하다 보면 원칙은 누더기가 되고 당초 취지도 희석된다. 공정위는 불공정거래를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공정위는 ‘어떻게 하면 중소업체를 시장에 안착시킬지’ ‘무엇이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인지’와 같은 본래 업무를 벗어난 부분까지 고민하고 판단하려 들고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공정위는 대형 유통점에 휘둘렸던 중소 제조업체를 시장에 안착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 경쟁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당장은 가격 경쟁을 막아 소비자에게 불리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공정한 시장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모든 제조업체에 허용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 요건을 갖춘 곳에만 허용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견해다. 특히 독과점 업체에 허용하면 가격 결정권 남용 등으로 소비자가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당연히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 속하면서 시장점유율이 20% 이하인 제조업체 중 소비자 후생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공정위에 입증하는 곳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오랫동안 최저가격 유지제를 금지해온 미국 대법원이 2007년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도 들고 있다.
공정위의 이런 방침에 중소 제조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가격 결정에서 소외돼 있는 제조사들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한 중소 제조업체 사장은 “대형마트에서 할인행사를 할 때 할인 폭을 제조사에 떠넘기기 때문에 원가를 맞추기 위해 제품 품질을 낮추는 일이 많았다”며 “최저가격을 보장받으면 품질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도 “유통업체의 최저가 경쟁이 심해지면서 제조업체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제조업체가 가격 결정에 참여한다는 취지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 반대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것이며 소비자 후생에도 역행"
유통업체의 가격 인하 경쟁이 기본적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고 자유시장경쟁 원리에도 부합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제조사의 횡포를 말하던 공정위가 이번에는 유통사의 횡포를 말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무조건 대기업이 하는 행위는 소비자 후생에 나쁘고 따라서 규제해도 좋다는 식의 논리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유통점의 가격 인하 경쟁이 품질 저하를 불러 중장기적으로 소비자 후생 저하로 이어진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견해도 있다. 질 낮은 제품은 소비자의 외면으로 시장에서 도태되기 마련인데 소비자가 어쩔 수 없이 이를 소비해야 하는 것처럼 가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반대하고 나섰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고객 유치를 위해 일부 상품은 손해를 보면서 원가 이하에 판매하기도 한다”며 “최저가격 유지가 허용되면 제조사의 가격 전략에 휘둘려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최저가격 유지가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경우’에만 허용한다지만 기준이 너무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대형마트 상품기획자는 “가격을 낮출 때와 비(非)가격 경쟁을 할 때의 소비자 후생 차이를 무엇으로 계량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미국 대법원 판례를 참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지 않다. 이 판례는 새 제도를 도입하지 않아도 현행 법률상 제조사가 필요하면 최저가 판매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생각하기 "예외적 규제 늘어나면 당초 원칙은 누더기 될 수도"
공정위가 오랫동안 금지해온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를 인정키로 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소비자 후생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조업체든 유통업체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소위 ‘갑(甲)질’을 할 만한 사업자라면 누구든 일정한 규제를 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위 경제민주화 논리를 재판매가격 유지행위 허용 여부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정위가 모든 제조업체에 이를 허용치 않고 시장점유율 20% 이하인 곳에만 허용키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공정위는 ‘가급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공정경쟁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 체제 아래서 상대적 경제적 약자와 강자는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일일이 공정위가 개입해 이를 시정하려 든다면 규제는 점점 더 많아지고 소비자 후생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장 눈앞에서는 부당해 보이는 거래도 장기적으로는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경우가 많다. 재판매가격 유지를 금지해온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예외를 자꾸 적용하다 보면 원칙은 누더기가 되고 당초 취지도 희석된다. 공정위는 불공정거래를 줄이고 경쟁을 촉진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 공정위는 ‘어떻게 하면 중소업체를 시장에 안착시킬지’ ‘무엇이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것인지’와 같은 본래 업무를 벗어난 부분까지 고민하고 판단하려 들고 있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