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서 과반 의석 확보…단독정부 수립 가능
여당 "우리가 졌다"…군부도 결과 수용 시사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 자유 총선거에서 아웅산수지 여사(70·사진)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득표율 70% 이상을 확보해 단독 집권이 유력해졌다. 이로써 50년 넘게 계속됐던 미얀마의 군부통치가 막을 내리게 됐다. NLD가 집권하면 미얀마의 개혁·개방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어서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반세기 만에 막 내리는 군부통치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제1야당 NLD는 9일 개표 초반 집권 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SDP)을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날 오후 발표한 일부 개표 결과에서 NLD는 개표 완료된 하원 32석 모두를 차지했다. 이들 의석은 NLD 강세 지역으로 꼽혀온 양곤의 전체 하원 45석 중 일부도 포함됐다. 개표가 완료된 지방의회 4석 중에서도 NLD는 3석을 챙겨갔다. 집권당은 지방의회 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미얀마 영자신문인 미얀마타임스에 따르면 NLD 대변인은 “전날 치러진 총선에서 NLD의 전국 득표율이 70%를 넘었다”고 밝혔다. 미얀마 선관위는 10일 1차 투표 결과를 발표한다. 아웅산수지 여사는 이날 NLD 당사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모두 결과를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흐타이 우 USDP 의장 대리도 “우리가 졌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미얀마 헌법은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전체 의석의 25%가 군부에 돌아가기 때문에 NLD가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려면 선출직 의석(491석) 가운데 67%(329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NLD가 승리하면 1962년 쿠데타 이후 시작된 53년간의 군부통치가 막을 내린다. NLD는 1990년 총선에서 82%의 의석을 얻어 압승했지만 군부가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아 집권에 실패했다. 군부는 이번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지난 10일 1차 투표 결과를 발표한 뒤 검표를 거쳐 이달 중순께 최종 결과를 공표할 계획이다. 이번 선거 유권자는 전체 인구(약 5300만명)의 66% 정도인 3500만명이었으며, 전국 4만여개 투표소에서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율은 70% 이상으로 잠정 집계됐다.

경제 개혁·개방 가속도 기대

총선 압승이 확실시되면서 아웅산수지 여사의 향후 역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웅산수지 여사는 NLD가 승리하더라도 자신의 대통령선거후보 출마를 금지하는 헌법 조항 때문에 대통령직에 도전할 수 없다. 미얀마 군부가 제정한 헌법은 ‘외국인과 결혼하거나 외국 국적의 자녀를 둔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의 두 아들은 영국 국적이다.

아웅산수지 여사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못하더라도 선거에서 승리하면 국가와 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공약해왔다. 그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NLD가 승리해 대통령을 내면 나는 ‘대통령직 위의 지도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얀마의 군부통치 종식은 해외 기업에도 기회가 될 전망이다. KOTRA는 “NLD가 집권에 성공하면 미얀마 경제의 개혁·개방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의 진출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웅산 수지의 인생

1945년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난 수지는 두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인도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 이후 영국으로 넘어가 옥스포드 대학교를 졸업했다. 1988년 어머니 간호를 위해 영국에서 일시 귀국했다가 민주화 시위를 목도하고 출국을 포기한 채 민주 투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당시 500만 군중이 모인 민주화 집회에서 민주적인 정부 구성을 촉구한 것이 출발선이었다. 미얀마 군부에 의해 1989년 가택연금에 처해졌던 그녀는 2010년까지 가택연금과 해제를 반복했다. 1999년 남편이 암으로 숨질 때도 미얀마를 출국하면 입국이 막힐 것을 우려해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정신과 불교의 영향으로 평화적 저항을 주창한 그는 2011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지여사는 25년 만에 치러진 미얀마의 첫 자유총선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다.그러나 미얀마 현행 헌법 상 직계 가족 중 외국인 가족이 있는 자의 대통령 출마를 금지함에 따라 대통령 출마는 불가능하다.

박종서 한국경제신문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