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 본질은 비경합성과 배제불가능성
국방·치안 해당돼도 의료·교육은 아냐
정부가 사용재(私用財)를 공공재로 공급할수록
민간시장은 위축된다
“의료 서비스는 당연히 공공재…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의료가 공공재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나…일반적인 국민 정서를 포함해 학술적으로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떠나 이미 의료 자체를 공공재로 보는 인식이 형성돼 있다.” “의료가 공공재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무의미한 논의…의료가 공공재이기 때문에 의과대학이라는 제도를 정했고 의료법으로 독점성을 준 것이다.” “의료인에게 면허로써 독점을 허용해주고 있는 것은 공공적인 역할을 하라는 의미…만일 의료가 공공재가 아니라면 의사면허부터 없애야 한다.”국방·치안 해당돼도 의료·교육은 아냐
정부가 사용재(私用財)를 공공재로 공급할수록
민간시장은 위축된다
어느 의료전문지에 실린 글과 의대 교수, 변호사들의 발언이다. 우리 사회의 이른바 식자층 혹은 지도층 인사들이 갖고 있는 공공재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다. 이런 발언에 비하면 “통신서비스는 공공재…생활에 매우 필요하고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잖아요”라든가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생산하고 공급하니까 공공재죠”라는 말은 틀렸지만 순진한 면은 있다.
공공재는 ‘공급의 주체가 누구인가’ ‘대다수 사람이 이용한다’ ‘생활에 필수적이다’ ‘사회적 합의가 그렇다’ 등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공공재는 재화나 서비스 자체의 성격에 따라 규정된다.
일반적으로 재화나 서비스는 사용재(私用財)와 공공재(公共財)로 구분된다. 그중 공공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용재와 분리된다. 공공재의 첫 번째 특성은 소비에서의 비경합성(非競合性)이다. 소비에서의 비경합성이란 어떤 사람이 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하고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이것을 소비할 가능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의 재화나 서비스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과가 한 개 있는데 내가 그것을 먹어버리면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을 수 없다. 이 경우에는 소비의 경합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대부분은 소비의 경합성이 존재하는 사용재다. 반면에 국방이나 치안과 같은 서비스는 한 사람이 혜택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줄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국방이나 치안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소비에서의 경합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비에서의 비경합성이 나타나면 한 사람의 추가적인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한계비용이 0이다)는 특징이 있다.
공공재가 갖는 두 번째 특성은 배제불가능성(排除不可能性)이다. 배제불가능성이란 어떤 재화나 서비스에 대해 대가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재화의 소비로부터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게에 맛있게 보이는 사과가 있다고 해서 돈을 내지 않고 마음대로 집어갈 수는 없다. 이렇듯 사용재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그것을 소비할 수 없다. 반면 공공재는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을 소비로부터 배제할 수 없다.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방 서비스의 혜택으로부터 그 사람을 배제할 수 있을까.
이런 기준에 따라 의료 서비스를 살펴보자. 의료 서비스가 비경합적이기 위해서는 한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고 있어도 다른 환자가 동시에 그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추가적인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드는 한계비용이 ‘제로(0)‘가 돼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A라는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면 B라는 환자는 동시에 치료받을 수 없다. 또 추가적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료인은 물론 수술장비나 의료 소모품 등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즉 한계비용이 0이 아니다. 의료 서비스에는 소비에서의 비경합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에는 공공재의 두 번째 특성인 배제불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료 서비스도 법률, 회계, 외식 등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소비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의료 서비스는 다른 서비스와 달리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특수하다고들 하는데, 그렇게 본다면 생명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식량을 파는 쌀가게만큼 특수한 것이 있을까. 쌀조차 공공재가 아니며, 따라서 쌀을 공공기관이 공급하지 않는다. 의료 서비스는 배제가 가능하며, 우리 주변의 대부분 재화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대가를 내야만 소비할 수 있는 사용재다.
많은 사람이 의료 서비스가 순수한 공공재는 아닐지라도 공공재적 성격을 상당히 지닌 서비스로 볼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듯(그림) 의료 서비스는 공공재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순수 사용재에 가깝다. 의료의 예를 들었지만 공공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공공재로 둔갑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교육이 대표적 사례며, 교통과 방송통신 그리고 수(水)자원 등 수많은 공기업이 제공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그런 것들이다. 한국에는 현재 300개가 넘는 공기업이 있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은 사실상 민간기업이 충분히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용재가 공공재로 둔갑하면 일단 그 시장은 정부의 각종 규제로 점철되고, 시장의 기능은 마비되거나 크게 침체된다. 나아가 해당 재화와 서비스를 공기업이 제공하면 비효율과 엄청난 부채로 국민의 어깨가 무거워진다. 틀린 공공재 개념은 시장을 왜곡하고 위축시키는 한편, 점점 더 큰 정부를 만드는 강력한 원인이 된다. 큰 정부 아래에서 기세를 올리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뿐이다.
권혁철 <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