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글을 쓸 때 책이 나온 다음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요. 글을 쓰는 사람은 그냥 글을 써야죠. 노벨문학상은 책이 완성된 뒤 아주 먼 미래에 나오는 결과잖아요.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시아인 첫 맨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씨(46)는 지난 24일 문학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맨부커상 수상 뒤 처음으로 언론과 만나는 자리였다.
한씨는 “상을 받고 나서 많은 사람이 기뻐해 줘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려보며 지난 1주일을 보냈다”며 “상황이 정리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다음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한씨가 쓴 《채식주의자》는 지난 1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맨부커상 시상식에서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신작 소설 《흰》의 출간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영국에 갔습니다. 시상식 땐 시차 때문에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어요. 별로 현실감 없는 상태로 상을 받았는데, 덤덤하게 상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채식주의자》를 쓴 게 오래전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상을 받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기쁘다기보다는 ‘아 참 이상하다’, 이런 느낌이 더 컸죠.”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본은 지난해 1월에 나왔지만 국내 초판은 2007년 출간됐다.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27개 국가의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소수민족 언어로 출판하자는 제의도 속속 들어오고 있다. 《흰》 《소년이 온다》 등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작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국 작품이 국제적으로 많이 읽히기를 바라고, 충분히 그럴 역량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맨부커상 수상이 화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겁니다.”
한씨는 “《채식주의자》를 쓰느라 11년 전 던진 질문에서 난 (새로운 작품을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나 소설을 볼 때 작품 내용 속 문제 제기를 해답이 아닌 질문으로 받아들이면 지루하거나 어려운 문학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해답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흰》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65편의 글로 연결된 이 책은 하나의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가진 소설인 동시에 각각의 글이 한 편의 시로 읽힐 수 있는 완결성을 갖췄다. 어떤 부분은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시다.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혜 씨가 찍은 사진도 다수 실었다. 한씨는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끝났고, 이후 우리가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질문이 이어졌다”며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해 나온 게 이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힐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글”이라고 덧붙였다.
양병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hun@hankyung.com
■소설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됐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돼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5세에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시작으로 《내 여자의 열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2014년 출간한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가리켜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맨부커상은 …
맨부커상은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 1969년 영국의 유통회사 부커사가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부커상’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금융회사 ‘맨 그룹’이 후원하면서 지금의 ‘맨부커상’이 됐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노벨문학상이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가한다면 맨부커상은 작품을 우선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맨부커상을 받은 유명작품으로는 이안 감독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있다.
원래 맨부커상은 영국연방 국가 작가들만이 대상이었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아우르기 위해 2005년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했다. 이후 영국연방 국가 작가들에게 주는 ‘맨부커상’과 비영국연방 작가와 번역자에게 주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으로 나뉘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올해부터 운영방식을 대폭 변경했다. 지난해까지는 격년제로 작가에게만 시상했지만, 번역문학을 진작하기 위해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단행본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자에게 매년 시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역대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자들은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2009, 캐나다)와 필립 로스(2011, 미국), 치누아 아체베(2007, 나이지리아) 등 대부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작가들이다.
남건우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인턴기자 koenwoo@gmail.com
아시아인 첫 맨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 씨(46)는 지난 24일 문학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다. 맨부커상 수상 뒤 처음으로 언론과 만나는 자리였다.
한씨는 “상을 받고 나서 많은 사람이 기뻐해 줘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헤아려보며 지난 1주일을 보냈다”며 “상황이 정리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으로 돌아가 다음 작품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한씨가 쓴 《채식주의자》는 지난 1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맨부커상 시상식에서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신작 소설 《흰》의 출간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영국에 갔습니다. 시상식 땐 시차 때문에 거의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어요. 별로 현실감 없는 상태로 상을 받았는데, 덤덤하게 상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채식주의자》를 쓴 게 오래전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건너서 이렇게 먼 곳에서 상을 받는 게 좋은 의미로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기쁘다기보다는 ‘아 참 이상하다’, 이런 느낌이 더 컸죠.”
《채식주의자》의 영어 번역본은 지난해 1월에 나왔지만 국내 초판은 2007년 출간됐다. 《채식주의자》는 지금까지 27개 국가의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었다. 소수민족 언어로 출판하자는 제의도 속속 들어오고 있다. 《흰》 《소년이 온다》 등 다른 작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작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한국 작품이 국제적으로 많이 읽히기를 바라고, 충분히 그럴 역량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맨부커상 수상이 화제가 되지 않을 만큼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날 겁니다.”
한씨는 “《채식주의자》를 쓰느라 11년 전 던진 질문에서 난 (새로운 작품을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시나 소설을 볼 때 작품 내용 속 문제 제기를 해답이 아닌 질문으로 받아들이면 지루하거나 어려운 문학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해답이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지만 질문이라고 생각하면 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는 《흰》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65편의 글로 연결된 이 책은 하나의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가진 소설인 동시에 각각의 글이 한 편의 시로 읽힐 수 있는 완결성을 갖췄다. 어떤 부분은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시다. 미디어 아티스트 차미혜 씨가 찍은 사진도 다수 실었다. 한씨는 “《채식주의자》는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견딜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끝났고, 이후 우리가 이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식으로 질문이 이어졌다”며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해 나온 게 이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럽히려고 해도 더럽힐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글”이라고 덧붙였다.
양병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hun@hankyung.com
■소설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가 당선됐다.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돼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5세에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시작으로 《내 여자의 열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바람이 분다, 가라》 《채식주의자》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등 여러 작품을 발표했다.
2014년 출간한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열세 살 때 아버지가 보여준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한강은 《소년이 온다》를 가리켜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맨부커상은 …
맨부커상은 영미권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다. 1969년 영국의 유통회사 부커사가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부커상’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금융회사 ‘맨 그룹’이 후원하면서 지금의 ‘맨부커상’이 됐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노벨문학상이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평가한다면 맨부커상은 작품을 우선 평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맨부커상을 받은 유명작품으로는 이안 감독의 영화로 널리 알려진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있다.
원래 맨부커상은 영국연방 국가 작가들만이 대상이었지만 다양한 문화권의 작품을 아우르기 위해 2005년 인터내셔널 부문을 신설했다. 이후 영국연방 국가 작가들에게 주는 ‘맨부커상’과 비영국연방 작가와 번역자에게 주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으로 나뉘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올해부터 운영방식을 대폭 변경했다. 지난해까지는 격년제로 작가에게만 시상했지만, 번역문학을 진작하기 위해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단행본을 대상으로 작가와 번역자에게 매년 시상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역대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자들은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2009, 캐나다)와 필립 로스(2011, 미국), 치누아 아체베(2007, 나이지리아) 등 대부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작가들이다.
남건우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인턴기자 koenwo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