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그것이 알고 싶지?'
국제정치, 국력 극대화 위한 무한경쟁
파워를 가져야 안보와 생존 보장받아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발사하며 국제적인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도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사태의 전개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국제정치’의 문제라는 뜻이다. 한반도에 국한해서 문제를 다루기보다 국제적으로 시야를 확대하면 문제의 본질을 좀 더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국제 정치에는 어떤 속성이 있을까?
‘선악’ 관점은 금물이다국제정치, 국력 극대화 위한 무한경쟁
파워를 가져야 안보와 생존 보장받아
우리는 국제정치를 도덕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나쁜 나라와 좋은 나라가 대결하고 경쟁하는 곳이 국제정치 무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자유주의자들의 견해가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모든 나라, 특히 강대국은 자신의 국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한 경쟁한다. 그것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합리적인 법규나 질서가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정치에는 선악의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것일까? 국제정치학자 존 제이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의 ‘공격적 현실주의(offensive realism)’ 이론을 따라가 보자.
첫째, 국제사회는 무정부 상태다. 난민촌과 같은 무질서, 혼동의 상태라는 뜻이 아니다. 국제체제는 국가보다 상위에 있는 중앙권위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현실세계에서는 독립국가들의 주권을 통제할 수 있는 상위의 권위가 없다. 즉, ‘정부들을 지배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국제법이 있기는 하지만, 강제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복당하면 ‘끝장’
둘째, 강대국은 모두 공격적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무정부 상태라면, 공격적인 행동이 자신들의 안보와 생존을 위해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에 모든 나라는 군사력을 갖고 있다. 강대국은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다. 여러 나라의 운명에 가장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서 강대국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행동이기에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사회의 구조 자체가 강대국에 공격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셋째, 어느 나라라도 다른 나라의 의도를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다른 나라가 어떤 경우든 자신을 향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21세기 지구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평소에 매우 점잖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 나라가 계속 그렇게 행동하리라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의 판단을 우리 스스로 100% 믿을 수 있을까? 국제사회에 100%란 없다. 더구나, 한 나라의 ‘의도’는 자기들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이다. 외국에 정복당하면, 어떤 나라도 자신들의 목표를 추구할 수 없다. 존재한 이후에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 안보는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당면과제다. 단 한 번의 실수와 그릇된 판단이 막대한 피해로 직결되는 것이 바로 안보문제다.
다섯째, 강대국은 합리적 행위자다. 그들은 자신의 주변 정세와 환경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행위가 끼칠 단기적, 중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도 늘 심사숙고한다.
미어셰이머는 이렇게 정리한다. ‘모든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생존이며, 생존 그 자체는 상대방에게 해로운 목표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가지 가설이 합쳐질 경우, 이 가설들은 상대방에 대해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공격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창출하게 만든다.
여기서 국가들의 세 가지 일반적인 행동패턴, 즉 두려움(fear), 자조(self help), 그리고 힘의 극대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나라들, 특히 강대국은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한다. 서로를 의혹의 눈초리로 감시하며 전쟁이 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사이에 신뢰의 공간은 그렇게 크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여러 가지 노력을 통해 두려움의 크기를 줄일 수는 있지만 두려움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낭만주의는 국제사회 원리 아니다
국제사회는 냉정한 곳이다. 국제사회에서는 공격적으로 행동한 행위자를 처벌할 수 없다. 나아가, 잠재적 공격자를 100% 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단 공격을 당한 뒤에는 어느 나라든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공격의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국가의 ‘두려움’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생존을 원하는 국가라면 어떤 경우든 상대방을 의심하고 100%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국제정치에서의 경쟁은 시장에서의 경쟁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정치적 결정은 경제적 결정에 비해 걸려 있는 이해관계가 너무 크고 훨씬 위험하다. 공격적 현실주의에 따르면, ‘평화적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지만 현실적인 일은 아니다.’
앞에서 국제정치는 선악을 논하는 분야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어떤 나라가 선한지 악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있다. 국내정치다. 모든 나라가 국력을 키우기 위해 경쟁하는 데는 차이가 없지만, 자국민을 대하는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나라 국민의 인권, 자유화 정도, 사유재산권의 유무 등 국내정치적인 기준으로 우리는 그 나라의 도덕적 수준과 선악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잣대는 국제정치의 영역에서는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 낭만주의와 휴머니즘, 인도주의는 국제사회의 운영 원리가 아니다.
장원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