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생글기자 코너]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등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전직 대법관의 개업 신고서를 반려했다. 이로 인해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전직 대법원장 등의 공익활동 지원법’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 법안은 대법관·헌법재판관 이상의 법관들에 대해 공직자윤리법에서 정한 사기업체 취업과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고 공익 목적의 법률 사무는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개업에 찬성하는 측은 변호사 개업이 직업 선택의 자유에 입각한 것이므로 개업을 제지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일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전관예우 타파를 명분으로 이를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고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가질 수 없게 제지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임이 틀림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 종신제(終身制)인 미국 대법관은 은퇴 후 죽을 때까지 현역 시절의 월급을 받으며 순회 법원에서 일할 수 있다. 일본은 퇴임한 최고재판소 재판관에게 공증(公證) 업무를 맡기고 있다.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이 개인의 경제활동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로 개업을 지지하는 로스쿨 교수를 비롯한 서울변호사협회와 달리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계에서 사라져야 할 전관예우를 타파하기 위해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제한하려 한다. 대형로펌에 간 전직 대법관의 연봉이 최고 27억 원에 달한다면 문제라는 시각이다. 전직 대법관들이 변호사가 된 후 거액의 재산을 단번에 쌓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것이 정당하면 관계없지만, 전직 대법관 변호사라는 타이틀 하나로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첫 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는 특혜(전관예우)를 누린 것이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전관예우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고 심화되고 있으며 ‘관피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그늘은 점점 커져가고 있음이 틀림없다.

변호사 개업을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전관예우 타파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더라도 전관예우는 후배 법관들이 보고 배움으로써 반복될 악순환이기에 하루빨리 없애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공익을 위해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써 필요최소한으로 제한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듯이, 사회의 공익을 위한 현명한 한 걸음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승은 생글기자(공주사대부고 1년) jalame0102@naver.com

링컨에게서 배운다, “Never Give Up!”

[생글기자 코너]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등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존경하는 최고의 대통령이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직업을 가졌던 링컨. 하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행복했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의 인생은 험한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9살에 어머니를 잃었다. 가난으로 그는 학교를 비정기적으로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받은 정식 교육은 다 합쳐도 기껏해야 12개월을 넘지 못 했다.

하지만 어린 링컨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굴하지 않고 항상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독서는 그의 인생에서 큰 일부분을 차지했고 후에 수많은 명연설문들은 탄생시킬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링컨의 삶은 나아질 줄 몰랐다. 정리하면 그는 인생에서 두 번의 사업 실패, 10번의 선거 중에 7번의 낙선을 밟았다. 사랑에서도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27살 때 진심으로 사랑했던 약혼자를 잃고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해 평생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간다. 믿기 힘들 정도로 그의 인생은 험했고 희망이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링컨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노예제도의 확장에 대해 공개적인 반대자였으며, 선거 기간 중 토론과 연설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미국은 링컨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기적이 일어난다. 평생을 실패와 좌절 속에서 살아야 했던 링컨이 마침내 1860년, 노예제 문제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던 상황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분열된 국가를 통합하고 수백만 명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며 미국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다.

성공이란 어려움을 이기고 얻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공에는 당연히 실패가 전제되어야 한다. 결국 성공을 결정하는 것은 실패이다. 즉, 성공한 사람이란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사람이고 실패한 사람이란 주저앉고 마는 사람이다.

실패가 이어지면 기가 죽는다. 실패가 이어지면 급기야 포기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링컨은 그렇지 않았다. 실패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실패할 때마다 꿈을 더 높이 가졌다. 좌절할 때마다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하였다. 우리도 링컨 같은 용기를 지닌다면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성공의 언덕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난했지만 늘 배우고 익히는 모습, 자신의 그런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는 당당함, 부족함을 개선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익히는 집념, 더 나은 연설을 위해 여러 분야를 독학으로 익히는 열정, 이 모든 것이 위대한 링컨, 존경받는 링컨을 만들었을 것이다. 링컨 이야기를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끊임없는 그의 도전과 집념, 노력과 열정 등을 알게 되었다. 링컨은 말했다, “나는 천천히 가는 사람이지 뒤로 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비록 지금은 실패투성이고 성공은 밤하늘의 별 따기처럼 느껴지더라도 링컨의 말을 가슴속에 새기고 포기하지말자.

차성원 생글기자(양천고 1년) chasw0059@naver.com

‘오디세이 학교’를 아시나요?

[생글기자 코너] 전직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등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대해 찾아보던 중, 고교 자유학년제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또한 중학교처럼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 것인가 하고 걱정부터 들었지만 찾아보니 비슷한듯 하지만 완전히 다른 정책이었다. 고교 자유학년제, <오디세이 학교>는 서울 지역 고1 학생 40명이 1년 동안 소속 학교를 떠나 한 데 모여 색다른 교육을 받는 곳이다. 이러한 제도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오디세이 학교에서 학생들은 토론수업과 진로탐색, 체험활동, 인턴십 등의 활동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학생들은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토론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진로탐색과 인턴십 등의 경험은 학생들의 꿈과 미래를 위해 좋은 기반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받는 형식의 수업, 암기 위주의 정형화된 시험에서 벗어나 학생들은 자유롭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색다른 수업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내신 부담이 적다. “대입의 유불리를 따지고 오는 것은 오디세이 학교에 취지에 맞지 않다”고 덧붙인 장학관의 설명과 같이 내신을 좋게 하여 좋은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은 오디세이 학교에 적합하지 않다. 대학, 시험성적, 내신의 부담감에서 탈출하여 직업교육과 여러 체험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찾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더불어, 내신 부담이 적은 만큼 교실 내의 분위기도 한결 자유롭고 학생들 사이의 관계도 더욱 돈독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경쟁, 시기, 질투 등에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제도는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고취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방과후 학습이나 야간 자율학습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방과 후 시간이 여유롭다. 게다가 학원과 과외 등의 사교육도 불참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가 끝난 5시 이후를 자신이 스스로 사용해야 한다. 맞벌이 가정의 학생들의 경우 특히 학부모의 관리가 없기 때문에 본인이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을 잘 극복한 학생들은 자기주도 학습이 가능해져 오디세이 학교 운영이 모두 끝난 뒤 일반 학교에 돌아가서도, 또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이 경험을 살려 잘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오디세이학교에 지원한 77명 중 면접과 추첨을 통해 40명이 선정되었다. 입학생들은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다양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오디세이 학교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유혜승 생글기자(봉영여중 3년) h0428s@daum.net