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한·미·일 역사교과서 분석

미국
경제성장 주도 기업인 상세 기술…스티브 잡스·빌 게이츠까지 나와

일본
오사카방직 창업자 소개로 시작…기업·기업인의 공과 객관적 서술

한국
노동운동했던 전태일은 나와도 업적 이룬 기업·기업인 등장 안해
산업화 기여 등 정당한 평가 필요
미국과 일본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경제성장을 주도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다. 미국 교과서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금융가 존 피어폰 모건, 석유재벌 존 록펠러 등을 큰 사진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등장한다. 일본 교과서도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치 오사카방직 창업자에 대한 소개를 시작으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일본 대표기업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이병철과 정주영
이병철과 정주영
‘한강의 기적’을 이끈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 등에 대한 기술조차 없는 한국의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와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2017년부터 중·고교에 적용될 ‘올바른 역사교과서’에는 국내 기업과 기업인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국경제신문이 미국과 일본에서 통용되는 대표적 역사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미국 버지니아주 고등학교에서 역사교과서로 쓰이는 맥그로힐 출판사가 발행한 ‘미국인의 역사’에는 19세기 이후 대표 기업인들의 공과(功過)에 대한 내용이 전체 분량 922쪽 중 26쪽(2.8%)에 걸쳐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이 교과서 17장 ‘산업부흥기(Industry supremacy)’에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를 비롯해 세계 최고(最古) 금융회사 설립자인 존 피어폰 모건은 물론 석유재벌 존 록펠러의 약력과 업적을 큰 인물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본 교과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고등학교 채택률 1위인 도쿄서적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일본사A’도 상당 분량을 일본 경제와 기업에 대해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근대 산업발달’이라는 소단원에서는 시부사와 에이치가 오사카방직을 개업한 내용을 시작으로 일본의 산업화 과정이 자세하게 서술돼 있다. 또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소단원에서는 동양방적, 대일본방적, 가네가후치방적 등 방적회사를 시작으로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야스다 등의 기업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미쓰이그룹의 조직도까지 그래프로 제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 검인정 역사교과서에는 기업인들에 대한 기술은 거의 없다. 8종 중 5종에서만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 방북’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 그쳤다. 이병철 회장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카네기와 록펠러
카네기와 록펠러
미국과 일본 교과서들은 기업과 기업인들의 공과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국 역사교과서는 “기업인들이 불굴의 기업가 정신과 독창적인 아이디어, 추진력 등으로 각 분야 산업을 일으켜 강대국의 기반을 다졌다”면서도 “독점 등의 문제로 경제적·사회적 문제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기업인들이 각종 혜택을 악용해 횡령을 일삼고 세금을 포탈했다”며 기업인들의 과실 부분을 부각한 현행 검인정 교과서와 대비된다. 미국 교육부 관계자는 “미국 교과서는 편파적으로 기술해서도, 기술할 수도 없다”며 “중앙정부가 교과서 집필이나 선정에 관여하지 않지만 편향된 기술이 들어 있는 교과서는 채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2017년 학교 현장에 적용될 ‘올바른 역사교과서’에서는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최근 교과서 집필의 대원칙을 제시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에 대한 객관적 서술을 담겠다고 강조했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전태일같이 노동운동을 한 사람은 교과서에 나오고 정주영, 이병철 같은 훌륭한 업적을 이룬 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며 “올바른 역사교과서에는 제대로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봉 세종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산업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의 업적에 대해 배우는 것은 당연하다”며 “기업가 정신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수진/도쿄=서정환 특파원/임기훈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