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옳으냐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는 나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다. 중국에서 유래하고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한 이 방식은 태어남과 동시에 한 살을 부여하고 매년 새해마다 공평하게 하나씩 더한다. 반면 서양식인 ‘만 나이’는 0세부터 시작해 출생일에 나이를 올린다. 해가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각자 생일이 한 살 더 먹는 기준점이다.
문제는 ‘세는 사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민법은 1962년부터 법적으로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공문서나 법조문, 언론 기사에서도 ‘만 나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관습적으로 한국식 셈법을 적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불편을 고쳐보자는 청원운동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식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복수 나이로 인한 각종 혼란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만 나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특정 인물의 정확한 나이가 모호해지고, 해외에서는 각종 공문서에 나이를 착각해 잘못 기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12월31일에 태어난 아기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고, ‘빠른 나이’ 출생자들의 ‘서열 정리’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끼리 빠른 생일을 포함해 입학연도의 기준학번, 입사연도 기준의 사번 등까지 고려해 호칭 및 서열 정리를 하다보면 진이 다 빠질 지경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사람은 하나인데 그 사람의 나이가 중복으로 몇 개나 되는 것은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한 번 설명할 것을 몇 번이나 설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공공부문 일 처리에서도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며 만 나이로 통일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일본은 물론 북한조차 이제는 한국에서 쓰는 세는 나이 대신 만 나이를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단순히 사회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인 혼란까지도 발생한다며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내과 의사 중에도 만 나이에 찬성하는 이들이 있다. 연희동 K내과 원장은 “우리 나이로 진료하면 오진과 잘못된 처방을 할 수도 있다”는 태도다. 주사나 투약 기준은 만 몇 세부터 만 몇 세는 몇 ㎜라는 식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나이를 사용하다가는 매우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 네티즌은 “한국식 나이가 서열 정리를 위한 잔재라면 외국처럼 만 나이를 쓰겠다”고 찬성 의견을 밝혔다.
○ 반대 "전통 중 하나인데 무조건 다른 나라를 따르는 건 문제"
반대하는 이들은 한국식 나이 계산은 그 자체로 오랜 한국의 문화 중 하나이고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사용해왔는데 단지 다른 나라가 우리와 다르게 계산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없애자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만 나이를 쓰자는 사람들은 1월1일에 나이 하나를 더 먹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하지만 설날 아침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며 떡국을 먹는 것은 우리 고유의 풍습인데 이를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최영갑 성균관 유교방송 대표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이는 결국 인간의 생명을 언제부터 인정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며 “어머니 배 속에서 10달 동안 있는 시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바로 1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나이에 대해 어렵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혼선으로 그것이 꼭 나쁘다 좋다 또는 어떤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행 나이를 유지하는 쪽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인용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식 나이’에 대한 국민 여론을 물은 결과, ‘한국식 나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6.8%, ‘만 나이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4.0%로 두 응답이 오차범위(±4.3%p) 내에서 팽팽한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9.2%였다. 비록 오차범위 내이지만 만 나이로 바꾸자는 의견이 결코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생각하기 "고무줄 나이 이젠 통일해야 한다"
아마도 한국처럼 나이를 중시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호칭, 존댓말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나이부터 확인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에서 ‘만 나이’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나이로 존대와 서열을 결정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목한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높여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집단주의가 결합해 기존 문화가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젊은 20대들조차 “이제 나이를 먹으니 전과 같지 않다”느니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서열상 우위를 위해 한국 나이를 쓰면서 젊고 어려 보이고 싶을 때는 만 나이를 쓰는 이중성도 적지 않다. 아마도 이처럼 필요할 때마다 나이를 줄였다 늘였다 하기 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중 삼중의 나이가 지속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편의는 대부분 사적인 편의를 위한 것들이고 실제 공식적이고 법률적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혼란과 비용이 적지 않다. 지구상에서 한국만 다른 나이 계산법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전통 운운해도 이제는 수긍하기 힘들다. 한 가지 나이로 통일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
문제는 ‘세는 사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민법은 1962년부터 법적으로 ‘만 나이’를 기준으로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공문서나 법조문, 언론 기사에서도 ‘만 나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관습적으로 한국식 셈법을 적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런 불편을 고쳐보자는 청원운동이 온라인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식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주장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복수 나이로 인한 각종 혼란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만 나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특정 인물의 정확한 나이가 모호해지고, 해외에서는 각종 공문서에 나이를 착각해 잘못 기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12월31일에 태어난 아기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고, ‘빠른 나이’ 출생자들의 ‘서열 정리’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끼리 빠른 생일을 포함해 입학연도의 기준학번, 입사연도 기준의 사번 등까지 고려해 호칭 및 서열 정리를 하다보면 진이 다 빠질 지경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 방송 인터뷰를 통해 “사람은 하나인데 그 사람의 나이가 중복으로 몇 개나 되는 것은 혼란스럽고 복잡하고 한 번 설명할 것을 몇 번이나 설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공공부문 일 처리에서도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며 만 나이로 통일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일본은 물론 북한조차 이제는 한국에서 쓰는 세는 나이 대신 만 나이를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단순히 사회적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률적인 혼란까지도 발생한다며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내과 의사 중에도 만 나이에 찬성하는 이들이 있다. 연희동 K내과 원장은 “우리 나이로 진료하면 오진과 잘못된 처방을 할 수도 있다”는 태도다. 주사나 투약 기준은 만 몇 세부터 만 몇 세는 몇 ㎜라는 식으로 해야 하는데, 우리 나이를 사용하다가는 매우 위험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한 네티즌은 “한국식 나이가 서열 정리를 위한 잔재라면 외국처럼 만 나이를 쓰겠다”고 찬성 의견을 밝혔다.
○ 반대 "전통 중 하나인데 무조건 다른 나라를 따르는 건 문제"
반대하는 이들은 한국식 나이 계산은 그 자체로 오랜 한국의 문화 중 하나이고 지금까지 큰 불편 없이 사용해왔는데 단지 다른 나라가 우리와 다르게 계산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루 아침에 없애자는 것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만 나이를 쓰자는 사람들은 1월1일에 나이 하나를 더 먹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하지만 설날 아침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다며 떡국을 먹는 것은 우리 고유의 풍습인데 이를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최영갑 성균관 유교방송 대표는 한 방송에 출연해 “이는 결국 인간의 생명을 언제부터 인정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며 “어머니 배 속에서 10달 동안 있는 시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기간이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바로 1살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나이에 대해 어렵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혼선으로 그것이 꼭 나쁘다 좋다 또는 어떤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행 나이를 유지하는 쪽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인용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식 나이’에 대한 국민 여론을 물은 결과, ‘한국식 나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6.8%, ‘만 나이로 통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44.0%로 두 응답이 오차범위(±4.3%p) 내에서 팽팽한 것으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9.2%였다. 비록 오차범위 내이지만 만 나이로 바꾸자는 의견이 결코 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생각하기 "고무줄 나이 이젠 통일해야 한다"
아마도 한국처럼 나이를 중시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호칭, 존댓말 사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나이부터 확인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에서 ‘만 나이’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나이로 존대와 서열을 결정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목한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높여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는 심리라는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집단주의가 결합해 기존 문화가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가장 젊은 20대들조차 “이제 나이를 먹으니 전과 같지 않다”느니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쪽에서는 서열상 우위를 위해 한국 나이를 쓰면서 젊고 어려 보이고 싶을 때는 만 나이를 쓰는 이중성도 적지 않다. 아마도 이처럼 필요할 때마다 나이를 줄였다 늘였다 하기 편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중 삼중의 나이가 지속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편의는 대부분 사적인 편의를 위한 것들이고 실제 공식적이고 법률적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혼란과 비용이 적지 않다. 지구상에서 한국만 다른 나이 계산법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전통 운운해도 이제는 수긍하기 힘들다. 한 가지 나이로 통일하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